[103일][04월12일][365매일글쓰기] 모사
가후
삼국지(삼국지연의)에는
많은 사람이 등장한다. 조조, 유비, 손권과 같은 주요 인물에 대해서는 자세히 묘사되지만, 주변 인물들은
주요 인물과 연관될 때만 잠깐잠깐 등장하고는 한다. 어떤 이는 잠깐 등장하고는 사라져 버린다. 또 어떤 이는 사건의 맥락마다 등장한다. 모사(謀士) 가후(賈詡)는 삼국지의 초기부터 등장해서 끝까지 가는 신비로운 인물이다. 참고로
모사란 책사(策士)로서 사전적 정의는 ‘꾀를 써서 일이 잘 이루어지게 하는 사람’이다.
황제를 폐위시키고 새로운 황제(헌제)를
세운 동탁이 죽은 후, 동탁이 아끼던 부하였던 이각, 곽사,장제, 번조는 앞날을 걱정한다. 이때
가후가 삼국지에서 처음으로 등장한다.
이각의 실망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아무래도 용서받긴 틀린
모양이니 이대로 앉아 죽음을 기다리고 있을 수는 없는 일, 각기 흩어져서 살 길을 찾는 수밖에 없겠소이다.”
이각의 말에 모사 가후가 고개를 젓는다. “여러분이 군사를 버리고
뿔뿔이 흩어진다면 일개 정장(亭長)이라도 공들을 능히 붙잡을
수 있을 거요. 공들이 각자 흩어져서 살 길을 찾는다는 것은, 섬서
사람들을 설득하여 본부의 남은 군사들과 함께 장안으로 쳐들어가 동탁의 원수를 갚느니만 못하오. 그렇게
해서 만일 일이 잘 되면 조정을 받들어 천하를 바로잡게 되는 것이고, 실패할 경우 그때 도망쳐도 늦지
않을 것이외다.”
- <삼국지 1권> 216페이지, 나관중 지음,
황석영 옮김, 창비
가후의 조언으로 이각과 곽사 무리는 장안으로 쳐들어가 정권을 장악한다. 다시
황제(헌제)는 동탁의 잔당 무리의 손에 떨어지게 된다. 가후의 말 한마디로 인해서 한나라는 다시 한 번 큰 혼란에 빠진 것이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이각과 곽사 무리 내에서 자중지란이 일어난다. 서로 견제하다 못해서 싸우기 시작했고, 서로 황제를 차지하려 했다. 황제는 거지꼴을 한 채로 낙양으로 돌아왔다. 낙양의 상황은 처참했다. 불에 탄 황궁 자리만 남아있었고, 흉년으로 먹을 것조차 없어서 황제는 큰 곤경에 처하게 된다. 이때
천하제패의 웅대한 포부를 품은 조조가 군대를 이끌고 황제를 찾아와 극진히 받들어 모심으로써 황제의 환심을 산다.
이 무렵 이각과 곽사는 황제를 죽이고 자신들이 황제가 되려하고 있었다. 이들이 조조 군대를
공격하려 할 때 다시 가후가 등장한다.
한편 이곽과 곽사는 조조가 멀리서 왔기 때문에 군마가 몹시 고단하리라 믿고서 다시 한번 공격하여 속전속결로
승부를 내려 했다. 그러자 모사 가후가 반대한다.
“다시
싸워봤자 우리 쪽이 불리합니다. 조조의 군사들은 정예병이고 장수들 또한 뛰어난 맹장들뿐이라 차라리 늦기
전에 항복하여 죄를 용서받는 편이 나을 겁니다. :
이각이 버럭 화를 낸다.
“이놈, 네가 감히 내 예기를
꺾으려 드느냐!”
당장 칼을 빼어들어 내리칠 태세였다. 곁에
있던 수하장수들이 일제히 나서서 말린 덕에 간신히 죽음을 면한 가후는 그날밤 혼자서 영채를 빠져나와 고향으로 가버렸다.
- <삼국지 2권> 40페이지, 나관중 지음, 황석영
옮김, 창비
이각과 곽사의 곁에서 항상 좋은 조언을 했던 가후는 이각의 의견에 반대했다는 이유로 죽을 뻔했다. 곧 그는 이각과 관사의 곁을 떠나 떠돌다가 남양에 있던 장수의 모사로 채용된다. 조조가 남양을 함락하러 오자, 가후는 장수를 설득해서 항복하게 했다. 손쉽게 남양을 함락한 조조는 자만에 빠져 장수의 숙부의 부인인 추씨를 희롱했고, 분노한 장수는 가후에게 계책을 묻는다. 가후가 세운 계책에 따라
장수는 불시에 조조를 습격했고, 조조는 크게 패하고 달아나게 된다. 이때
조조는 큰 아들 조앙, 조카 조안민 그리고 아끼던 무사 전위를 잃게 된다. 가후의 계책은 상대방의 허점을 정확히 짚어냈다. 이뿐만이 아니다.
조조의 속셈을 알아차린 가후는 적의 계략을 어떻게 역이용할 것인지를 장수에게 설명한다.
“저는 지난 사흘 동안 조조가 성밖을 두루 살피는 것을 줄곧 지켜보았습니다. 조조는, 새로 쌓아 전돌 빛깔이 다른 곳도 있는 동남쪽 성벽이 낡고
허술해 보일 뿐 아니라 방어를 위한 녹각도 태반이 부서진 것을 보고, 그리고 쳐들어 올 생각을 정한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도 서북쪽 성벽에다 나뭇단과 짚단을 쌓아 허장성세를 부리는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곳을 굳게 지키게 만든 뒤에 실제로는 한밤중에 동남쪽 성벽을 타넘으려는 속셈입니다. “
- <삼국지 2권> 141~142페이지, 나관중 지음, 황석영 옮김, 창비
이 장면은 가후가 어떤 사람인지를 잘 보여준다. 가후는 얕은 꾀를
쓰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가 세운 계획이 매번 성공하는 결정적인 이유는 그가 사람의 심리를 꿰뚫어 보기
때문이었다. 병법이나 전술서를 잘 알아서가 아니라, 그 때의
그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여 제대로 된 계획을 세웠기 때문이었다. 성벽 위에서 조조의 행동을 세심하게
관찰한 가후는 조조의 심중을 정확히 헤아린다. 그리고 조조에게 속아주는 척하고는 조조의 허점을 또 한
번 찌른 것이다. 조조는 두 번이나 장수에게 패하고 물러나야만 했었다.
가후가 대답합니다.
“전혀 이상할 것이 없습니다. 장군께서는
비록 용병술에 뛰어나지만 솔직히 조조만은 못합니다. 조조가 이미 철수를 결정했다면 반드시 직접 후방을
엄호했을 것입니다. 장군의 병사들이 비록 정예이기는 하나, 장군의
장수들은 조조만 못하고, 조조의 병사들도 정예병이었기 때문에 장군이 패한 것입니다. 하지만 조조가 장군을 공격할 때에 실책이 없었던 데다 힘을 다하지도 않았는데,
싸우지 않고 철수했으니 분명히 후방에 문제가 생긴 것입니다. 그가 기왕에 장군의 추격병들을
물리친 이상, 반드시 군대의 무장을 가볍게 하고 속도를 내어 안심하고 길을 갔겠지요. 뒤에 남아 후방을 엄호하는 군대의 지휘관들은 장군의 상대가 안되었을 테니 이번에는 장군이 승리하게 된 것입니다.”
- <삼국지 강의>
178~179페이지, 이중텐, 김영사
이 장면은 <삼국지 2권> 146~147페이지에도 묘사되어 있지만, 정사 <삼국지>의 <가후전>의 서술이 더 생생하여 <삼국지 강의>의 내용을 인용한다. 가후라는 인물은 상대방이 누구이든지 그들의
성격과 심리를 정확히 추측했다. 또한 그의 추측에는 구체적인 근거가 제시된다. 조조라면 되돌아 와서 장수의 군대에게 완벽한 패배를 안겨주어야만 했지만 조조가 그러지 않았다는 점에 주목하고
두 번째 전투를 하라고 장수의 등을 떠민 것이다. 허허실실을 정확히 꿰뚫어보는 모사 가후에게 탄복하지
않을 수 없는 장면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또 하나의 명장면이
등장한다.
가후는 좋은 방법은 조조에게 가서 의탁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장수는
말합니다.
“원소는
강대하고 조조는 약소하며, 또 우리와는 오랜 원한도 있는데 어떻게 다시 그에게 의탁한단 말이오?”
가후는 말합니다.
“바로 그 때문에 조조에게 의탁해야만 합니다. 첫째, 조조는 ‘천자를
받들어 천하를 호령’하고 있어, 정치상 우세를 점하고 있으므로, 조조에게 의탁하는 것이 명분상 정당하며 이렇게 해야만 이치에 맞습니다. 둘째, 원소는 세력이 강하고 조조는 약합니다. 우리의 인마(人馬)가 원소에게는 보잘것없지만 조조에게는 눈밭에서 떨고 있는 사람에게
숯불을 보내주는 격이 되므로, 틀림없이 귀한 대접을 받을 것이니 유리합니다. 셋째, 천하를 제패하려는 뜻을 가진 자는 째째하게 개인적인 은혜나
원한을 따지지 않을 것입니다. 오히려 우리를 본보기로 삼아 천하 사람들에게 자신이 관대한 도량과 덕망으로
사람을 복종시킨다는 점을 보이려 할 것이니, 안전합니다. 그러니
장군은 마음 푹 놓으십시오.”
- <삼국지 강의>
182~183페이지, 이중텐, 김영사
이 장면 또한 <삼국지 2권> 258~259페이지에 등장한다. 역시 정사 <삼국지>의 <가후전>의 서술에 더 마음에 와닿기에 <삼국지 강의>에서 발췌했다. 원소에게 붙을 것이냐 조조에게 붙을 것이냐를
두고 고민하는 장수에게 하는 가후의 조언은 기가 막힌 논리를 품고 있다. 조조는 한나라의 승상으로서의
위치를 굳히기 위하여 제후들을 복속시키려 노력하고 있었다. 때문에 조조에게 오는 사람은 누구라도 품어야만
했다. 그래야 세상이 조조의 품안으로 들어올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가후가 말했다시피 원소는 이미 4개 지역을 점령하여 군대의 규모와 군수물자도 풍부했다. 원소는 명문가 출신이라서 따르는 인재들도 많았다. 겉으로 보기에는
원소와 조조가 싸우면 원소가 이기는 것이 당연해 보였다. 그러나 가후는 이미 인물에 대한 분석이 끝난
상태였고, 판세를 정확히 읽고 있었다. 원소는 어리석어 경중을
잘 판단하지 못하는 단점이 있었다. 게다가 그의 수하 장수들은 서로 원소의 관심을 받기 위해서 시기질투했다. 한 마음이 되어 싸워야 할 전쟁에서 동료 장수를 견제하니 어떻게 승리할 수 있었겠는가? 한편 조조는 상벌이 명확했으며 조조의 부하들은 조조를 신뢰했다. 조조는
세력은 약해도 황제라는 명분이 있었고, 조조가 차지하고 있는 땅은 북부의 땅에 비해 비옥했다. 가후의 예측은 정확히 맞아 떨어져서 장수는 조조 휘하의 장수로 채용되었고 가후 또한 참모로 채용되었다.
조조와 가후는 오랜 동안의 전투를 통해 서로 적으로 싸웠지만, 서로를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은 전쟁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황제가 있지만, 한나라는 이미 기울어서 재기할 가망이 없었다. 그래서, 제후들은 각자 황제가 되기 위해 싸우고 있었다. 겉으로 세운 명분이 무엇이든 상관없이 이것이 제후들의 속마음이었다. 조조도
알고 가후도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원술은 스스로 황제가 되었고, 백성들은
원술을 외면했다. 인심을 잃은 것이다. 원술 이전에는 동탁이
그랬다. 황제를 폐위시킨 사건으로 동탁은 백성들의 공적이 되었다. 조조는
천하를 차지하려면 인심을 얻어야 한다는 점을 잘 인지하고 있었고, 가후 또한 그랬다. 그래서 조조의 곁에서 매 상황마다 정확한 조언을 할 수 있었다. 게다가
가후는 사람들의 심리를 매우 잘 알고 있었다. 조조의 참모가 된 이후로 가후는 가능한한 말을 아꼈다. 기꺼이 낮은 자세를 취하고, 자식들은 평범한 집안과 결혼시켰다. 난세에 적합한 처세였다. 이런 가후를 조조는 죽을 때까지 아꼈으며, 조조의 뒤를 이어 황제가 된 둘쨰 아들 조비 또한 아꼈다.
그러므로 계책을 연구하는 것은 쓸모없는 짓이며, 차라리 인간의 본성을 탐구하는 편이 낫습니다. - <삼국지 강의> 189페이지, 이중텐, 김영사
글자수 : 3843자(공백제외)
원고지 : 25.06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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