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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5일][02월04일][365매일글쓰기] 값싼 사치


[035][0204][365매일글쓰기] 값싼 사치

중세 유럽의 귀족들은 값비싼 사치품에 돈을 흥청망청 썼지만, 농부들은 한 푼 한푼을 아끼면서 검소하게 살았다. 오늘날은 상황이 역전되었다. 부자는 자산과 투자물을 극히 조심스럽게 관리하는 데 반해, 그만큼 잘살지 못하는 사람들은 빚을 내서 정말로 필요하지도 않은 자동차와 TV를 산다. 자본주의 윤리와 소비지상주의 윤리는 동전의 양면이다. 이 동전에는 두 계율이 새겨져 있다. 부자의 지상 계율은 투자하라!”이고, 나머지 사람들 모두의 계율은 구매하라!”. - <사피엔스> 493페이지, 유발 하라리, 김영사

20대의 나는 자동차를 원했다. 취직하자마자 할부로 경차를 샀다. 차를 살 당시에는 한적한 곳에 살았기 때문에 차가 있으면 편리했고 무료 주차장도 많았었다. 서울로 취직하게 되어 이사를 하고 보니, 서울은 주차장도 적을뿐더러 주차비도 무척 비쌌다. 게다가 서울 시내에서 차를 가지고 나가면 도로가 막혀서 시간도 많이 걸렸다. 내 차는 항상 집에 세워져 있었고, 나는 대중교통을 이용해 출퇴근했었다. 실제로 서울에서 차는 애물단지였지만, 나는 차를 계속 소유하고 있었다.

<사피엔스>에서 자본주의와 소비지상주의에 대해 읽고는 충격에 빠졌다. 그때까지 나는 투자를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투자는 오직 저축 뿐이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정말로 소비지상주의 윤리에 충실한 삶을 살고 있었다. 집 안을 둘러보면, 불필요한 물건들이 많이 눈에 띄였다. 이걸 왜 샀는지 모르는 것들도 많았다. 단지 광고에 끌려서, 호객행위에 혹해서 산 물건투성이었다.

그러면 부자들은 어디에 투자하는 걸까? 궁금해서 재테크 관련 강의를 들어봤다. 부자들은 보험, 증권, 부동산, 현물에 분산투자를 하고, 경제 흐름에 따라 각 분야별 투자 비율을 조정하고 있었다. 예를 들어, 000 조건이 되면 금을 사고, ㅁㅁㅁ 조건이 되면 상가를 산다. 상가를 살 때는 지켜야할 규칙은 무엇무엇이 있다. 등등등 정말 다양한 재테크 팁들이 있었다. 그러면 부자의 기준은 어떻게 될까? 운용할 수 있는 현금(여유자금)이 억대인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세금을 줄이기 위해 노력해야 할만큼의 재산이 있었다.

결론적으로 나는 부자가 아니었다. 그리고 매일 이런저런 경제지표를 섬세히 분석하는 취미도 없었다. 점점 투자의 세계와 멀어지게 되었다. 반면에 어떤 지인은 매일 증권시장을 살피고 주식을 사고 판다. 때로는 손실을 보지만 때로는 돈을 번다. 지인의 관심은 온통 증시에 팔려있어서 만날 때마다 테마주에 대한 이야기가 끊이지 않는다. 또 어떤 지인은 부동산 투자에 열성이었다. 모아 둔 종자 돈으로 여러 채의 집을 사고 임대를 준다. 임대사업자인 것이다. 지인의 말에 따르면, 집을 한 채 두 채 살 때마다 노년 준비가 차곡차곡 준비되고 있음을 실감한다고 했다. 이런저런 지인들과 함께 어울리면서 내린 결론은 나는 투자자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투자를 하고 수익을 올리고 매매를 하는 모든 과정이 무척 귀찮았다. 나는 그냥 단순한 소비자였다.

(실업으로 인한 생활)수준을 낮춘다고 해서 반드시 사치를 끊고 꼭 필요한 것으로만 사는 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인 경우가 더 흔한데, 잘 생각해보면 그게 더 자연스럽다 할 수 있다. 그래서 유례없는 공황기에 온갖 값싼 사치가 늘어나는 현실이 가능한 것이다. 전쟁이후 가장 큰 차이를 보이는 것 두 가지는 영화와 값싸고 맵시 있는 의류의 대량생산이다. (중략) 주머니에 반 페니 동전 세 닢뿐이고 이 세상에 아무 전망도 없으며 돌아갈 집이라곤 비가 새는 작은 골방뿐이라 해도, 새 옷 차림으로 길모퉁이에 서서 클라크 게이블이나 그레타 가르보가 된 듯한 착각에 빠질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집에서도 웬만하면 차 한 잔을 마실 수 있게 되어, 1929년부터 실직한 아버지도 시저위치(경마정보)에 대한 유력 정보를 들을 수 있는 티타임 동안에는 잠시나마 행복할 수 있다. - <위건부두로 가는 길> 119~120페이지, 조지 오웰, 한겨례출판

투자자가 되지는 못하고 소비자인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구매를 줄이는 것뿐이다. 그런데 의외의 사건이 발생했다. 우연히 인문학 공부를 시작하면서 책을 읽는 시간이 대폭 늘게 되었고, 자연스레 바깥 활동이 줄어들었다. 거기에 더해 개방대학인 한국방송통신대학교에 편입을 하면서 더욱 더 바깥 활동이 줄어들게 되었다. 어느 날 카드 사용 내역을 보고 깜짝 놀랐다. 카드 사용이 절반으로 줄어든 것이다. “소비는 줄고 마음은 늘었네!” 정말 기뻤다.

대신에 특별한 소비를 추가했다. 사람들과 카페에서 만나 즐기던 커피가 그리웠기 때문에, 캡슐커피머신을 한 대와 캡슐을 사서 하루 한 잔은 커피를 마시기 시작했다. 아침마다 집안은 커피향으로 가득차고 나는 쌉싸름한 커피를 마시면서 그래, 인생은 쓴거야!”를 되뇌었다. 그리고 온라인 매장에서 책장을 구매했다. 거실에서 홀로 책장을 정성스럽게 조립한 후, 거실 한 켠에 세워두고 책을 사서 꼽기 시작했다. 한 켠 한 켠 책들로 가득차기 시작한 책장을 바라보며 커피를 마시면 정말 행복하다. 이것은 값싼 사치가 주는 행복이다.

글자수 : 1888(공백제외)
원고지 : 1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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