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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2일][01월22일][365매일글쓰기] 퇴고미션 : 22일차 사람은 무엇인가


[022][0122][365매일글쓰기] 퇴고미션 : 22일차 사람은 무엇인가

내가 쏘지 못한 이유는,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그 바지 때문이었다. 나는 이곳에 파시스트들을 쏘기 위해 왔다. 그러나 바지를 부여잡은 사내는 파시스트가 아니다. 그는 당신과 꼭같은 동료인간일 뿐이었다. 당신도 그를 향해 총을 겨누고 싶지 않을 것이다. – 에세이 <스페인내전을 돌이켜본다> 중에서

1936년 스페인은 사회주의 성향의 좌파 공화당이 정권을 잡고 있었다. 19367월 모로코에 주둔하고 있던 프랑코 장군은 왕정제 복구를 주장하며 반란을 일으켰다. 프랑코는 독일과 이탈리아 파시스트 정부의 비호를 받았다. 스페인 내전 초기에는 파시즘과 노동 계급간의 대결이었다. 유럽에서 세력을 확장하고 있는 파시즘에 대항하기 위해 조지 오웰은 스페인 카탈로니아 바르셀로나로 갔다. 의용군에 입대하고 전선에 투입되었다. 파시스트 군대와의 대치 중에 의용군의 비행기가 나타났다. 그러자 파시스트 측의 참호에서 반라의 병사 한 명이 바지를 부여잡고 파시스트 장교에게 뛰어갔다. 조지 오웰은 200미터 정도의 가까운 거리에 있었기 때문에 총을 쏴서 그 병사를 맞힐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쏘지 않았다. 왜일까?

우리는 살면서 끊임없이 편을 가른다. 네 편과 내 편으로 나뉘어 서로 적대한다. 심지어는 서로 목숨까지 빼앗는다. 내 편에게는 한없이 너그럽다. 설령 내 편이 잘못이나 죄를 저질러도 눈감아준다. 왜냐하면 내 편이니까. 반면에 상대 편에게는 잔인하게 군다. 그들의 사소한 잘못조차도 눈감아주지 못하고, 벼랑 끝으로 밀어붙인다. 그런데 어느 순간, 내 편을 적이라고 느끼게 된다. 언제 그럴까? 내 편이라고 생각했던 인간에게서 비인간적인 측면을 발견했을 때이다. 가치의 차이가 너무 커서 나와 함께 할 수 없다는 판단이 들면, 더 이상 내 편이 아닌 적이 된다. 반대로 적에게서 내 편의 향기를 맡을 때도 있다. 언제 그럴까? 적이 자신의 인간성을 드러냈을 때이다. 우리는 항상 외적 조건으로 피아를 구분하지만, 진정한 피아는 언제나 내적 조건에 의해 자연스럽게 나뉘고는 한다. 내적 조건의 기준은 바로 인간성이다.

인간됨의 도리를 지키는 나와의 동질감이 느껴지면, 적은 더 이상 적이 아니라 동료로 인식된다. 나라, 민족, 인종, 계급 등과 같은 외적 조건으로 아군과 적군으로 나뉠 수는 있다. 그런데 적군이 나와 같은 인간임을 느끼게 되면, 더 이상 적군을 향해 총을 쏠 수가 없어진다. 반면에 이질감이 느껴지면, 아군이라도 바로 적으로 바뀐다. 이러한 동질감과 이질감은 어느 순간 불 붙듯이 느껴진다. 그리고 보통은 서로 익숙해질수록 더 잘 드러난다.

조지 오웰은 죽음이 판 치는 전쟁터 한 가운데에서 맨 몸이 드러난 적군의 병사도 인간임을 알아차린다. 괴물의 얼굴을 한 파시스트가 아닌 인간이라는 사실, 이것이 전쟁의 참혹함이다. 인간이 건강하고 멀쩡한 인간을 죽게해야만 한다. 조지 오웰은 참호 뒤에 숨은 적군에게 수류탄을 던져 적군에게 부상을 입히거나 죽게 할 수는 있었다. 그러나 그의 눈 앞에서 지극히 인간적인 모습으로 나타난 적군의 병사를 쏠 수 없었다. 왜냐고? 인간이니까.

휴가를 받아 바르셀로나로 돌아간 조지 오웰은 바르셀로나 폭동이라 불리는 역사적 사건에 휘말린다. 이 사건은 발단은 스페인 정부가 아닌 소련 공산당의 통제를 받고 있던 경찰이 노동 계급이 운영하고 있는 전화국을 공격하고 점령했기 때문이었다. 노동 계급은 권리를 지키기 위해 다시 전화국을 탈환했고, 이 싸움이 시가전으로 번졌다. 경찰을 지지하는 돌격대와 조지 오웰이 속한 의용군은 진지를 구축하고 대치했다. 높은 건물 위에서 거리에 보이는 사람을 무차별 사격하는 돌격대와는 달리 조지 오웰은 바로 앞의 카페를 점령한 돌격대와 대화를 하고 미소를 나눈다. 조지 오웰은 카페의 돌격대를 쏘지 못한다. 단지 대치만 한다. 왜냐고? 서로 인사를 나눈 사이니니까.

이 사건은 향후 공산당에 의해 노동 계급에 의한 바르셀로나의 폭동으로 명명되었다. 소련에서 온 공산당 간부는 노동자들이 파시스트와 짜고 일으킨 폭동이라고 목소리를 높혔다. 발렌시아에서 온 인민군이 의용군을 해산하고 인민군으로 편입했다. 프랑코와의 전쟁에서 군인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조지 오웰은 일련의 일들이 일어나기 전에 우에스타 전선으로 복귀했다. 전선으로 돌아가는 길에 발렌시아에서 대치했던 돌격대 중 한 명과 조우한다. 발렌시아에서는 서로 총구를 겨누고 서로의 목숨을 빼앗기 위해 싸웠지만, 전선에서는 서로 얼굴을 마주한 인간일 뿐이었다. 둘 사이에는 친밀함마저 감돈다. 게다가 전선에 있는 의용군들은 발렌시아 시간전과 공산당의 야비한 모략을 모르고 있었다. 왜냐하면 프랑코와 싸울 군인과 군대가 필요했으니까.

파시스트를 눈 앞에 두고 대치 중인 군인들의 목표는 오직 파시스트를 이기는 것뿐이었다. 그 곳에서는 의용군이냐 혹은 인민군이냐 혹은 돌격대이냐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런데 같은 시각 전선에서 멀리 떨어져 어떠한 전쟁의 위협도 받지 않는 바르셀로나에서는 공산당과 공산당의 사주를 받는 언론에 의해 의용군은 파시스트의 제5열이 되었다. 휴가를 위해 바르셀로나로 온 의용군들은 의용군이란 이유로 체포되었고, 기소도 재판도 없이 감옥에 갇혔다. 수개월동안 이유도 없이 갇혀있다가 비밀감옥으로 옮겨진 이후에는 생사확인을 할 수가 없었다. 전선과 달리 의용군은 인간이 아니라 파시스트 동조자였다. 인간이 아닌 파시스트 동조자는 어린아이라도 형편없는 감옥에 가두어 결국은 병을 얻어 죽게 만들었다. 왜냐고? 인간이 아니니까.

조지 오웰은 너무나 비통했다. 공산주의자와 더불어 사회주의자인 의용군은 전심전력을 다해 프랑코와 싸웠다. 그런 그들이 프랑코와 내통했다는 누명을 쓰고 억울하게 갇히고 죽임을 당했다. 너무나 분해서 참을 수 없었다. 영국으로 돌아와 보니, 스페인의 상황을 하나도 모르는 영국 사회주의자와 공산주의자들은 소련발 가짜뉴스를 그대로 믿고 영국 대중에게 확대 재생산해서 내보내고 있었다. 조지 오웰은 분노했다. 그는 그곳에 있었고, 실제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알고 있었다. 그러나 소련발 가짜뉴스에 눈이 먼 언론들은 그의 말을 믿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카탈로니아 찬가>를 썼다. 스페인 내전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과 공산주의자들의 어처구니 없는 X맨질과 소련의 뒤통수 치기를 낱낱이 묘사했다. 조지 오웰 덕분에 수많은 가짜 주장들을 물리치고 21세기를 사는 사람들도 스페인 내전의 실상을 정확히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 진정으로 조지 오웰은 용감했다. 다수의 영국 지식인들이 강대국인 소련을 찬양할 때 그는 단호하게 소련이야말로 파시스트 국가라고 주장했다.

21세기의 중국 소설가 위화는 이스라엘 예루살렘에 있는 대학살기념관을 방문했다. 그곳에는 나찌의 학살로부터 유태인을 도와준 비유태인들의 이름이 적힌 기념관도 있었다. 그 수가 약 2만명 정도 되었다. 기념관에는 독일 목사(중국어로 표기된 이름은 马丁 尼莫拉)의 말이 새겨져 있었다.

起初他们追杀共产主义者,我没有说话---因为我不是共产主义者;接着他们追杀犹太人,我没有说话---因为我不是犹太人;后来他们追杀工会成员,我没有说话---因为我不是工会成员;此后他们追杀天主教徒,我没有说话---因为我是新教教徒;最后他们奔我而来,却再也没有人起来为我说话了。처음에 그들(나찌) 공산주의자들을 추격해서 죽였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나는 공산주의자가 아니니까; 이어서 그들은 유태인을 추격해서 죽였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나는 유태인이 아니니까; 그후에 그들은 조합원을 추격해서 죽였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나는 조합원이 아니니까; 이후에 그들은 천주교도들을 추격해서 죽였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나는 신교도이니까; 마침내 그들이 나를 향해 달려왔지만, 아무도 일어나서 나를 위해 말해주지 않았다. - <我只知道人是什么> 2페이지, 위화, 译林出版社

위화는 이 이야기를 필두로 사람은 무엇인가라는 글을 시작했다. 사람이 유태인인가? 사람이 공산주의자인가? 사람이 나찌인가? 사회의 잣대에 부적한 사람은 사람이 아닌가? 그는 여러 사례를 늘어놓는다. 그는 묻는다. 사람은 무엇인가? 우리는 언제까지 외적조건으로 피아(彼我)를 구분하고, 서로 적대할 것인가?

글자수 : 3120(공백제외)
원고지 : 18.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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