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7일][01월17일][365매일글쓰기] 찰스
디킨스
디킨스는 사회에 대해 비판할 때마다 늘 구조보다는 정신의 변화를 지적하는 것처럼 보인다. 디킨스에게 분명한 해결방안을 밝히라고 요구해봐야 별 소용이 없으며 정치적 신조는 더 말할 필요도 없다. 디킨스의 접근방식은 늘 도덕적 차원에 있으며, 스트롱의 학교가 크리클
학교와는 “선과 악의 거리만큼” 딴판이었다고 말한 대목에
그의 태도가 충분히 요약되어 있다. 두 학교는 매우 비슷하다고 할 수도 있지만 완전히 다르다. 천국과 지옥은 같은 곳에 있다. ‘마음의 변화’가 없는 ‘제도의 변화’는
소용없다. 이것이야말로 본질적으로 디킨스가 늘 말하고자 하는 바였다.
- <모든 예술은 프로파간다다> 41페이지, 조지
오웰, 이론과 실천
조지 오웰은 찰스 디킨스를 비평하면서, 디킨스의 작품 어디에도 건설적인
제안은 들어 있지 않고, 내부는 공격하지만 대안을 내놓지 않는다고 했다. 또한 “디킨스가 기존 질서를 무너뜨리고 싶어 한다거나, 기존 질서가 무너질 경우 많은 것이 달라지리라고 믿는 뚜렷한 징후는 없”다고
설명한다. 그 이유로는 “실제로 디킨스의 비판 대상은 사회가
아니라 ‘인간 본성’이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이에 대한 나의 생각은 이렇다.
찰스 디킨스 1812~1870와 조지 오웰 1903~1950은 다른 세기를 살았다. 영국이 인도를 식민 지배한 시기가 1859~1948년인데, 찰스 디킨스가 살았던 시대에는 영국의 경제력과 군대의 위용이 대단했을 것이다.
경제가 활황인 시대였다. 반면 조지 오웰의 시기는 영국의 힘이 사그라지고 있었던 시기였다. 그동안 너무 평안했던 것이 국가 경쟁력을 떨어뜨렸을 것이다.
추론해 보자면, 찰스 디킨스의 인생은 초기의 어려움을 제외하고는 경제적으로 풍요로웠을 것이다.
그러나 국가의 힘이 갑자기 커지는 시기에는 여러 부조리가 부각되기 마련이다. 탐욕스러운
자본가, 무능한 공무원, 욕심 많은 상인 등. 디킨스가 보기에는 사람들이 인간으로서의 근본 도리를 상실한 채 돈을 추구하는 것처럼 여겨졌을 것이다. 그런 이유로 인간성 회복을 강조한 것이라 생각한다.
또 하나 생각해봐야
할 점은 디킨스의 소설은 대중적이라는 것이다. 대중은 복잡한 문제를 알고 싶어하지 않는다. 대중 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울고 웃을 수 있는 이야기이다. 만약 <크리마스 캐럴>에 영국 빈민 문제를 파헤치는 구절이 들어간다면, 발그레한 뺨을 가진 부인들은 책을 덮고는 던져버릴 것이다. 디킨스는
이점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문제 제기도 대안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대중이 원하는 이야기를 풀어냈을 것이다.
글자수 : 987자(공백제외)
원고지 : 6.13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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