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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일][12월31일] 극기(克己)


[122][1231][백일글쓰기2] 극기(克己)

()은 머리()에 투구()를 쓴 사람()이 그 무게를 이겨내다 또는 어깨에 무거운 짐을 메고 오래동안() 견뎌내는 사람()의 모양을 딴 글자로서 이기다’, ‘매다의 뜻을 가진다. ()는 사람의 척추 모양을 형상화한 글자로 사람의 몸혹은 자기를 뜻한다. 그러므로 극기는 자기를 이겨낸다로 풀이될 수 있다. 그런데 뭘 이겨내는 것일까? 내 안의 욕심, 휘몰아 치는 감정을 이겨내야 한다. *) 한자 풀이는 한자신문의 설문해자 칼럼을 참조

사람의 정신은 몸 안에 갇혀 있다. 그러다 보니 자꾸만 자기 위주로 생각하게 된다. 자기 자신의 관점에 얽매이게 되면 치우치게 된다. 마음이 치우치면 감정이 격해지기 마련이다. 지나치게 화를 내고 슬퍼하고 즐거워하고 싫어하게 되면 몸 또한 감정에 삼켜지게 된다. 예를 들어, 극도로 화가 나면 몸을 부들부들 떨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다면 감정이 몸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그 지점까지만 화내고 슬퍼하고 즐거워하고 싫어하고 있다면 감정이 적절하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고대부터 많은 사람들이 (예를 들어) 화가 날 상황일 때는 화를 내지만 딱 그 상황에 알맞은 정도로만 화를 내기 위한 공부를 했고 하고 있다. 나는 이것이 바로 극기라고 생각한다.  

홀로 책을 읽으며 공부할 때에는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아 있어서 편안하다. 그러나 집 안이든 집 밖이든 사람들과 어울리는 순간부터 사건()들이 발생하게 된다. 어떤 사건은 아무런 감정도 일으키지 않는다. 또 어떤 사건은 갈등을 불러일으킨다. 갈등을 일으킨 사건에 관련된 사람들의 감정이 소용돌이치게 된다. 이때가 공부의 최적 시기이며 그 사건이 공부의 최적 장소이다. 갈등 상황에서의 극기가 진짜 공부이다.

(육징이) 물었다: 고요한 때는 생각이 그런대로 괜찮다고 느끼다가도 일을 만나자마자 같지 않은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선생께서 대답하셨다: 그것은 한갖 고요한 가운데서 수양할 줄만 알고 극기克己 공부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와 같으면 일에 부딛혔을 때 곧 무너지게 된다. 사람은 반드시 일에서 연마해야만 비로소 확고하게 일어설 수 있으며, 비로소 고요해도 안정되고, 움직여도 안정될 수 있다. 靜亦定 動亦定” - <전습록: 실천적 삶을 위한 지침1> 146페이지, 왕양명, 청계

일에서의 극기 공부를 사상마련(事上磨煉)이라고 한다. 事 일 사, 上 윗 상, 磨 갈 마, 煉 단련할 련의 네 개의 한자로 이루어진 이 사자성어는 일 위에서 갈고 단련한다는 뜻이다. 사상마련은 명나라 때의 장수이자 유학자인 왕양명 선생의 핵심 사상 중 하나이다. 그는 관료로서 어지러운 정치판에서 자기자신을 수양한 유학자이다. 수많은 관료들이 왕양명 선생과 함께 학문에 대해 토론함으로써 올바른 정치를 실현하고자 노력했다. 또한 상공업이 발달했던 명나라의 풍토에 맞게 신분에 상관없이 제자를 받아들이고 사대부와 상공인이 함께 토론을 하기도 했다. 조선에서는 이러한 풍토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주자학만을 고수했으니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면 이쯤해서 극기와 매일 글쓰기의 관계를 이야기하려 한다. 나는 왜 매일 글쓰기를 시작했는가? 매일 글쓰기의 시작은 나의 글이 지리멸렬해서 부끄러웠기 때문이었다. 매일 글쓰기를 시작하기 전까지는 나의 글이 그럭저럭 괜찮은 정도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공부의 일환으로서 글쓰기를 시작하자마자 나는 쇠망치로 얻어맞은 듯한 충격을 받았다. 내 글이 너무 구렸기 때문이다. 다 먹고 버린 생선 등뼈처럼 빈약하고, 윤기 잃은 푸석푸석한 머리카락 같았다. 좀 더 잘 쓰려면 많이 써봐야 한다. 그렇다고 곧바로 글쓰기를 시작하지는 않았다. 자존심의 발동이었다고나 할까? 나의 글에 잔소리를 해대는 사람들에게 저항을 시도했다. 한참 그러다가 깨달은 것은 그런 저항은 부질없는 짓이라는 것이었다. 나의 내부가 아닌 외부와 싸워봤자 얻는 것은 없다. 어느 날 홀연히 백일글쓰기를 신청했다. 외부에서는 얼마나 갈까!”하는 호기심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아마 며칠하다 지쳐 그만둘 것이라고 기대하는 듯했다.

湯之盤銘曰: “苟日新, 日日新, 又日新.” 탕지반명왈: “구일신, 일일신, 우일신.” 탕 임금께서 쓰신 제기용의 성스러운 대야의 밑바닥에 이런 글이 새겨져 있었다. “진실로 날로 새로워져라! 날로 날로 새로워져라! 또 날로 새로워져라!” - <대학 학기 한글역주> 288~289페이지, 도올 김용옥, 통나무

나의 내부는 이미 날로 새로워지고자 하는 열망으로 가득 차 있었다.

曾子曰:”十目所視, 十手所指, 其嚴乎?” 富潤屋, 德潤身, 心廣體胖, 故君子必誠其意. 증자왈 : “십목소시, 십수소지, 기엄호?” 부윤옥, 덕윤신, 심광체반, 고군자필성기의. 증자께서 이런 말을 하신 적이 있다. “열 눈이 나를 보며, 열 손가락이 나를 가리키는 도다! ~ 무섭구나!” 부는 가옥을 윤택하게 하지만, 덕은 몸을 윤택하게 한다. 덕이 쌓이면 마음이 넓어지고 몸이 편안해진다. 그러므로 군자는 반드시 그 뜻을 성실하게 해야 하는 것이다.  - <대학 학기 한글역주> 278~279페이지, 도올 김용옥, 통나무

나는 이 세상에 이미 존재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과 연결될 수밖에 없다. 게다가 나의 마음은 매 순간 내 몸을 통해 바깥으로 드러나고 있다. 내 몸 안에 갇혀 있는 나의 마음이 알아차리지 못하는 순간에도 사람들은 나의 언행을 보고서 나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있음을 나는 알고 있다. 그러니 한 번 시작한 일을 어찌 쉽게 그만 둘 수 있겠는가!

그래서 정성을 다해 매일 글을 썼다. 어떤 날은 술술 잘 쓰였고, 어떤 날은 생각이 이어지지 않아서 졸렬한 글이 나왔다. 글을 완성하고 나면 미련 없이 공유했다. 글의 좋고 나쁨은 어쩔 수 없지만, 나의 정성은 나만이 증명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내일 조금 더 잘 쓰면 되니까.

하루가 이틀이 되고 이틀이 사흘이 되고 날마다 쓴 글이 산 위에 낙엽이 쌓이듯이 켜켜이 쌓여갔다. 오늘이 글을 쓴지 232일째이다. 232일 동안 글을 쓰다 보니, 내 자신을 더 잘 알 수 있게 되었다. 나의 공부의 수준도 알아차리게 되었다. 아직도 부족하다. 그런데 부족하기 때문에 즐겁기도 하다. 부족하다는 것이 내일 더 새로워질 수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이제 내일부터는 365일 글쓰기가 시작된다. 첫 번째 백일글쓰기에서 멤버들이 함께 다짐했던 것처럼 천 번의 글을 쓸 때까지 나날이 새로워지는 글을 쓰고 싶다. 천일 후에 함께 카페에 모여 천일을 달성을 자축하고 싶다. 이것이 내가 364글쓰기를 하는 각오이다.

글자수 : 2441(공백제외)
원고지 :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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