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5일][12월14일][백일글쓰기2] 조지
오웰이 휴양지에서 본 것
조지 오웰의 산문집 <나는 왜 쓰는가>에는 총 29편의 산문(Essay)가
수록되어 있다. 수많은 산문 중에 특별히 고른 29편은 한
편 한 편이 모두 보석처럼 빛이 난다. 산문은 소설과 달리 작가의 본연의 모습을 투영한다. 마치 작가가 내 앞에서 자신의 생각을 조곤조곤 이야기해주는 듯하다. 나는
이 산문집은 사흘에 걸쳐 300페이지까지 읽었다. 초기 작품은
마치 단편 소설 같았다. 어떻게 산문을 소설처럼 쓸 수 있을까! 나의
글쓰기와 너무나 비교되어서 부끄러워 내 자신에게 화가 났다. 차근차근 한 편씩 읽어 보니, 조지 오웰은 산문일지라도 오랜 기간에 걸쳐 썼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다듬고
또 다듬은 작품들이었다.
산문집의 제목은 1946년 발표한 <나는
왜 쓰는가 Why I Wirte>라는 에세이에서 왔다. 짧지만
강렬한 문장이었다. 이 에세이에 대해서는 다음에 이야기하기로 하고 오늘은 <마라케시>라는 에세이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다. 그의 산문 중에서 <교수형>
<코끼리를 쏘다> <스페인의 비밀을 누설하다> <민족주의 비망록> <나는 왜 쓰는가>는 많은 사람들이 언급할 정도로 유명하다--- 이들 에세이에
대해서도 한 편씩 다뤄보려 한다. 그런데 나는 <마라케시>에서 더 큰 울림을 느꼈다. 이 작품을 통해 조지 오웰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다른 작가들과 확연히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작품이 지금까지도
읽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보통 사람들은 휴양지에 도착하면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을 본다. 그리고는 마치 지상낙원인 것처럼 찬양할 것이다. 조지 오웰이 본
것은 휴양지가 아닌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었다. 그렇다고 모로코에 사는 유색 인종들을 백인으로써 내려다
보지는 않는다. 같은 인간으로서 그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며 그들의 현실을 말한다.
매일 오후 아주 나이 많은 여인들이 장작을 한 짐씩 지고서 내가 살고 있는 집 앞길로 줄지어 지나간다. 그들은 하나같이 나이와 햇볕에 미라처럼 바짝 말랐으며, 예외 없이
아주 작다. 원시적인 생활을 하는 사회에서는 여인들이 일정 나이가 되면 어린아이만 하게 오그라드는 게
보통인지도 모른다. 하루는 4피트도 될 리 없는 불쌍한 노파가
어머어마한 나무 짐을 지고 내 앞을 기어가듯 하는 것이었다. 나는 그녀를 불러 세우고서 5수짜리 동전 한 닢을 쥐여주었다.(반 페니도 안 되는 돈이었다). 그녀는 거의 비명에 가까운 고음의 탄성을 질렀는데, 고마움도 있지만
놀라움이 더 큰 소리였다. 그녀 입장에서 보자면, 나는 그녀를
알아봄으로써 거의 자연의 법칙을 거스른 셈이었지 싶다. 그녀는 노파로서의, 짐 나르는 짐승과 다를 바 없는 자기 신분을 받아들이고 있었던 것이다. 여기서는
가족이 어딜 갈때면 아버지와 장성한 아들이 당나귀를 타고 앞서가고, 나이 많은 여자는 짐을 지고 따라가는
게 보통이다. - <나는 왜 쓰는가> 73페이지, 조지 오웰, 한겨례출판
조지 오웰은 매일 자기 집 앞을 지나가는 장작 더미를 무심코 봤었다. 그것은
그냥 장작더미였다. 그런데 어느 날 그 장작더미 밑에 쪼그라든 사람을 본 것이다. 말도 안되게 무거운 짐 밑에 개도 염소도 당나귀도 아닌 무려 사람이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사람을 한 눈에 알아채지 못했던 자신에 놀란다. 나는
이 부분에 크게 공감했다. 우리는 매일 여러 종류의 시설을 이용한다.
시장, 마트, 백화점, 지하철 등등등. 이 곳에 우리의 시선을 끄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대체로 잘 꾸민 사람들이다. 그들은 허리를 꼿꼿하게 펴고 세팅된
머리를 높이 들고 한 손에는 명품 가방을 들고 유행에 맞는 옷을 입고 있다. 그들 스스로도 사람들의
주목을 받을 것을 알고 있고, 사람들도 그들을 자동적으로 의식한다. 사람들은
부러운 듯 경모하는 눈빛으로 그들을 바라본다. 그런데 잘 차려입은 그들 곁에는 항상 밀대와 빗자루를
든 사람들이 있다. 그 누구도 밀대나 빗자루 따위는 관심조차 두지 않는다. 밀대와 빗자루를 쥐고 있는 사람은 아예 안중에도 없다. 분명 그
자리에 있지만 보이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어느 날 갑자기 밀대와 빗자루를 든 사람이 눈에
들어오고 나면, 그 다음부터는 그들을 어디에서나 발견하게 된다. 추운
날 빗자루를 들고 길거리를 쓰는 사람을 발견하기도 한다. 비가 와도 무더워도 눈이 와도 거리가 항상
깨끗했던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마트의 바닥을 쉼없이 밀대로 밀고 다니는 사람을 발견할 때는 한탄이
나온다. 이 마트의 바닥이 항상 깔끔했던 이유가 있었다. 이
사실을 알고 나면 어디를 가든지 그 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어떤 사람들이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에 관심을 두게 되는 것이다. 시설이 아닌 사람을 통해 현재의 사회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마라케시>에는
노파 뿐만 아니라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조지 오웰은 군더더기 없이 그들을 묘사하고 뒤로
물러난다. 판단은 독자들의 몫으로 남겨둔다. 그래서 그의
글을 읽고 울림을 느끼는 것이리라.
그는 말한다. “(무거운 짐으로) 등이 다 벗겨진 당나귀를 보고서 안쓰러워할 수 있지만, 장작더미
밑에 웅크린 노파가 눈에 띄기라도 하는 것 우발적인 사고에 가까운 것이다.” 나는 생각한다. 길고양이가 추위에 몸을 잔뜩 웅크리고 있는 모습을
보면 가슴이 미어지지만, 노숙자가 공원벤치에 웅크리고 있는 모습을 보면 종종 걸음으로 피해간다.
글자수 : 2001자(공백제외)
원고지 : 13.81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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