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9일][09월19일][백일글쓰기2] 루쉰의
단편소설 고향을 읽고
我想:希望是本无所谓有,无所谓无的。这正如地上的路;其实地上本没有路,走的人多了,也便成了路。나는
생각했다. : 희망이란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다. 그것은 마치 땅 위의 길과 마찬가지다. 실제는
땅 위에 길이란 원래 없는 것이다. 다니는 사람이 많아지면 곧 길이 된다. - <고향>, 루쉰
어제부터 이틀에 걸쳐서 루쉰의 단편소설 <고향>을 원문으로 읽었다. <고향>은 1919년 12월에
소흥에 있는 어머니를 모시고 오는 실제의 사건을 묘사한 산문이자 소설이다. 루쉰은 20년만에 고향 소흥으로 간다. 몰락한 가문의 집을 비워주는 과정에서
어린 시절의 친구 룬투를 다시 만난다. 룬투와의 찬란한 기억은 고향을 아름다운 곳으로 기억하게 하지만, 현실은 황량하기만 하다. 20년만에 만난 룬투도 힘든 삶을 꾸려
나가는 농부가 되어 북경에서 온 지식인 루쉰과 대조를 이룬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고향과 이별하면서도
루쉰은 룬투에 대한 기억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하지만 루쉰은 룬투와는 다른 길을 가야만 한다. 그 길은 이제 막 만들어지는 길이다.
사람들에게는 누구나 마음 속에 고향이 있다. 그 곳이 멀리 떨어져
있든 가까이 있든 상관없이 고향은 언제나 갖가지 추억으로 꾸며져 아름답게 기억되고는 한다. 그러나 실제의
고향과 내가 기억하는 고향은 사뭇 다르다. 작년에 국민학교 6학년
여름에 떠났던 순천을 갔었다. 나는 그곳에서 초등 1학년
여름부터 총 5년을 살았다. 어린 시절의 추억이 듬뿍 담긴
거리와 학교를 방문했다. 그러나 내가 살던 집은 사라졌고, 거리는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다만 학교는 더 낡아져 있을 뿐 예전 모습 그대로 남아 있었다. 넓은 운동장에 서있노라니, 처음 자전거를 배우던 기억이 갑자기 떠올랐다. 친구가 뒤를 잡아주어서 자전거를 배울 수 있었는데, 그 친구가 누구인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운동장에 서서 기억조차 나지 않는 친구를 그리워했다. 그 곳에는 나도 그 친구도 없는데도 말이다. 고향이란 그런 것이다. 항상 내 기억 속에 존재할 뿐 현재에는 없는 곳이 바로 고향이다.
사람은 항상 현재를 산다. 현재에 어떤 것을 보고 듣는지에 따라, 한 사람이 가는 길이 정해진다. 지금 내가 읽고(보고/듣고) 있는 텍스트는
무엇인가? 나는 그 텍스트를 읽으며 (보며/들으며) 어떤 생각을 하는가? 내가
읽고(보고/듣고) 생각하는
것이 바로 나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없다. 이런 식으로 매 순간 나는 나의 길을 만들어 나가고
있다. 이 과정에서 미래는 이야기될 수 없다. 왜? 나는 매 순간의 현재를 살기 때문이다. 또 나는 희망을 말할 수
없다. 희망은 미래에 속한 영역인데, 미래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미래를 이야기하고 희망을 품는다.
미래란 무엇인가? 현재에 서서 나아갈 길을 바라본 것이다. 희망은 무엇인가? 현재에서 뻗어나간 길이 가기를 바라는 방향이다. 그러므로 미래와 희망은 모두 현재에 뿌리를 두고 있다. 따라서 지금
이 순간 무엇을 하는지가 미래의 열쇠이며 희망의 씨앗이다.
글자수 : 1053자(공백제외)
원고지 : 7.65장
#연금술사 #백일글쓰기
#숭례문학당 #루쉰 #단편소설고향
#사람이많이다니면곧길
댓글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