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9일][04월18일][365매일글쓰기] 총명과
우둔의 갈림길
물건에는 근본(根本)과
지말(枝末)이 있고 일에는 시작과 마침이 있으니, 먼저 해야 할 것과 뒤에 해야 할 것을 알면 ‘도’에 가까울 것이다. - <나를 넘어서는 학문, 대학강의> 36페이지, 전호근, 동녘
<대학>의 두
번째 장에 나오는 구절은 오래오래 곱씹어 볼만 하다. 어떤 일을 하다가 혹은 어떤 생각을 하다가 문득문득
떠오르는 좋은 구절이다. 물론 두 번째 장만 그런 것은 아니다. <대학> 전체가 삶 곳곳에서 보물처럼 빛을 발한다. 인용한 대목의 원문은
다음과 같다. “物有本末, 事有終始, 知所先後, 則近道矣. 물유본말, 사유종시, 지소선후, 즉근도의.” 12글자에 담겨진 뜻은 무궁무진하기만 하다. 그 예를 <삼국지 3권>에
등장하는 원소에서 찾아보자.
장면 1
마침내 원소는 문관과 무관들을 불러모아놓고 군사를 일으켜 조조를 공격할 일을 의논했다. 먼저 모사 전풍이 말한다.
“해마다
군사를 일으켜 백성들의 살림은 극도로 피폐하고 창고는 텅 비어 있는데 또다시 대군을 일으키는 것은 옳지 않은 일입니다. 먼저 사람을 허도로 보내 우리가 공손찬을 꺾었다고 황제께 첩보를 올리십시요.
만약 첩보가 제대로 올려지지 않거든, 조조가 임금과 신하 사이를 가로막는다고 상소하십시오. 그리고 급히 군사를 여양(黎陽)에
주둔시키고, 다시 하내(河內)에 군선들을 걸집하고 병기를 손질한 뒤 정병으로 하여금 변방을 지키게 한다면,
3년 안에 천하대세를 정할 수 있을 것입니다 - <삼국지 2권>, 236~238 페이지,
나관중 지음, 황석영 옮김, 창비
원소의 선조들은 대대로 한나라에서 높은 관직을 지냈다. 명문가 출신인
원소의 주변에는 부와 명성을 보고 온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젊은 시절 조조는 원소의 발끝도 쫓아가지
못할 정도로 원소는 생애내내 뭇 사람들의 인정을 받았다. 그런 원소가 황제(헌제)로부터 받은 유주에서 출정한 이후, 계략으로 기주를 손에 넣더니, 조조에서 연주를 빼앗았고, 공손찬을 쳐서 병주를 빼앗았다. 황화강의 북쪽 4개 주를 손에 넣은 원소의 위세는 실로 대단했다. 조조에게는 황제(헌제)가 있지만 겨우 예주 하나만을 차지하고 있었으니 원소와 조조의
세력은 큰 차이가 났다.
원소는 청주를 손에 넣자마자 당장 군사를 일으켜 조조를 치고 싶어했다. 이때
원소의 문인 중 한 사람인 전풍과 저수는 명분없는 전쟁을 반대하고, 군대도 정비하고 명분을 만들자고
의견을 제시한다. 대대로 명문가였기에 충직한 신하들도 많았지만, 원소에게는
충정을 알아보는 눈이 없었다. 그는 항상 자신이 듣고 싶은 말만을 선별해서 들었다. 자신의 마음에 맞지 않는 말을 꺼려했으며 심하면 충언을 한 부하를 내치거나 감옥에 가두거나 죽이기도 했다. 이것은 원소가 본말(本末, 근본과
지말)을 구분할 지혜가 없음을 보여준다.
장면 2
전풍이 고한다.
“지금
조조가 동쪽으로 유현덕을 치러 떠나 허도가 텅 비었으니, 이틈에 군사를 거느리고 가서 공격한다면, 위로는 황제를 보존하고 아래로는 도탄에 빠진 만백성을 구하는 일입니다. 이는
참으로 좋은 기회이니 명공께서는 어서 결단을 내리소서.”
넋이 나간 원소가 답한다.
“나도 좋은 기회인 줄은 알지만, 내
마음이 산란하여 아무래도 군사를 일으켰다가는 이롭지 않을 듯 싶소.”
“무엇 때문에 그리 마음이 산란해하십니까?”
“다섯 아이 가운데 그 애가 남달리 뛰어났는데, 만에 하나 잘못되기라도 하는 날에는 내 운명도 다한 것이나 같소.”
<중략>
전풍은 들고 있던 지팡이로 땅을 내리치며 말한다.
“하늘이 내려준 기회를 한낱 어린아이 병 때문에 놓치고 말다니, 참으로 안타깝도다!”
- <삼국지 2권> 291페이지, 나관중 지음,
황석영 옮김, 창비
원소와 조조는 양립할 수 없는 세력이었다. 누구든 한 쪽이 사라져야만
승자가 천하를 제패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원소는 아우 원술과 마찬가지로 황제가 되고자 하는 야망이
있었다. 그의 문신인 전풍은 원소의 야망을 잘 이해했다. 당시
원소는 황하강을 남하하여 허도 바로 위에 있는 관도에 대군을 주둔시키고 있었다. 적이 바로 눈 앞에
있음에도 조조는 서주의 유현덕을 치기 위해 20만 대군을 끌고 떠났다.
이 소식을 들은 전풍은 원소에게 지금이 허도를 칠 절호의 기회라고 조언한다. 하지만 원소는
움직이지 않았다. 이유는 그의 다섯 아이 중 막내가 아파서 였다. 조조와
부하들은 원소의 성정을 정확히 꿰뚫어 보고, 눈앞의 원소를 둔 채로 서쪽을 정벌하러 떠났던 것이다.
장면 3
모사 전풍이 나서서 간한다.
“지난번 조조가 서주를 치러 나가 허도가 텅 비었을 때 공격했어야 합니다. 지금은 조조가 서주를 손에 넣어 그 위세가 강성하니 가볍게 대적할 수 없습니다. 좀더 돌아가는 사정을 살핀 뒤에 다시 기회를 보아 움직이는 게 좋을 듯합니다.
“
<중략>
마침내 원소는
군사를 일으키기로 했다. 다시 전풍이 나서서 간했으나, 원소는
화를 내며 전풍을 꾸짖는다.
“그대는 문(文)을 희롱하며 무(武)를
가볍게 여기니, 나로 하여금 대의를 잃게 하려는 겐가!”
“만일 신의 충언을 귀담아듣지 않고 출정하신다면 이롭지 않을 것입니다.”
원소가 격노하여 즉시 전풍의 목을 베려는 것을 곁에 있던 유현덕이 극구
만류했다. 전풍은 죽음을 면했으나 결국 옥에 갇히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 <삼국지 3권> 22~23페이지, 나관중 지음, 황석영 옮김, 창비
장면 2와 장면 3을 통해
원소는 먼저 해야 할 것과 나중에 해야 할 것을 판단하지 못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모든 일에는 시작이
있고 끝이 있다. 어떤 일이 시작되는 것을 나의 상황에 맞추어 조절할 수 없다. 일이란 파도처럼 밀려왔다 밀려나간다. 어떨 때는 낮은 파도 치고
어떤 대는 높은 파도가 친다. 이 또한 사람이 조절할 수가 없다. 마치
대자연의 흐름처럼 일도 그렇게 흘러간다. 조조는 원소의 성격을 제대로 파악하고 흐름에 따라 일을 처리해왔다. 반면에 원소는 어떠한가! 그에게는 근본과 말단도, 시작과 끝도, 선후관계도 없다. 오직
자기 마음 가는대로 판단하고 움직일 뿐이다.
장면 4
원소는 다시 유현덕을 장막으로 청해 높이 앉힌 다음, 함께 안량의
원수를 어찌 갚을까 의논했다. 이때 장막 앞에 있던 한 장수가 나서며 말한다.
“안량은 나의 형제 같은 사이인데 역적 조조에게 죽임을 당했으니, 내 어찌 그 원한을 갚지 않을 수 있겠소이까!”
유현덕이 보니, 신장이 8척이요 얼굴은 해태와 흡사한 그는 바로 하북의 명장 문추였다. 원소가
크게 기뻐하며 말한다.
“네가 아니면 안량의 원수를 갚지 못할 것이다. 10만 군사를 줄 터이니 즉시 황하를 건너 역적 조조를 추살하라”
저수가 만류한다.
“그건 안됩니다. 우리는 우선
연진에 주준하고, 또 군사를 나누어 관도를 지키는 것이 상책입니다. 경솔히
황하를 건넜다가 만일 큰 변이라도 생기면 모두들 돌아오지 못할 겁입니다.”
원소가 버럭 화를 낸다.
“너희 문신들은 매번 군사들의 사기를 떨어뜨리고, 맥없이 세월만 보내며 대사를 그르칠 작정이구나. 자고로 싸움은 신속하게
하는 것이 제일이라는 말도 모르느냐?”
- <삼국지 3권> 31페이지, 나관중 지음, 황석영
옮김, 창비
199년 3월 원소는 장면1을 통해 강을 건너 대군을 허도 바로 코 앞인 관도에 주둔시킨다. 그러다가
강의 북쪽 업으로 회군시켰다. 200년 4월 업에 주준해
있던 군대를 둘로 나누어 안량을 강 남동쪽 백마로, 문추를 강 남서쪽 연진으로 보낸다. 조조군에 의해 안량이 죽자, 모사 저수는 안량의 복수보다는 연진과
관도를 지켜야 한다고 조언을 한다. 원소는 귀가 얇았다. 그의
곁에서 그의 마음에 맞는 말만 골라하는 신하들이 너무 많았고, 충직한 신하들이 하는 말은 원소에게는
썼다. 그래서 갈대와 같은 원소의 마음을 얻고자 하는 신하들은 서로 경쟁했고 서로 시기했다. 공을 세워 원소의 눈에 들고 싶은 마음밖에 없었다. 결국 문추도
조조의 손에 죽고 만다.
장면 5
한편 조조는 마침내 군량이 바닥났다는 보고를 받고 급히 허도에 있는 순욱에게 곡식과 마초의 조달을 재촉하는
서신을 보냈다. 그런데 조조가 보낸 사자는 30리도 채 못
가서 원소의 군사에게 붙잡히고 말았다. 그는 사지가 결박당한 채 허유 앞으로 끌려갔다. 허유의 자는 자원으로, 조조와는 일찍이 친구간이었는데, 지금은 원소에게 의탁해 모사 노릇을 하고 있었다. 사자의 몸을 뒤져서
군량을 재촉하는 조조의 편지를 발견한 허유는 곧 원소에게 글을 내보이며 말했다.
“조조가 관도에 군사를 주둔하고 우리와 대치한 지 이미 오래라 허도는 지금
방비가 허술할 것입니다. 이때를 틈타 군사를 나누어서 밤새 기습한다면,
쉽사리 허도를 수중에 넣는 것은 물론이요. 조조까지도 사로잡을 수 있습니다. 더욱이 이제 군량미가 바닥난 눈치이니 이 기회에 양쪽을 동시에 공격하도록 하시지요.”
- <삼국지 3권> 130~131페이지, 나관중 지음, 황석영 옮김, 창비
원소는 넒은 땅으로부터 식량과 자원을 계속 조달할 수 있었지만, 조조에게는
한정된 자원만 있었던 탓에 군량이 부족했다. 원소의 모사 허유는 조조의 편지를 입수하고 원소에게 지금이야
말로 허도를 칠 기회라고 조언한다. 직전에 조조에 의해 안량과 문추를 읽은 원소는 의기소침하여 허유의
말을 듣지 않는다. 오히려 허유흘 시기하는 동료가 허유를 무고했고, 원소는
허유를 내친다. 허유의 아들과 조카가 옥에 갇히자, 허유는
조조에게 투항해버린다. 그리고는 조조에게 원소의 비밀을 귀뜸해준다. 원소의
군량과 군수품이 모두 오소에 있다는 일급 비밀을 알려준 것이다. 조조는 즉시 군사들에게 원소군대의 군복을
입히고서 원소의 진영을 지나 오소로 가서 군량과 군수품을 모조리 불태워버린다.
장면 6
조조가 오소로 가서 식량을 태웠다는 소식을 들은 원소의 막사에서는 설전이 벌어졌다. 곽도는 조조의 본진을 쳐야 한다고 주장하고, 장합과 고람은 오소로
가서 조조를 쳐야 한다고 주장한다. 두 주장 사이에서 원소는 어떤 선택을 했던가? 원소는 고집스럽게 자기 주장을 하는 곽도의 의견을 채택했다. 원소의
명을 받아 장합과 고람은 조조의 본진을 향해 떠났다. 거기에는 조조가 미리 단단히 준비해둔 군대가 지키고
있었다. 결국 장합과 고람은 크게 패했고 겨우 도망쳤다. 이때
원소는 또 어떤 선택을 했을까? “어리석은 군주에게는 간사한 신하가 있기 마련-143페이지”이라서 곽도는 원소에게 장합과 고람을
모함하고, 장합과 고람에게는 원소가 죽이려한다고 귀뚬해주는 이간계를 펼친다. 결국 장합과 고람은 조조에게 투항하고 만다.
이리하여 원소는 앞서 모사 허유를 잃더니, 이번에는 맹장 장합과
고람을 잃었다. 게다가 오소의 군량마저 몽땅 잃고 말았으니 군심이 크게 동요하여 하나같이 전의를 상실하고
말았다. - <삼국지 3권> 145페이지, 나관중 지음,
황석영 옮김, 창비
원소의 배경과 힘은 조조보다 창대했다. 그러나 조조와 원소간의 총명함에
차이가 있었으니, 조조는 본말(本末), 시종(始終), 선후(先後)를 알았고, 원소는
그러지 못했다. 일찍이 순욱은 조조에게 말했다. “고금의
역사를 보면, 성공과 실패는 사람에게 달린 것이지 세력에 달린 것이 아닙니다. 만약 진정한 영웅이라면 당장은 조금 약하더라도 강대해질 수 있습니다. 이와
반대로 모조품이라면 현재는 강하다더라도 금방 약해질 것입니다.”-<삼국지 강의> 209페이지, 이중텐, 김영사
조조는 순욱의 말에 큰 힘을 얻었고, 용감하게 원소에 맞서 싸웠다. 그리고 결국 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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