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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7일][04월06일][365매일글쓰기] 소설과 기록의 차이

[097][0406][365매일글쓰기] 소설과 기록의 차이

 

조조는 연주(兗州)에 머물면서 널리 인재를 불러모았다. <중략> 유엽이 또한 두 사람을 천거한다. 한 사람은 산양 창읍의 만총이란 사람으로 자는 백녕이요. 또다른 사람은 무성의 여건이란 사람으로, 자는 자각이다. 조조도 그들의 이름을 일찍부터 들어서 알고 있던 터라 곧 그들을 불러들여 군중종사(軍中從事)로 삼았다. 만총과 여건이 함께 또 한 사람을 천거하니, 그는 곧 진류 평구 사람 모개(毛玠)로 자는 효선이다. 조조는 그 역시 초빙하여 종사로 삼았다. - <삼국지 1> 232~234페이지, 나관중 지음, 황석영 옮김, 창비

 

소설 삼국지(원래이름은 삼국지연의)에서는 그저 스쳐가듯이 한 사람의 이름이 거론되었다. 모개. 192(헌제 초평 3) 조조는 낙양에 있는 관료의 추천으로 청주(靑州)의 황건적을 토벌하라는 조정의 명을 받는다. 동탁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계책을 썼던 왕윤마저도 죽임을 당한 후 동탁의 수하인 이각과 곽사가 정권을 잡고 있을 때였다. 황건적을 성공적으로 토벌한 조조는 연주에 자리 잡았고, 195 10월에 정식으로 연주목이 되었다. 연주에 자리를 잡은 조조는 인재를 불러모았다. 한 사람이 천거되면 다시 또 한 사람을 천거하는 식으로 인재들이 모여들었다. 이때에 들어온 인재 중 한 사람이 모개이다.

 

간웅이라고 알려진 조조는 인복이 있는 사람이기도 했다. 한 번 그의 사람이 되면 서로 신뢰로 관계를 맺었고, 자기 사람을 잘 챙겼다. 보통의 주종관계에서는 사소한 의심으로 서로 관계가 틀어지기도 하는데, 조조는 이점을 잘 알았고 큰 문제가 아니면 신하가 배신해도 버리지않고 용서했다. 연주에서 조조는 모개와 긴 시간 대화를 나눈다. 이때 모개는 조조에게 조조판 융중대(隆中對)’를 제시한다. 융중대는 제갈공명이 유비에게 천하삼분계를 제시한 유명한 산문으로 제갈공명의 출사표와 더불어 명문장으로 알려져 있다.

 

모개는 조조에게 무엇을 건의했을까?

 

모개는 조조에게 천자를 받들고, 농업을 중요시하며, 군수 물자를 비축하라는 세 가지 건의를 합니다. 모개는 이렇게 말합니다. “전쟁은 의로운 자가 승리를 거두며, 자리는 재력으로 지키는 법입니다. 천자를 받들어 불충한 신하들을 호령하고, 농사를 중시하며, 군수 물자를 비축해야 합니다. 이렇게 하다면 패왕의 공업을 성취할 수 있을 것입니다.” <중략> 만약 천자를 받들어 모실 줄 아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의심할 여지없이 인심을 크게 얻을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모개의 심모원려(深謀遠慮)였습니다. - <삼국지 강의>, 146~147페이지, 이중텐, 김영사

 

모개의 조언에 따라 조조는 196(현제 건안 원년) 둔전제(屯田制)를 시행했다-상세 내용은 <095일차 그들은 왜 싸웠나> 참조. 둔전제로 인해 조조는 군수 물자와 농업 두 가지 문제를 해결했다. 그러면 천자를 받는 것은 어떻게 해결해야 했을까? 당시 천자였던 헌제는 장안에서 낙양으로 오는 길이었다. 이름뿐인 천자의 여행길은 순탄치 않았다. 여기저기서 헌제를 납치했고 대우도 형편없었다. 1967월 헌제가 겨우 낙양에 도착해보니, 궁은 모조리 불탔고 입을 것도 먹을 것도 없는 거지나 다름없는 형편이 되었다. 황제를 따르던 무리 중 일부는 배고픔을 견디다 못해 궁밖으로 나갔다가 죽임을 당하기도 하고 굶어죽기도 했다. 대신들을 풀을 뜯어먹으며 연명하고 있었다. 1968월 조조는 낙양으로 들어가 헌제에게 선물과 양식과 술, 고기를 올렸다.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음식이었다. 조조 조차도 황제가 그런 거지같은 생활을 하고 있을 줄 몰랐었다. 헌제는 조조가 자신을 염려해주고 받들어주자 감격했고, 조조에게 부절(符節)과 황월(黃鉞), 녹상서사(錄尙書事)라는 관직을 수여했다. 이로서 조조는 황제의 신임은 물론, 군법 집행권(부절), 대내외적인 지휘권(황월)과 최고의 행정권(녹상서사)을 갖게 되었다.

 

여기서 짚어봐야 할 대목이 있다. 동탁과 조조의 황제를 대하는 방법의 차이이다.

 

동탁은 서북땅에서 온 흉폭한 장수였다. 동탁은 사람을 죽이는데에 거리낌이 없었기에 낙양에 들어와 공포를 무기삼아 정권을 잡았다. 그러나 지배계층인 관료들이 동탁을 인정하지 않았다. 사사건건 대드는 관료들의 입을 닫게 하기 위해 동탁은 대범한 행동을 했다. 황제를 폐위시키고 새로운 황제를 올린 것이다. 영제의 뒤를 이은 소제 유변은 하태후의 아들이었다. 하태후의 오빠인 하진은 이미 십상시 손에 죽임을 당했고, 하진의 어리석은 계책 덕에 동탁은 낙양을 손쉽게 들어올 수 있었으나, 하태후는 여전히 정치적으로 무시할 수 없는 상대였다. 한편, 진류왕 유협의 어머니인 왕미인은 오래 전에 하태후에게 독살을 당해서 정치적인 면에서 쉬운 상대였다. 동탁은 진류왕(헌제)을 황제로 세우고 손에 놓고 쥐락펴락했다. 황제를 폐위시키자 낙양의 관료들이 드디어 모두 입을 닫았다. 그러나 이 일은 오히려 동탁의 몰락을 불렀다. 황제 폐위 사건으로 동탁이 백성의 공적이 된 것이다. 정통 유교관에 따르면, 천자, , 황제는 하늘이 내린 사람이라 함부로 바꿀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천하 사람이 동탁을 적으로 삼고 주살하려 했다. 결국 황제 폐위사건은 동탁을 죽게 만들었다.

 

조조는 어떠했을까? 조조는 이리저리 치이며 천대받던 황제(헌제)를 지극 정성으로 받들었다. 마치 집사처럼 세심하게 돌봤다. 아무것도 없는 황제(헌제)에게 이런 저런 물품을 제공할 때 조조는 국가의 물건을 반납하는 방식을 썼다. 조조가 바치는 물건들은 황제(헌제)의 선조들이 조조의 집안에 내린 물건들이므로 그대로 돌려드린다는 표현을 사용한 것이다. 이것은 조조가 황제(헌제)에게 호의를 베푸는 것이 아니라 자식이 부모를 공양하듯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한다는 의미였다. 황제(헌제)는 조조를 깊이 신뢰하게 되었다. 그리고 비록 이름뿐일지라도 조조에게 대장군의 지휘를 내렸다. 한나라에서 대장군은 황제 바로 아래의 자리로 최고의 실권자가 됨을 의미했다. 하지만 조조는 어리석지 않았다. 아무리 이름뿐일지라도 대장군 지위를 사양하고 원소에게 돌렸다. 황제(헌제)의 신임을 받는 조조는 드디어 불충한 신하들을 중앙(조조)에 복종하게 만들 명분을 갖추게 되었다.

 

이 모든 일은 어디에서 왔는가? 조조가 영입한 인재들에게서 나왔다. 조조는 영입 인재들 한명한명을 소중하게 대했다. 앞에서 이야기했다시피 조조는 아랫사람의 실수도 껴안았다. 왜 그랬을까? 20대 초반의 조조는 여백사 가족을 몰살하는 등의 많은 실수를 했다. 한 순간의 판단 착오로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만들었던 경험이 있기 때문에 가능했다. 조조는 누구나 실수는 할 수 있다는 점을 잘 이해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모든 사람의 실수를 눈감아주지는 않았다. 그 기준이 무엇인지는 다음 기회에 논하고자 한다.

 

글자수 : 2535(공백제외)

원고지 :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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