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6일][04월05일][365매일글쓰기] 집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들
코로나19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사회적 거리두기로 집안에만 있다 보니 가슴이 답답하다. 기분 전환을
위해 맛집에도 가고 싶고 영화도 보고 싶고 여행도 떠나고 싶지만 꾹 참기만 하자니 우울하기 그지없었다. 이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별 거 없었다.
1) 독서
홀로 책 읽기를 했었다. 한나 아렌트의 <인간의 조건>을 곁에 두고 항상 들고 다녔다. 그런데 자꾸만 독서 진도가 밀렸다. 하루 20페이지씩만 읽기로 했는데도 말이다. 의자가 딱딱해서 허리가 아프다며
놀고, 드라마 몰아보기를 한다고 놀고, 울적하다고 놀았다. 이래서는 안되겠다 싶어서, 함께 읽기 프로그램을 신청했다.
<삼국지 함께 읽기>는
쉬운 과정이다. 책의 권수가 10권이어서 60일 동안 진행된다. <삼국지 연의>라는 중국 고전 소설을 완역했기 때문에 술술 읽힌다. <삼국지>만 읽기 아쉬워서 중국 국영방송인 CCTV의 <백가강단>에서 인기를 끈 이중텐의 <삼국지 강의> 2권을 병행해서 읽기로 했다. 하나는 소설이고 다른 하나는 강연을 책으로 만들 것이라 둘 다 이해하기 쉬워서 좋다. 게다가 재미있기까지 한다. 아침에 눈 뜨면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서
벌떡 일어나 책을 읽게 되었다. 둘 다 합쳐서 하루 60~70페이지씩
읽는다. 60일간 천천히 꾸준히 읽고 생각하고 때때로 단상을 쓰려 한다.
<한나 아렌트 전작 읽기>는
어려운 과정이다. <인간의 조건>의 앞부분을 읽어봤는데
내용이 어려워 빨리 읽을 수가 없었다. 읽다가 곰곰이 생각해봐야 했고,
두세번 읽어야 이해가 되기도 했다. 기본적으로 철학 지식이 어느 정도 있어야만 한나 아렌트가
하려는 이야기를 이해할 수 있을 듯하다. 당연히 나는 철학 1도
모른다. 그래도 한나 아렌트의 책을 읽어낼 수는 있다. 단지
느릴 뿐이다. 한나 아렌트의 매력은 그녀가 나의 정신 세계를 체계적으로 정립해주고 있다는 점이다. 그녀는 고대 철학을 이야기하다가 현대의 관점으로 재해석해주기도 한다. 나는
소크라테스의 “악법도 법이다”를 근본적으로 잘못 알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고 충격을 받았다. 여기저기서 “악법도 법”이어서 소크라테스가 독을 마시고 죽었다고 말하니 그러려니 했었다. 한나
아렌트가 조곤조곤 짚어주는 관점을 읽고는 경악했다. 관점이 180도
달랐기 때문이다. 소크라테스의 마음을 이해하니 나의 마음도 재점검할 수 있었다. 한나 아렌트 덕분에 원뜻을 왜곡하는 섣부른 지식을 경계하게 되었다. 이
프로그램은 4월 9일에 시작한다. 프로그램이 시작하기 전까지는 실컷 놀 생각이다.
2) 학과 공부
2019년까지 중국어 공부를 완료하고 2020년에는 새로운 학과 공부를 하려 했다. 2019년 봄과 가을학기에
집중하면 가능한 일이었다. 그런데 2월에 갑자기 코로나19가 폭발적으로 퍼졌다. 이래저래 암울한 상황이 지속되었다. 정치인과 언론은 서로 싸웠다. 거친 말이 정제되지 않고 터져나왔다. 왜들 그러나 싶었다. 서로 협력해서 극복해야 하는데 싸우다니 한심하기
그지없었다. 그네들의 속셈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그래서
더 실망한 것이다. 게다가 가짜뉴스까지 황당함을 더했다. 이
가짜뉴스는 집단발병의 원인이 되기까지 했다. 희한했다. 사실보다는
거짓에 쉽게 매혹되는 인간 군상에 경악했다. 휴대폰으로 잠깐 검색만 해봐도 사실인지 거짓인지 알 수
있는 세상에 말도 안되는 일이 버젓이 일어나고 있었다. 심란했다.
휴학을 할까? 마음이 안정되지 않으니, 공부가 하기 싫었다. 이 공부를 반드시 해야 할 이유 따위는 없다. 막연히 미래준비 차원에서 시작한 중국어였다. 중국어를 반드시 해야만
이유 따위도 없었다. 하루하루를 그냥 보내기 싫어서 시작한 공부였고,
교육 과정이 튼실하고 학비가 합리적이서 선택한 방송대였다. 작년에 끝났어야 할 공부가 아직도
진행 중인 것은 집안일 때문이었다. 그래서 올해는 반드시 끝내리라 마음먹었을 뿐, 꼭 올해 끝내야 할 이유도 없었다.
해와 달과 지구는 쉬지 않고 움직이는데, 불안을 핑계로 쉬기는 싫었다. 매일 아침이 되면 해가 뜨고 저녁이 되면 해가 지는데, 울적하다고
아무것도 안하기는 싫었다. 그래서 마음을 다잡고 다시 공부하기 시작했다. 知止而后有定 지지이후유정. 마음을 정하고 나니 불안이 사라졌다. 定而后能靜 정이후능정. 불안이 사라지니 공부, 독서, 집안일 등 어느 것을 해도 편안했다. 靜而后能安 정이후능안. 이제 매일 안락한 마음으로 학과 공부를 해내고
있다. 더 이상 불안하지도 울적하지도 않다. 이대로 계속하면
학과 공부를 모두 마치고 졸업하게 될 것이다. 중국어 어학실력은 덤이다. 安而后能慮, 慮而后能得. 안이후능려, 려이후능득.
3) 뉴스 따라잡기
집안에 있는 시간이 늘자, 인터넷 검색을 하는 시간도 함께 늘었다. 예전에는 포털 검색이 전부였는데, 요즘은 포털은 눈팅만 하게 되었다. 포털 사이트들이 별볼일 없는 정보만 제공하기 때문이다. 정보는 SNS로 옮겨갔다. 신문이든 방송이든 뉴스는 다 동일하다. 틀린 그림 찾듯이 다른 점을 찾아야 할 정도로 개별성이 상실되었다. 신문사와
방송사 이름만 다를 뿐이지 다 똑같은 내용을 전달한다. 그러다 보니 매일 제대로 된 뉴스를 찾는 여행을
하게 되었다.
유튜브, 트위터, 구글, 논문사이트를 돌아다니며 제대로 된 컨텐츠를 찾는다. 쓸만해서 구독한
사람이나 사이트가 오염되면 과감히 버리고 새로운 구독처를 찾기도 한다. 이 논문 저 논문을 비교해서
읽기도 하고, 구글 검색으로 해외 언론을 참조하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찾아낸 정보는 세상을 잘 볼 수 있게 도와준다. 인구 5천1백만이 사는 이 나라는 어쩌다 이 지경까지 왔을까 한탄스럽다. 物有本末, 事有終始, 知所先後, 則近道矣
물유본말, 사유종시, 지소선후, 즉근도의.
맺는말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가 언제 끝날지 모르겠다. 집에만 계속 있다 보니, 이제는 이 상황에 적합한 먹고 사는 법을
터득하게 되었다. 바깥 활동을 하지 않으니 비가 오는지 꽃이 피는지 더운지 추운지도 모른 채 하루하루를
보낸다. 먹거리를 사러 집 근처 가게를 가는 길에 문득 고개를 드니 꽃이 피어 있었다. 추울 줄 알고 롱패딩을 입고 나왔다가 더워서 혼나기도 했고, 봄이
왔다고 가볍게 입고 나갔다 추워서 덜덜 떨기도 했다. 집안은 언제나 일정 온도를 유지하고 항상 불이
켜져 있어서 낮도 밤도 구별이 안된다. 시계를 봐야만 때를 알 수 있을 정도이다. 이럴 때 즐겁게 책을 읽고 생각하고 글을 쓰니 하루가 만족스럽다. 가벼운
마음으로 매일 학과 공부를 하니 하루가 알차다. 진지하게 진짜 뉴스를 찾는 하루는 흥미진진하다. 이 세 가지이면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도 견뎌 낼 수
있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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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고지 : 16.35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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