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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5일][04월04일][365매일글쓰기] 그들은 왜 싸웠나

[095][0404][365매일글쓰기] 그들은 왜 싸웠나

 

189년 동한의 영제가 붕어했다. 영제에게는 14세의 유변과 9세의 유협의 두 아들이 있었다. 영제의 뒤를 이어 유변이 황제가 되었지만, 동탁에 의해 폐위된 후 살해된다. 동탁은 둘째 유협(헌제)을 황제로 추대하고 정권의 최정점에 섰다. 동탁은 이리와 같은 자였다. 재미로 사람을 잔혹하게 죽이고, 공포정치로 정세를 장악했다. 이에 각지의 제후들이 동탁을 치고자 190년에 군사를 일으켰다. 발해 태수 원소를 맹주로 한 17명의 제후들은 사수관과 호뢰관에서  동탁과 대치하다 승기를 잡게 된다. 동탁은 불리해지자 낙양을 불태우고 장안(지금의 시안 인근)으로 천도를 해버린다. 불타버려 폐허가 된 낙양에 입성한 제후들은 곧바로 서로 싸우기 시작한다. ?

 

그무렵 연주 자사 유대는 양식이 떨어져 동군 태수 교모에게 군량미를 빌려달라고 청했다. 교모가 이를 외면하자, 유대는 군사를 거느리고 쳐들어가 교모를 죽이고, 항복하는 군사들을 제 휘하에 넣었다. - <삼국지 1> 153페이지, 나관중 지음, 황석영 옮김, 창비

 

한편 원소는 낙양에서 하내로 돌아와 군사를 주둔시키고 있었는데, 군량미가 떨어져 곤경에 처했다. 때마침 이 사실을 안 기주 자사 한복이 군사들을 위한 양식을 보내왔다. 이에 모사(謀士) 봉기가 원소에게 말한다. “천하를 주름잡아야 할 대장부가 남이 보내주는 양식에 의지한다는 게 말이나 될 일입니까? 기주는 땅이 넓어 자원도 풍부하고 곡식이 많이 나는 곳인데, 장군께서는 어째서 그곳을 수중에 넣을 생각을 하지 않으십니까?” <중략> “비밀리에 서신을 보내, 공손찬에게 함께 기주땅을 치자고 하십시오. 우리도 군사를 보내 협공하기로 한다면 공손찬은 반드시 군사를 일으킬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어리석은 한복이 장군에게 달려와 기주 일을 봐달라고 구원을 요청할 터이니, 그 기회를 적당히 이용하면 손쉽게 기주땅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 <삼국지 1> 156~157페이지, 나관중 지음, 황석영 옮김, 창비

 

<위서>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러 군대가 일제히 봉기했지만 일 년간의 식량 계획조차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굶주리면 약탈을 자행하고 배가 부르면 남은 것들을 버렸다. 결국 와해되고 유랑하여, 싸운 적군이 없는데도 스스로 패배하는 자들이 수를 셀 수 없을 정도 였다. “ <중략> 먼저 연주자사 유대가 동군태수 교모를 죽였고, 뒤에 발해태수 원소는 기주목 한복을 해치웠으며, 다시 원소와 원술 두 형제가 서로 기반을 무너뜨렸습니다. 원술의 방법은 북방의 공손찬과 손잡고 원소를 견제하는 것이었고, 원소의 방법은 남방의 유표와 손을 잡아 원술에게 맞서는 것이었습니다. 쌍방은 원교근공(遠交近攻)의 책략을 사용했으므로 <삼국지>에서는 그들 형제는 사이가 틀어지자 가까운 것을 버리고 먼 것을 사귐이 이와 같았다!”라고 탄식했습니다. - <삼국지 강의> 122~124페이지, 이중텐, 김영사

 

<삼국지 강의>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제후들은 전쟁을 하기 위해 꼭 필요한 식량 조달에 실패했다. 전쟁은 하루이틀 사이에 끝나지 않는다. 수개월에서 몇 년이 걸린다. 사수관과 호뢰관에서 동탁하고 대치하는 몇 달사이에 군량미가 동이 난 것이다. 먹을 것을 빼앗기 위해 동맹끼리 서로 죽이고 약탈을 했다. 연합군을 이끌던 원소도 예외는 아니었다. 식량이 풍족한 낙양 인근의 기주를 빼았고 기주에 눌러앉았다. 이 과정에서 원소는 북방의 공손찬과 척을 지게 된다.

 

유비는 낙양이 폐허가 된 뒤 원래 있었던 평원으로 되돌아 갔다. 당시 유비는 평원의 현령이었다. 한편 조조는 제후들이 한 황실을 구하기보다는 각자 딴 마음을 품고 있음을 알아차린다. 한 황실을 살릴 수 없을 깨닫고 크게 실망한 채로 군사를 일으켰던 양주로 돌아가버렸다.

 

<삼국지 강의>에 따르면 조조는 189년까지 능력있는 관료가 되기 위해 노력했다고 한다. 그러나 나이가 어리고 세상 경험이 적어 시행착오를 거듭했다. 조조의 할아버지가 환관 중에 높은 위치에 있었기 때문에 조조 또한 관료로서 일을 했다. 그러나 이미 한나라(동한)의 기운은 기울었다. 황제는 물론 측근들은 대놓고 돈을 받고 관직을 팔았다. 어마어마한 돈을 내고 관직을 얻은 관료들 또한 대놓고 백성들에게서 돈을 긁어 모았다. 이미 난세에 접어든 상태인지라 조조가 아무리 노력해도 올바른 정치를 펼칠 수 없었다. 한때 조조는 관직을 거절하고 낙향하기도 했다. 실의에 빠진 청년 조조는 동탁을 치기 위해 의거했다. 정의를 실현할 꿈에 부풀어 있던 청년 조조가 목격한 것은 황제가 되기 위해 기회를 엿보는 이리와 승냥이떼였다. 결국 조조는 크게 실망하고 양주로 귀환한 것이다.  

 

양주에 머무르던 조조는 192년 황건적에 의해 연주태수 유대가 죽자, 연주목을 대리하게 되었다. 연주에서 황건적 100만 군대를 겨우 수천명의 병사로 물리친다. 황건적 100만군대 중에 병사는 30만이었고, 나머지는 군대를 따르는 가속들과 농민들이었다. 농민들은 심지어 소와 농기구까지 가지고 있는 상태였다. 조조는 이들을 포섭해서 군대를 재조직했다. 그러자 조조는 곧 심각한 문제에 다다르게 되었다. 바로 식량문제였다. 다른 제후들과 동일한 문제에 직면한다. 조조는 어떻게 했을까?

 

조조는 196(현제 건안 원년)에 모사들의 건의를 받아들여, 둔전제(屯田制)를 시행하기 시작합니다. 당시에는 해마다 전쟁이 계속되었기 때문에 많은 토지가 이미 주인 없는 논밭이었습니다. 조조는 그것을 지방정부로 몰수한 뒤 그 일부를 군사들과 항복한 황건적 병사들에게 나누어 주어 농사를 짓게 하고, 군둔(軍屯)이라 이름을 붙였습니다. 또 일부는 땅을 잃은 농민들을 불러 모아 농사짓게 하고, 민둔(民屯)이라고 이름을 붙였습니다. 밭을 갈 소와 농기구는 정부에서 제공하고 동시에 5할 내지 6할의 세금을 거두었습니다. 이것을 둔전(屯田)이라고 부릅니다. ‘()’은 거주 방식의 전시편제화(戰時編制化)이자 경작 방식의 집단화로, 조조의 군 정보는 농장주가 되었습니다. - <삼국지 강의> 121페이지, 이중텐, 김영사

 

제후들 중 누구도 조조처럼 둔전제를 생각해 내지 못했다. 조조는 둔전제로 인해 군대와 민간을 하나로 합쳤다. 전투와 농사가 하나로 합쳐진 새로운 군대를 만든 것이다. 평화로울 때는 일을 하고 전쟁이 나면 싸우는 이 새로운 군대는 양식 창고이자 끊임없는 병사 제조원이었다. 군대의 보호를 받을 수 있다는 이점 때문에 떠돌아 다니던 사람(유민)들이 조조의 영역으로 자진해 들어오게 되니 조조의 군대는 점점 더 강성해졌다.

 

동탁의 난을 대하는 자세에 있어서는 오직 조조만이 영웅이었다. 다른 제후들은 사심에 사로잡혀눈이 멀어 버렸기 때문이다. 그 와중에 유비는 겨우 평원 현령의 관직을 얻었고, 아직 세상은 유비를 몰랐다. 동탁, 원소와 원술이 헛된 욕심을 부리다 몰락하는 과정에서 조조와 유비는 세상에 드러게 될 것이고 둘의 길로 갈리게 된다.

 

삼국지는 정말 흥미진진하다. 읽다 보면 이런저런 생각들이 뭉게뭉게 피어오른다. 아직 12/3 지점이다. 이 책은 10권까지 있다.

 

글자수 : 2630(공백제외)

원고지 : 1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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