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3일][04월02일][365매일글쓰기] 황석영
작가의 삼국지 세트를 사다
언제인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중학생 시절 읽었던 삼국지를 다시 읽어보려
했다. 고향집에서 중학생 때 읽었던 삼국지를 찾아냈지만, 책은
회생 불가능할 정도로 삭아있었다. 검색을 통해 이리저리 알아 본 결과,
황석영 작가의 삼국지가 읽을만 하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몇 달에 걸쳐 중고서점에서 10권을 다 사모았다. 이제 읽기만 하면 되었다. 그러나 읽어야 할 책들이 쌓여 있었고, 내용을 아는 삼국지는 매번
우선 순위에서 밀려버렸다. 그리하여 삼국지 10권은 책장에
꽂힌 채로 방치되었다.
나는 한편으로 올바르게 고전의 정신을 전달하는 것뿐만 아니라 어느새 사라져버린 동아시아 사람들의 세계관이라든가
인간관을 되새기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일방적인 생활방법의 세계화로 자기 문명의 뿌리와 대안들을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러한 교양과 세계관이야말로 근대 이래 우리가 가장 소홀히했던 부분이며, 동양은 이슬람을 포함해서 아직도 도처에서 사회적 실험의 와중에 있지 않은가.
나는 이런 마음가짐으로 서두르지 않고 조금씩이라도 꾸준히 번역을 진행했다. 출판사 측에서도
속으로는 애를 태웠겠지만 ‘믿어준다’는 태도를 유지하면서
참을성 있게 기다려주었다. 그렇게 7년의 세월이 흘러서야
드디어 책이 나오게 된 것이다. – <삼국지 1권> 13페이지, 나관중 지음, 황석영
옮김, 창비
4월 1일부터 시작한 <삼국지 함께 읽기> 덕분에 어제 하루 1권의 서문과 1장을 읽었다. 황석영
작가는 서문에서 삼국지에 대한 애정과 함께 번역 과정을 기술을 했다. 서문에서 내가 중학교 때 읽었던
삼국지는 요시까와 에이지(吉川英治)라는 일본 작가의 삼국지를
번역한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중에 알았지만 이것은 일제시대 삼국지의 대종을
이루었던 요시까와 에이지(吉川英治)의 번역본을 기본 줄거리로
하고 있었다. 즉 유비가 어머니를 위해 돗자리를 짜가지고 저자에 내다 팔아서 차를 구해 오다가 황건적을
만나는 일화가 첫 장면이었다.”(5페이지) 그랬다. 내가 읽었던 삼국지가 유비가 돗자리를 팔고서 어머니를 위해
귀한 차를 사는 장면부터 시작했다. 첫 장면은 무척 낭만적이었다. 누상촌의
아름드리 나무 아래에 있는 집에서 어머니를 지극정성으로 모시는 유비, 어머니를 위해 고급 차를 사는
유비, 황건적을 만나고 저자 거리에서 토벌문을 바라보는 유비 등 다양한 유비의 모습으로 도배되어 있었다. 그런데 웃프게도 <삼국지연의>에는
그런 유비의 모습은 나오지 않는다.
황석영 작가는 소설 삼국지를 쓴 것이 아니다. <삼국지연의>를 완역했다. 이것의 의미는 크다. 원작을 훼손하지 않았다는 뜻이니까. 고전을 읽을 때 가장 중요한
점은 원작을 있는 그대로 가감하지 않고 번역한 책을 읽는 것이다. 만약 번역자가 덧붙이고 싶은 말이
있다면 주석을 달아야 한다. 그래서 좋은 번역서는 주석이 많고 길다.
주석만으로도 책 한 권이 나올 기세이다. 황석영 작가는 특이하게도 주석을 달지 않았다. 원서의 깊은 풍미를 살리기 위해 자신의 의견을 최대한 억누른 것이다. 그러면서도
문학적인 면을 살리려 노력했다.
책을 읽을수록 황석영 작가에 대한 존경심이 일었다. 고전을 번역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오래된 글일수록 문체가 현대의 것과는 매우 다르다. 어떤 표현은 당대의 문화를 알지 못하면 제대로 번역해 낼 수 없다. 작가는
수많은 고민을 했고 전문가의 조언을 구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제대로 번역하기 위해 여러 참고자료를
공부했으며, 너무 많이 공부해서 시력까지 해쳤다고 한다.
나는 반성했다. 작가의 노력을 인정하려면 그의 책을 사야만 한다. 그러나 나의 책은 중고였다. 작가에게 미안해졌다. 바로 오프라인 서점에 전화를 걸었다. 재고가 있는지 물어봤다. 없단다. 이런 경우 보통은 서점측에서 주문할 거냐고 물어보는데 이번에는
그 질문을 하지 않았다. 알겠다고 끊었다. 또 다른 오프라인
서점은 앱으로 확인한 결과 우리 지역의 오프라인 서점에는 재고가 없었다. 결국 온라인 서점에 주문을
했다. 어제 밤에 주문한 책은 오늘 오후에 도착했다.
보송보송한 새 책을 꺼내 들었다. 책의 앞부분이 보강되어 있었다. 새 책을 사기를 잘했다. 1권을 펴서 2장과 3장을 읽었다. 밑줄
쫙쫙 그어가며 신나게 읽었다. 이것저것 하고싶은 말들이 머리 속에서 뭉게뭉게 떠올랐다. 그러나 어쩌랴! 시간이 부족하다.
책도 읽어야 하고, 공부도 해야 하고, 뉴스도
읽어야 한다. 그래도 내일부터는 자료를 보강해서 조금이라도 단상을 써봐야겠다.
삼국지는 언제 읽어도 재미있다. 게다가 무려 완역본이다. 정말 귀한 책이다.
글자수 : 1733자(공백제외)
원고지 : 11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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