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0일][03월30일][365매일글쓰기] 한나
아렌트 전작 읽기
한나 아렌트. 이 이름을 알게 된 것은 최근의 일이다. <조지 오웰 전작 읽기> 단톡방에서 이 이름이 등장했을
때가 떠오른다. 조지 오웰의 글 속에서 20세기초와 21세기초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발견하고서는 막막함을 느끼던 차였다. 게다가
조지 오웰이 주장하는 사회민주주의에 공감하지 못해서 더 막막했다. 21세기의 지구는 이미 자본주의가
두텁고 깊이 뿌리내리고 있는데, 어떻게 집산제, 배급제와
같은 자본주의와 정반대의 개념을 받아들이게 할 수 있을까? 당장 내 자신조차도 설득되지 않았다.
나는 자본주의, 민주주의, 자유주의, 사회주의, 민족주의, 전체주의, 공산주의 등을 알고는 있다. 그러나 이름만 알 뿐 이들이 무엇인지는
잘 모른다. 그저 학교에서 교육받은 지식 수준밖에 없다. 심지어
나는 한국 사회가 이 들 중 몇 개를 포함하고 있는지조차 모르겠다. 내가 느끼기에는 한국 사회를 대표하는
것은 자본주의, 민주주의, 자유(시장)주의, 민족주의 그리고
때때로 전체주의이지 않을까 싶다. 어쩌면 내가 모르는 또 다른 00주의가
있을지도 모른다.
한국 사회의 속성을 더 알고 싶었다. 조지 오웰이 말하는 20세기초의 사회와 현재의 사회는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다른가를 명확히 분별하고 싶었지만, 내게는 실마리 몇 개만 있을 뿐이었다. 이것은 나의 무지 때문이다. 더 잘 이해하려면 더 탐구해야만 한다. 그런 이유 때문에 한나 아렌트에게
저절로 마음이 갔다. 물론 계기는 단톡방에 언급된 몇 권의 입문서였다.
입문서를 통해 20세중반의 정치철학의 맛을 잠깐 보았을 뿐인데도 한국 사회를 좀 더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한나 아렌트를 탐구할 다음 작가로 정하고 그녀의 정치철학세트를 샀다.
한나 아렌트의 글의 쉽지 않았다. 그녀는 나의 무지를 팍팍 밟아 사정없이
터트렸다. 이 세상을 좀 더 이해하게 만들었다. 그렇다고
그녀의 책을 많이 읽었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겨우 앞부분을 조금 읽었을 뿐이다. 그것도 내용이 어려워 여러 번 다시 읽어야만 했다. 어려워도 세상을
더 명확히 이해해주는 만큼 애착이 갔다.
그러던 중에 4월에 시작하는 <한나
아렌트 전작 읽기> 프로그램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한나
아렌트의 정치철학 세트를 완독도 할 수 있고 더불어 토론도 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프로그램 관리자는
발제문까지 준단다. <조지 오웰 전작 읽기>할
때 가장 고마웠던 부분이 바로 발제문이었다. 물론 책을 읽다가 마음이 가는 부분에서는 단상을 쓴다. 내가 끌리는 부분과 타인의 끌리는 부분이 일치할 때도 있지만, 내가
놓치는 부분도 있기 마련이다. 그런 의미에서 진행자가 제시하는 발제문은 사막의 오아시스와 같다. 책의 내용을 재구성하게 하고 다시 곱씹어 보게 한다. 하지만 발제문을
만드는 사람은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닐 것이다. 그 고통이 얼만큼 클지 공감이 가기 때문에 발제문은 그만큼
소중하다.
한나 아렌트의 책에서 또 어디로 가지를 뻗어가게 될까? 이미 조지
오웰에서 한나 아렌트로 가지를 뻗어왔기 때문에 또 다른 가지 뻗기를 기대하게 된다. 나의 독서 여행은
어디까지 가게 될까? 이 즐거운 여행을 제공해준 숭례문학당에 찬사를 보낸다.
글자수 : 1176자(공백제외)
원고지 : 8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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