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3일][03월03일][365매일글쓰기] 주인의
노예화
정말 깜짝 놀랐다. 텍스트의 문맥을 따라가던 중 갑자기 튀어나온 이
문구에 순간 얼음이 되었고, 뒤이어 “말 되네!”를 연이어 외쳤다.
주인은 노예의 노동이 산출하는 산물만을 즐기며 살아간다. 노예는
주인이 시키는 대로 자연에 대항해 끊임없이 노동하는 가운데 생명력을 축적하게 된다. 주인은 노예가 만들어낸
생명력에 지속적으로 의존하다가 노예에게 종속되어 버린다. 주인이 노예에게 종속되는 것은 역으로 주인이
노예가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헤겔은 고대 노예제 사회의 붕괴를 설명하는 이러한 주인과 노예의 역전극이
노동의 결과로 발생한다고 보았던 것이다. - <한나 아렌트의 생각> 42페이지, 김선욱, 한길사
내가 읽고 있던 책은 <한나 아렌트의 생각>이었고, <3장 정치와 인간다운 삶>이라는 다소 밋밋한 장이었다. 이 장에서는 인간의 활동을 구분하고
정의한 후 정치적 행위를 설명하는 것으로 끝난다. 인간의 활동은 한나 아렌트의 <인간의 조건>에 기술된 것으로, 노동 labor, 작업 work 그리고
행위 action으로 구분한다.
노동이란 먹고 살기 위해 인간이 하는 활동이다. 농부가 농사를 지을
때는 사계절 주기에 따라 씨를 뿌리고 가꾸고 수확하는 과정이 주기적으로 순환된다. 유목도 마찬가지이다. 가축 무리를 몰고 이동을 하는 데에도 일정한 주기가 있다. 지역
특성에 맞게 유목인들은 끊임없이 움직이면서 가축을 돌본다. 노동의 산물은 유통기한이 짧다. 생산물은 짧은 순간에 소비되며, 고갈된다. 그러므로 지속적인 육체 노동이 필요하다.
육체 노동을 피하고 싶은 사람들이 등장한다. 이들은 무력으로 타인을
정복하여 자신의 노예로 삼았다. 주인으로서 노예에게 명령을 내려 육체 노동을 대신하게 했다. 그리하여 주인은 노예의 노동력을 위에서 안락한 삶을 영위한다. 점차
주인은 노동하는 법을 잊게 된다. 세대를 거칠 수록 이러한 현상은 더 심해진다. 노예가 없으면 먹고 살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주인이 노예에게 종속되어
노예의 노예로 전락하는 것이다. 조지 오웰이 항상 언급한 것처럼 다수를 차지하는 노예들에게는 항상 혁명의
씨앗이 내재되어 있다. 어느 순간 노예들이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르면 노예들은 폭동을 일으키게
된다. 폭동의 결과에 상관없이 주인은 타격을 입을 수 밖에 없다. 자연은
엄정하다. 혼자서는 먹고 살 능력이 없는 인간은 도태될 수밖에 없다.
노예의 노예가 되어버린 주인들은 멸종될 수밖에 없다.
61일차 글에서 언급했다시피, 영국은
식민지인 인도나 버마의 발전을 방해했다. 일부러 낙후된 나라가 되도록 만들었다. 나라간에도 주인과 노예 관계가 형성된 것이다. 영국은 식민지로부터
자원을 착취했고, 영국내에서 만들어진 산업제품을 식민지에 팔았다. 이
과정에서 주인인 영국은 막대한 부를 축적했다. 20세기 초가 되자 식민지가 오히려 영국에게 독이 되었다. 식민지를 통해 쉽게 자원을 얻고 식민지에 쉽게 물건을 판 대가로 영국 국가 경쟁력 약화를 가져왔다. 20세기가 되자 영국의 공장들은 노후화되었고, 산업제품은 한물간
제품이 되었다. 인적 자원도 식민지에서 쉽게 돈을 벌다 보니 다른 강대국과의 경쟁에서 지게 된다. 식민지로 인해 대영제국의 찬란한 빛이 쇠락한 것이다.
이것을 헤겔의 변증법으로 설명하는데, 나는 헤겔의 변증법을 잘 모른다. 그래서 나는 이런 현상을 작용반작용의 법칙이라 하고 싶다. 사람들은
좋은 일이 자기 자신에게 일어나기를 바라고는 한다. 그래서 기도를 하고 소원을 빈다. 그리고 좋은 일이 일어나도록 열심히 노력한다. 자, 이제 좋은 일이 일어났다고 치자. 그 다음에 또 좋은 일인 연속적으로
일어날 수 있을까? 모든 일에는 작용반작용이 있다. 나에게
좋은 일이 생기면, 타인은 그것을 상쇄시키고자 노력하게 된다. 결국
좋은 일 다음에는 나쁜 일이 일어나게 된다. 이것이 작용반작용의 법칙이다.
노예의 주인이 노예의 노예가 된다. 이것도 작용반작용이라고 생각한다.
글자수 : 1497자(공백제외)
원고지 : 9.58장
#연금술사 #365매일글쓰기
#숭례문학당 #한나아렌트의생각 #노동 #노예와주인의관계 #작용반작용
댓글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