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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일][02월29일][365매일글쓰기] 자신의 책을 쓰레기통에 버리라는 작가


[060][0229][365매일글쓰기] 자신의 책을 쓰레기통에 버리라는 작가

김선욱 교수님의 <한나 아렌트의 생각>을 드디어 완독했다. 이 책은 125일에 구입하여 읽기 시작했으니까, 거의 한 달이 걸린 셈이다. 다른 책을 읽느라 오랫동안 묵혀두어서 그런지 책의 후반부는 아주 구수했다. 책의 끝부분에 작가는 다음과 같은 부탁을 했다.

지금까지 이 책을 통해 설명한 것은 아렌트 사상의 작은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심지어 내 졸렬한 해석이 많이 개입되어 있다. 그러므로 이제 독자 여러분은 이 책을 쓰레기통에 버리시고, 아렌트의 저서와 함께 새로운 여행을 떠나보시길 권한다. 이곳까지 이르게 한 사다리에 불과한 이 책이 이제는 필요 없을 것이다. – 184~185페이지

그래서 나는 작가의 조언에 따라 아이에게 이 문구를 읽어주고 쓰레기통에 버리는 퍼포먼스를 했다. 지켜보던 아이가 황당해했지만, 무척 즐거웠다. 일종의 책거리인 셈이다. 오해는 마시라. 진짜로 쓰레기통에 넣은 것은 아니니까. 그저 아이에게 읽어보라는 듯이 던져주었을 뿐이다.

이 책은 어려운 개념을 쉬운 언어로 풀어 쓴 책이다. 자칫 어려울 수 있는 철학 개념을 현대의 기준에 맞게 우리의 생활을 예로 들어 설명해주었다. 이 책에서 가장 충격을 받은 것은 악의 평범성이었다. 평범성의 영어 banality를 번역한 것인데, banality의 사전적 의미는 a trite or obvious remark이다. 사전의 풀이에 더 어려운 단어가 있었다. Triterepeated too often으로, 매주 자주 반복되는 일이다. Obvious remark는 너무 뻔한 말로 해석될 수 있겠다. 그래서 한영사전에서는 진부, 평범한 말, 평범으로 풀이한다. 김석욱교수는 평범성으로 번역했지만, 상황에 따라 진부성으로 받아들여도 된다는 말을 덧붙였다. 나치 전범인 아이히만의 재판을 지켜보면서 한나 아렌트가 깨달은 것은 악이 악한 존재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무사유에서, 아주 평범한 모습에서 나온다이었다. 이 문장을 읽는 순간 정말 소름이 끼쳤다. 왜냐하면 바로 나의 옛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학교에서, 직장에서 그리고 경쟁에서 성공하기 위하여 요구되는 조건들을 아무 생각없이 무비판적으로 해내다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악행을 저지를 수 있다. 여기에서 중요 키워드는 생각없이이다. 선생님이, 상사가 그리고 어떤 귄위가 시키니까 그냥 하는 기계와 같은 행동을 안해 본 사람이 있을까? 한나 아렌트는 악의 평범성은 자기 자신과 대화하지 않기 때문에 일어난다고 지적했다.

우리가 아는 대로, 소크라테스는 청년들을 타락시켰다는 죄목으로 재판을 받고 시민의 투표로 사형을 선고받는다. 사형당하기 전날 밤, 소크라테스의 친구들이 찾아가 간수를 매수해놨으니 지금 탈출하면 된다고 탈옥을 권유한다.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이 제안을 거부하고 그 이유를 설명한다. 결국 다음 날 소크라테스는 법에 따라 독약을 마시고 죽는다. 이 이야기는 <크리톤 Kriton>이라는 책에 나오지만 여기에 악법도 법이다라는 말은 나오지 않는다. 소크라테스는 자신이 지금까지 지켜왔던 원칙에 어긋나는 일을 할 수 없다는 이유로 탈옥을 거부했을 뿐이다. 소크라테스는 자기모순이 없는 삶을 살고 싶어 했다. 소크라테스에게 윤리적 삶이란 자기모순이 없는 삶을 말한다. - 157페이지

자기모순은 어떤 사람이 자신이 한 주장을 스스로 부정하는 것이다. 다른 말로 하면, 자신의 가치에 반하는 행동이다. 소크라테스가 탈옥을 거부하고 사형을 받아들인 이유는 자신의 가치를 반하는 행동을 하게 되면 자기모순을 스스로가 견딜 수 없게 되어 자신의 삶이 고통에 빠질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비윤리적인 삶을 사느니 죽음을 택한 것이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자기검토라고 한다.

자기검토는 중국문화권에서도 발견된다. 논어 학이(學而)편에 나는 날마다 세 가지를 반성한다. 남에게 계책을 제시할 때 충심(忠心)을 다하지 못하였는가? 친구와 사귈 때 미덥지 못하였는가? (스승으로부터) 배운 것을 익히지 못하였는가?(논어집주 소나무)”라는 유명한 일일삼성(一日三省) 구절이 있다. 서양의 자기검토이든 동양의 일일삼성이든 자신의 가치를 지키는데 중점을 두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자기모순에 빠지고서도 아무런 가책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은 악행을 하고도 아무렇지도 않을 것이다. 아이히만은 자기모순조차도 느끼지 못하는 지경에까지 이른 사람이다. 그는 아예 생각자체를 거부하고 오직 명령에 따르는 것을 최우선으로 했다. 뇌가 있으나 뇌가 없는 듯이 살았다. 그의 뇌가 작동하는 때는 오직 나치의 명령을 수행할 때뿐이었다. 그 외에는 뇌를 아예 사용하지 않았다.

의견이란 개인이 깨달은 그래서 모두에게 인정받을 가능성이 있는 생각이다. 정치란 이런 의견 간의 각축을 통해 모두가 동의할 어떤 것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보는 것이 바로 의견의 정치. 의견은 주관과 깊이 관련되어 있지만 단순히 주관적인 것에만 머물지 않고 보편타당한 것이다. 물론 의견이 주관적인 환상이나 착각 또는 제멋대로의 억측에 불과할 수도 있다. 다양하고 수많은 의견 가운데 옥석을 가려내는 것이 대화와 토론이다. 대화와 토론의 목적은 의견 가운데 보편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을 찾는 것이다. 의견은 인정을 얻기 위해 설득이 필요하다. 설득이 대화를 진행하는 방법이다. 의견의 목표는 진리를 발견하는 것이 아니다. – 113~115페이지

파시즘, 나치즘, 독재와 같은 전체주의에서는 개인의 의견은 묵살된다. 전체주의에서는 오직 최고지도자의 생각만이 진리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최고지도자의 생각을 진리로 만드는 과정에서 폭력이 발생한다. 비밀경찰, 비밀감옥, 공개처형 등으로 대표되는 공포정치가 바로 폭력이다. 전체주의의 또 다른 특징은 고의적으로 거짓말을 퍼뜨린다는 점이다. 거짓말은 합리성을 따라 만들어진 이야기라서 종종 현실보다 더 합리적이고 호소력이 있어보인다-178페이지 거짓말로 이루어진 체제는 어느 한 순간 무너질 수밖에 없다. “진실은 침몰하지 않기 때문이다. 진실이 수면 위로 떠오를 때, 거짓은 들통나고 그 거짓 위에 세워진 체제는 붕괴된다.

개인의 의견이 존중받고 다양한 의견들이 대화와 토론을 통해서 설득하는 과정이 진정한 민주주의이다. 그래서 민주주의는 시끄러울 수밖에 없다고 한다. 아무 생각 없이 사는 것이 가장 나쁘다. 차라리 잘못된 판단이라도 해야 한다. 그리고 꼭 대화를 해서 자신의 의견이 옳은지 그른지 점검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래야 자신의 판단이 잘못되었음을 발견하고 고통스럽더라도 수정할 기회를 가질 수 있다. 아무 생각 없이 사는 사람이 위험한 이유는 바로 아이히만에게서 찾을 수 있다.

김선욱 교수의 <한나 아렌트의 생각>에서 자극을 받은 나는 <한나 아렌트의 정치사상 세트>를 구매했다. 오프라인 서점에 주문을 한 후, 책이 도착했다는 연락을 받고 서점에 가서 책을 받았다. 책을 손에 든 순간, 그 무게에 몸이 휘청거렸다. 이 휘청임은 한나 아렌트의 저서로 인해 내가 받을 정신의 휘청거림의 전조 현상이지 않을까?

글자수 : 2670(공백제외)
원고지 : 1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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