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4일][02월23일][365매일글쓰기] 마음
밖에 사물 없다 心外無物
조지 오웰의 소설 <1984>는 1948년에 출간되었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이 소설의 이름을 수없이
들어왔다. 빅 브라더는 곳곳에서 인용되었고, 각종 드라마와
영화에서 그 개념을 차용하여 이야기를 만들었다. 너무나 친숙해져 버린 빅 브라더였지만, 나는 소설 <1984>를 읽어 본 적이 없었다. 그 소설은 어린 시절 겪었던 공포 정치를 떠올리게 했다. 그래서
읽고 싶지 않았다. 그냥 외면했다.
2019년 12월, 숭례문학당의 <조지 오웰 전작 읽기>를 시작했다. 12주간 매주 한 권씩 읽고 온라인으로 토론하는
과정이었다. 이름만 알던 작가의 생애를 알게 되고 그의 깡충한 외모와 홀쭉한 뺨과 손가락 사이의 담배에
익숙해져 가는 시간을 보냈다. 그가 쓴 에세이를 읽으며, 이것은
단순한 에세이가 아니라 예술이라고 감탄하기도 했다. 어떤 글은 뛰어난 통찰이 돋보이는 산문이었다. 마치 분석 보고서같았다. 그의 소설들도 하나씩 읽었다. 드디어 소설 <1984>를 읽었다.
조지 오웰은 1930년대 초반부터 글을 썼다. 나는 2019년 12월에야 그를 내 마음 안으로 들였다. 날카로운 필체와 쉬운 문장은 내 마음을 뒤흔들었다. 2019년 11월까지 나는 조지 오웰의 이름만 알고 있었지만, 2020년 2월의 나는 조지 오웰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되었고 이해하게 되었다. 100년
전이나 지금이나 동일한 정치와 언론 상황을 보며 우리 인간은 여전히 제자리 걸음만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의구심이 들기도 했다. 그럼에도 나는 희망을 보았다. 소설 <1984>가 없었다면, 일반인들은 전체주의가 무엇인지 인식도
하지 못한 채 전체주의의 지배를 받고 살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조지 오웰의 경고 덕에 일반인들은 전체주의를
인식하게 되었고, 독재와 파시즘에 맞서 싸울 수 있었다. 지금도
끊임없이 되살아나는 망령을 감시하고 맞설 수 있게 되었다.
275조목 : 선생께서 남진을 유람하실 때, 한 친구가 바위 가운데 꽃나무를 가리키며 물었다: (선생께서는) 천하에 마음 밖에 사물이 없다고 하셨는데, 깊은 산 속에서 저절로
피었다 저절로 지는 이 꽃나무와 같은 것은 내 마음과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선생께서 말씀하셨다: 그대가 이 꽃을 보지 못했을 때 이 꽃과 그대의 마음은 함께 적막한 곳으로 돌아간다. 그대가 이 꽃을 보았을 때는 이 꽃은 색깔이 일시에 분명하게 드러난다. (따라서) 이 꽃은 그대의 마음 밖에 있지 않음을 알 수 있다. - <전습록2> 741페이지, 왕양명, 청계
인문학 책을 읽기 시작한 이후로, 나는 자주 깜짝
놀라고는 한다. 이 세상에 이렇게 많은 보석같은 사람, 책, 영화, 물건들이 있었나하며 감탄한다. 이들은 하나같이 오래 전부터 존재하고 있었다. 단지 내 마음 안에
들어오지 않았다는 이유로 나는 이들을 바로 눈 앞에 두고도 몰라봤었다. 어느 날 문득 내 눈 앞의 것이
제대로 보였고, 내 마음 속으로 침투해 들어왔다. 그제서야
이들의 가치를 알 수 있었다. 도올 김용옥, 유시민, 유발 하라리, 사마천, 주자, 왕양명, 연암 박지원, 덕보
홍대용, 형암 이덕무, 위화, 칼 융, 피터 비에리, 조지
오웰, 공자, 맹자, 순임금
등. 나열하자면 끝이 없을 듯하다.
2019년 가을이었다. 집에서 하루 종일 책을 읽고 공부를 하다, 장을 보러 외출을 했다. 집 밖을 나서는 순간 곱게 물든 나뭇잎들이 보였다. 책에 빠져 시간이
지난 줄도 몰랐다가 문득 바라본 빨간 단풍잎과 노란 은행잎은 무척 아름다웠다. 멍하니 바라보다, 이토록 멋진 풍경을 빨리 발견해 주지 못해서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림같은
길을 걸어 장을 보고 집 안으로 들어선 순간, 나는 높은 파란 하늘과 단풍이 든 거리는 깡그리 잊어버린
채 다시 책 속으로 빠져들었다. 마음 이처럼 신비로운 것이다. 순간
전환도 빠르거니와 아무리 많은 것을 집어넣어도 터진 적이 없고, 비워도 비워도 비워지지 않았으며, 텅 비어 있는 듯하지만 꽉 찬 듯했다. 한때는 어두웠을지라도 조금
집중하면 순식간에 밝아지기도 한다.
<엽란을 날려라>의 주인공 고든은 작가 지망생이다. 친구의 도움으로 출판한 시집은
겨우 153권 팔렸다. 그는 자본주의 환멸로부터 탈출하여
돈과의 전쟁을 벌이고 있는 중이다. 서점의 점원으로 일하면서 주급 2파운드(약20만원)을 받으며 궁핍한
생활을 2년 동안이나 했다. 좋은 일자리를 피해서 나쁜 일자리를
선택한 고든은 소설의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것을 돈과 연관지어 생각했다. 하고 싶었던 글을 쓰기 위해
선택한 주당 2파운드 일자리 때문에 돈이 없어서 글을 쓸 수 없게 되는 모순에 빠진다.
그는 앞으로도 뚜렷한 진척이 없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것은
돈이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단순히 돈이 없기 때문에 ‘글’을 쓸 힘을 빼앗겨 버린 것이었다. 그의 이런 생각은 하나의 신념이
되었다. 돈, 돈, 돈이
모든 것이다! 돈이 없다면 가슴속에 간직할 하찮은 단편 이야기라도 쓸 수 있을까? 창조, 에너지, 위트, 스타일, 매력, 이런
것들은 모두 돈으로 지불되어지는 것들이다. - <엽란을 날려라>
17페이지, 조지 오웰, 지식을만드는지식
고든은 어쩌다 돈의 노예가 되어버렸을까? 고든은 어린
시절부터 돈의 지배를 받았다. 돈을 경멸하며 멀어지려는 이유는 어린 시절 경험에서 기인한다. 성공을 피해다니는 그의 가련한 모습은 안타깝기 그지없다. 자신의
의외의 재능을 발견하고도 성공해서 돈을 많이 벌까 무서워 도망친다. 궁핍한 생활로 도망가서도 돈 타령이
이어진다. 돈이 세상을 왜곡하고 자신을 왜곡한다. 왜 그랬을까? 고든의 마음 속에 돈이 들어왔기 때문이다. 돈은 마음에 뿌리를 내려버려서
그가 좋은 일자리에서 그럭저럭 돈을 벌어도 나쁜 일자리에서 돈이 모자라도 항상 돈만 생각하게 된 것이다. 아마도
고든은 자신의 마음 속에서 돈의 자리를 없애고 대신에 시 창작을 넣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돈에게
마음을 빼앗겨 버렸다. “마음 밖에 사물 없다”는 말은 바로
이런 상황을 이야기 한다. 고든이 돈을 의식하는 순간 돈은 마음 안에 들어와 마음을 차지했다. 고든이 하고 싶었던 시 창작이 차지하던 자리까지 차지해버린 돈의 그늘로 인해 고든의 마음은 어두워졌다. 쩝, 이것이 마음의 작용이다.
글자수 : 2311자(공백제외)
원고지 : 15.75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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