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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3일][02월12일][365매일글쓰기] 조지 오웰 덕분에 푸하하 웃었다


[043][0212][365매일글쓰기] 조지 오웰 덕분에 푸하하 웃었다

열하일기를 읽다 보면 종종 배꼽 잡고 웃게 된다. 연암의 표현처럼 입 안의 밥 알이 튀어나올 정도로 터지는 웃음을 참을 수 없는 장면들은 모두 연암 자신의 엉뚱한 행동을 묘사한 부분이다. 간신히 열하에 터치다운한 후, 황제의 고희연과 같은 공식적인 자리에 참석할 수 없었던 연암은 담 밖에서 까치발을 딛고 별장 안을 기웃거린다. 몽고의 늙은 왕자도 담밖에서 기웃거리는 판이었다. 결국 연암을 자리를 훌훌 털고 열하의 거리로 나와 주점에 들른다. 연암은 술을 무척 좋아한다. 주점 2층에 올라가니 우락부락한 중국인들이 술판을 벌이고 있다. 중국인들은 독주를 작은 잔에 따라 마시고 있었다. 거구의 연암은 조선인의 객기를 부린다. 술을 주문하고 큰 사발도 함께 부탁한다. 그리고는 독주를 큰 사발에 부어서 단숨에 들이 부었다. 술판을 벌이고 있던 중국인들이 그 모습을 보고 대경실색하자, 크게 만족한 연암은 호탕하게 자리에서 일어난다. 조선인의 기개를 보여주겠다는 심산이었다. ~ 연암이 간과한 것이 있었다. 바로 조선술과 중국술의 알코올 도수 차이였다. 독한 술을 한 번에 들이 부었으니, 일어서는 순간 비틀~거리게 되었다. 애써서 아무렇지도 않은 척 걸어서 주점을 빠져나온 순간 2층에서 와하하하 웃는 소리가 들리자, 낭패감을 느낀다. 그리고는 말한다. “다음부터는 객기 부리지 말자!”

오늘 조지 오웰의 <카탈로니아 찬가>를 읽다가 풉~ 웃고 말았다. 왕당파인 프랑코의 반란으로 인한 스페인 내전에 의용군으로 참전한 조지 오웰은 입대 순간부터 마치 소설처럼 자신의 경험을 써내려갔다. 마치 열하일기처럼 실제 있었던 일을 그대로 묘사하다면서도 날카로운 견해를 송곳처럼 드러내어서 읽는 재미가 솔솔했다. 한 번 책을 펼치면 1시간 순삭하게 하는 흡인력이 있었다. 지루한 대치 상태가 지속되다고 드디어 전투에 참가하게 된 조지 오웰은 벼르고 별렀던 전투에서 엉뚱한 짓을 하고는 했다.

미끌미끌한 진창에 모로 누워서 수류탄 핀을 뽑느라 안간힘을 썼다. 그러나 염병할 핀은 도무지 뽑히지 않았다. 마침내 내가 반대 방향으로 비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결국 핀을 뽑고, 무릎으로 일어나 앉아, 수류탄을 던지고, 다시 바닥에 엎드렸다. 수류판은 흉벽 외곽 오른쪽에 터졌다. 겁이 나서 겨냥을 제대로 못한 것이다. <중략> (적과 아군의 중간에 있던 조지 오웰) 누군가 바로 내 뒤에서 사격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벌떡 일어서서 그 병사에게 소리쳤다. “날 쏘면 어떡해, 이 염병할 멍청아!” <중략> (이동중에 적이 왼편에서 총을 쐈다) 나는 달려가면서 왼손으로 빰을 가렸다. 바보 같은 행동이었다. 손으로 총알을 막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하다니! - <카탈로니아 찬가> 122~123페이지, 조지 오웰, 민음사

이 전투는 양동작전이었다. 조지 오웰이 속한 의용군 대대가 공격을 해서 적의 병력을 주요지역으로부터 전투가 벌어지는 곳으로 이동시켜야만 했다. 영국인 15명과 스페인 15명은 비가 내리는 야밤에 몰래 적진을 향해 다가갔지만, 적들은 다리고 있다가 일제히 총을 쏴대었다. 그 와중에 조지 오웰 또한 겁이 났고, 연달아 엉뚱한 행동을 했다. 아마 누구든 첫 전투에서는 우왕좌왕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아무리 미리 계획을 하더라도 현장에서는 항상 예측불허의 일이 발생하게 된다. 게다가 현장 경험이 없을수록, 더 당황하게 되어 나중에 이불킥을 할만한 일을 잔뜩 해버리게 된다. 아무리 버마에서 경찰로 일을 한 경험이 있다하더라고 언제 어디에 총을 맞게 될지 모르는 전투에 처음 참가하는 조지 오웰이 겁을 집어먹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 나는 조지 오웰의 글에 감탄했다. 자신이 겁을 먹었다는 사실을 그대로 쓸 수 있는 작가는 흔하지 않다. 대부분은 뻥을 친다. 자기 자신을 전쟁 영웅으로 묘사하는 것이 인지상정아닌가?

조지 오웰의 글에는 진솔(眞率)함이 있다. 다른 말로 하면 진정성(眞情性)이 있다. 진정성은 고대부터 강조되어 온 덕목이다.

그러므로 순 임금은 옥좌에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천하가 잘 다스려졌고, 걸 임금은 계단을 미처 내려오기도 전에 천하는 개판이 되었다. 대저 진정(眞情)이라는 것은 말로 위세를 떠는 것보다 훨씬 더 강력한 것이다. 자기 자신에게 진정성이 없으면서 그것을 타인에게 요구한다는 것은 고금 이래 들어본 적이 없다. 지도자가 보통사람들이 쓰는 똑같은 언어로 말을 해도 백성들이 그것을 믿는 것은 그 믿음이 바로 언어 이전에 있기 때문이다. <중략> 성인 위에 있기만 하여도 백성들의 마음이 움직여서 변화하는 것은 항상 성인의 진정이 그들 앞에서 이끌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지도자가 위에서 지랄발광을 해도 백성이 콧방귀도 안 뀌는 것은 그 진정성과 정책명령이 따로 놀기 때문이다. - <중용한글역주> 234~235페이지, 도올 김용옥, 통나무

위의 글은 <회남자(淮南子)> 무칭(繆䕝)편에 나오는 것으로 공자의 손자 자사의 정() 개념을 담고 있다. 도올 선생님은 정()을 칸트가 말하는 순수이성 + 실천이성 + 심미적 판단이라고 정의했다. 사건에 대해 판단한 결과를 놓고 느끼는 좋고 싶은 감정이 바로 정()이다. 이것을 요즘 말로 표현해보자면, 상황에 막딱뜨렸을 때 나오는 감정표현이라고 할 수 있겠다. 진정성이란 느끼는 감정 그대로 표출되는 것을 뜻한다. 겉과 속이 같아야 사람의 언행을 보고 그 사람의 인품을 제대로 판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떤 사악한 사람이 자신의 감정을 속이고 타인이 좋아하는 언행을 하게 되면, 이것은 잘못된 것이다. 그런 이유로 진정성을 중요하게 여긴 것이다.

만약 연암 박지원이나 조지 오웰이 자신의 언행을 좋게 꾸며서 글을 썼다면, 그들의 작품은 외면받았을 것이다. 신기하게도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거짓과 참을 구별해내고는 한다. 누군가 거짓으로 말하고 행동하면 곧바로 이상함을 느끼고 거부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오랫동안 사랑받은 글은 진정성을 담고 있음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오늘 나는 다시 한번 조지 오웰의 글에서 진정성을 느꼈고, 다시 한번 그의 글과 사랑에 빠졌다.

글자수 : 2273(공백제외)
원고지 : 15.17

#연금술사 #365매일글쓰기 #숭례문학당 #조지오웰 #카탈로니아찬가 #스페인내전 #전투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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