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0일][02월09일][365매일글쓰기] 악의 평범성 2편
(제2차세계대전 중 독일 북부 지역) 소작농 중 한 명은 러시아인 전쟁 포로들을 포로수용소로부터 넘겨받아 자기 집에 거둔 사람이었어요. 당연히 그 포로들은 쫄쫄 굶고 있었죠. 러시아인 전쟁 포로들이 이 나라(독일)에서 어떤 대접을 받았는지는 당신(요하임 페스트, 독일 사학자)도 알 거예요. 소작농은 윙거에게 말했어요. “글쎄, 그놈들은 인간 이하입디다. 소하고 다를 바가 없단 말이오! 그건 쉽게 알 수 있어요. 그놈들은 돼지 먹이를 먹어치우니까요.” 윙거는 이 이야기에 이런 코멘트를 했어요. “독일인들은 때때로 악마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의 표현은 뭔가 ‘악마적’인 것을 뜻한 게 아니었어요. 봐요. 이 이야기에는 뭔가 터무니 없이 멍청한 게 있어요. 멍청한 이야기라는 말이에요. 그 소작농은 굶주린 사람은 누구나 그런 짓을 하리라는 걸 알지 못해요. 그 입장에서는 누구라도 그런 식으로 행동할 텐데요. 이 멍청함에는 정말로 터무니 없는 게 있어요. ---- 아이히만은 완벽하게 지적이었지만 이 측면에서는 멍청했어요. 너무도 터무니없이 멍청한 사람이었어요. 내가 평범성이라는 말로 뜻하려던 게 바로 그거예요. 그 사람들 행동에 심오한 의미는 하나도 없어요. 악마적인 것은 하나도 없다고요! 남들이 무슨 일을 겪는지 상상하길 꺼리는 단순한 심리만 있을 뿐이예요. 그렇지 않아요? - <한나 아렌트의 말> 84~85페이지, 한나 아렌트, 마음산책
지난 1월 25일, 25일차 글에서 ‘악의 평범성’을 주제로 글을 썼었다. 당시에는 한나 아렌트에 대한 입문서를 읽고서 요약정리를 했었다. ‘악의 평범성’이라는 표현이 너무나 섬뜩해서, 소름이 돋았고, 이에 대해 글을 쓰고 싶었었다. 그러나 나의 생각은 더 깊이 이어지지 못했는데, 그 이유는 ‘악의 평범성’에 대한 이해 부족이었다. 이 표현을 접한 순간 그것이 무엇인지 감각적으로는 알아챘지만, 그것을 나의 언어로 설명할 수준까지는 알지못했다. 알지만 알지못하는 안다고 믿는 상태에 빠져있었다. 이 주제는 나의 마음 깊숙한 곳에서 계속 자기존재증명을 해댔다. 오프라인 서점에서 <한나 아렌트의 말>이라는 대담집을 주문한 것도 더 이해하고 싶은 욕구때문이었다.
신종코로나의 여파로 한동안 집안에만 있다가 책이 도착한지 일주일만에 오프라인 서점을 방문했다. 책은 생각보다 얇았다. 네 차례에 걸친 한나 아렌트의 인터뷰가 실려있는데, 인터뷰는 그녀의 주요 저서가 출판될 때마다 독일에서 이루어졌다. 전후 독일은 망연자실했던 듯하다. 유태인 학살이라는 잔혹한 재앙이 독일인에 의해 벌어졌다는 점에 할말을 잃은 듯했다. 다수의 독일인들의 지지를 받은 나치가 벌인 참혹한 살상을 믿을 수 없어했다. 그래서 독일인들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파악하기 위해 노력했다.
유태계 독일인이었던 한나 아렌트가 독일을 탈출한 것은 1930년대였다. 1933년경 그녀는 나치로부터 위험인물로 지명되었고, 곧바로 프랑스로 탈출했고 이후 미국으로 망명했다. 나치로부터의 위협을 받기 전의 한나 아렌트는 정치에 관심이 없는 철학도였다. 하지만 나치로 인해 그녀는 정치이론학자가 되었다. 나치와 유태인 학살은 그녀의 인생을 뒤흔들었다. 전체주의의 기원과 현대사회에 파고든 전체주의에 대한 글을 썼고 그 유명한 아이히만에 대한 전범 재판 중에 관찰한 내용에 대한 글도 썼다. 일련의 저술 활동으로 한나 아렌트는 그녀만의 독특한 개념을 정의했고, 이로 인해 세간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오늘은 그녀가 정의한 ‘악의 평범성’에 대해 한 발 더 들어가 보기로 한다.
“유태인 학살을 저지른 사람들은 분명히 악의 화신들이다.” 많은 독일인들은 그렇게 믿었다. “인간이라면 엄두도 내지 못할 악행을 행한 이들이 평범한 인간일리 없다.” 많은 독일인들은 마땅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한나 아렌트를 비롯한 지성인들이 발견한 것은 전범자들이 지극히 정상적인 인간이었다는 점이었다. 세간의 인식과는 전혀 다른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생각해보시라. 어느 날 이웃집 아저씨가 헤아릴 수 없는 사람들을 죽인 살인범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면 당신은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인가? 이에 대한 대답은 최근 다시 조명을 받고 있는 화성 연쇄 살인범 이춘재에 대한 마을 주민들의 인터뷰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조용하고 착한 사람이었다고 회고한다. 살인자임을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이었다.
아이히만이 악의 화신이 아니라면, 도대체 아이히만의 어느 지점이 고장을 일으킨 것일까? 어떻게 그런 어마어마한 재앙을 일으키고도 멀쩡히 잠을 자고 먹고 웃을 수 있을까? 재판 중에 아이히만은 자신은 무고하다고까지 주장한다. 자기는 그저 시키는대로 잘 했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무척이나 능력있는 사람이었다. 훌륭한 공무원이었다. 단지 생각을 하지 않는 멍청이였을 뿐이었다. 그는 자신이 한 일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에 대해서는 사고를 멈추었다. 그가 계획하고 실행한 일의 대상은 ‘인간’이었다. 그는 ‘인간’이라는 개념을 제거하고 사물로 대체해버렸다. 그들이 ‘인간’이라는 것을 인식하면 괴로워서? 그건 아니었다. 그에게는 상부에서 내린 명령을 잘 처리하는 것이 최우선 목표였기 때문에 다른 나치들도 잘 해낼 수 있도록 ‘인간’이 아닌 다른 것으로 개념을 치환했을 뿐이다. 너무나 충실한 일꾼이어서 더 소름끼쳤다.
아이히만에게서 고장난 부분은 바로 인간성이었다. 아이히만은 분명 ‘인간’이었지만, 그의 정신에는 ‘인간’적인 부분이 하나도 없다. 그에게는 독일인만이 ‘인간’일뿐 나머지는 ‘그것’이었다. 이러한 이분법적 사고는 우리 주변에 너무나 흔하다. 혐오 표현 속에 항상 등장하기 때문이다. 나와 같은 편은 ‘인간’이지만, 나와 다른 편은 ‘그것’이 된다. 막상 혐오 표현을 쓰는 사람이 누군지 알게 되면 너무 허탈해진다. 극단적인 표현을 하는 사람은 분명히 머리에 뿔 두개가 나고 빨간 얼굴을 한 악마일 것이라는 기대와는 달리 지극히 평범한 학생이거나 회사원일 때는 충격에 빠질 수밖에 없다.
글자수 : 2263자(공백제외)
원고지 : 14.2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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