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9일][02월08일][365매일글쓰기] 잉여 감정
전쟁 히스테리에 면역이 가장 잘 되어 있는 이들은 전쟁터에 있는 군인이다. 군인은 적을 특별히 더 증오하지 않는다. 군인은 거짓 프로파간다에 속지 않으며 복수를 통해 평화를 이루고자 하지 않는다. 군인 대부분은 전쟁에 대해 매우 합리적인 태도를 취한다. 전쟁터에 있는 군인뿐만 아니라 평화 시기의 직업 군인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전쟁이 구역질 나는 것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종 필요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안다. 민간인은 이런 태도를 갖기 힘들다. 군인의 초연한 태도는 사실 극도의 피로감, 위험 상황에서의 각성 효과, 병영 내 끊이지 않는 마찰 등의 요소 때문이다. 그에 비해 더 잘 먹고 안전하게 지내는 민간인이 더 많은 잉여 감정을 품는다. 그리고 그걸 누군가를 증오하는 데 쓴다. 애국자라면 적국을 증오하는 데에 잉여 감정을, 평화주의자라면 자국을 증오하는 데에 잉여 감정을 소진한다. - <더 저널리스트>181페이지, 조지 오웰, 한빛비즈
영화 <퍼스트맨>은 우주개척의 최전방에 있던 우주비행사의 이야기이다. 닐 암스트롱이 아폴로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된 동기는 그의 경력 때문이었다. 그는 새로운 비행기를 테스트하는 시험비행사로서 명성이 높았다. 이런저런 이유로 모인 비행사들은 우주 여행을 하기 위한 훈련을 받는다. 문제는 비행기와 달리 우주선은 처음으로 만들어진 비행체라는 점이었다. 처음 시도하는 우주 비행을 위해서는 단계별 시험을 해내야만 한다. 하지만 소련이 미국보다 한발 앞서있었기 때문에 정치인들과 언론은 우주비행사들에게 빨리 해내라고 다그친다. 발사체 성공과 실패에 따라 극찬과 맹비난이 쏟아지는 상황이 계속된다 그 와중에 우주비행사들은 우주선에 탈 때마다 생사를 걸어야만 했다. 발사 때의 사고는 곧 바로 죽음으로 연결된다. 발사 성공과 실패는 행운의 여신의 손짓 한 번으로 결정되는 듯했다. 결국 닐 암스트롱이 탄 아폴로 11호는 우여곡절 끝에 달에 착륙한다. 달 표면에 발자국을 남긴 최초의 인간이 된 것이다. 그는 달에서 심연을 바라본다. 그는 이제 막 달착륙 프로젝트를 무사히 마쳤지만, 지구로의 귀환 프로젝트 또한 해내야만 한다.
이 영화의 백미는 영화의 후반부에 드러나는 닐 암스트롱과 가족의 심리 상태이다. 생과 사의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는 남편과 아버지를 바라보는 가족의 애타는 심정과 달리 언론은 영광스러운 순간의 감회에만 관심이 있다. 지구로 무사 귀환한 후 격리되어 있는 남편을 만나러가는 부인을 향해 언론은 얼마나 기쁘고 자랑스러운지를 묻는다. 부인은 전혀 기쁘거나 자랑스럽지 않았다. 그녀의 마음은 이미 수천수만 번 부서져내려 너덜너덜해진 상태이다. 그러나 그녀는 기자들에게 활짝 웃으며 언론이 원하는 답을 준다. 이후 남편과 유리벽을 사이에 두고 만난 부인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왜? 그녀에게는 남편이 무사히 눈 앞에 서있는 사실 자체만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녀에게 남아있는 감정은 남편이 살아있다는 안도감뿐이었다.
이 영화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점은 끝없이 반복되는 대중의 환호와 비난이었다. 대중은 언론의 보도에 따라 축제를 벌일듯이 좋아하거나 야유를 하며 격렬하게 비난했다. 반면에 정작 죽음의 기로에 선 우주비행사들과 관계자들은 거의 무덤덤하다. 그들은 환호도 비난도 하지 않는다.
영화를 보고 난 후, 나는 이 차이를 정확히 설명할 수 없었다. 1944년 트리뷴지에 실린 조지 오웰의 칼럼 <전쟁이 문명을 파괴하는 방식>을 읽고 나서야 비로서 그 차이를 알아차리게 되었다. 사건의 현장에 있는 사람은 그 사건을 속속들이 파악한다. 반면에 그 현장에 없는 사람은 피상적인 문장을 접하게 된다. 온몸으로 모든 감각을 동원해서 사건 속에서 있는 사람과 몇 문장으로 사건을 접하는 사람 사이에는 경험의 차이는 클 수밖에 없다. 또한 현장에 있는 사람은 자신의 모든 감정을 그 사건을 통해 소진한다. 반대로 현장밖에 있는 사람의 감정은 전혀 소비되지 않는다. 따라서 현장밖의 사람들에게는 감정이 잉여물로 남는다. 이런 이유로 현장밖의 사람들은 전해들은 문장에 따라 자신의 감정을 격렬하게 터트리고는 한다.
현장밖에 있는 사람일지라도 현장의 내용을 상세히 담은 정보를 접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몇 문장이 아닌 수천수만 문장을 접하는 동안 뇌는 사실관계를 분석하면서 다양한 감정을 일으킬 것이다. 따라서 어떤 사건에 대해 한 사람이 접한 정보의 양과 그 사람의 감정은 반비례하게 된다.
오늘 어떤 뉴스를 접하고 분노가 일었다면, 그 뉴스에 대해 정확히 모르기 때문이다. 그 뉴스가 나오게 된 일련의 사건들을 모두 알고 있다면, 절대로 감정적이 될 수 없다. 그 뉴스 안의 워딩을 하나씩 따져 기자가 왜 그 단어를 사용해서 그런 문장을 만들었는지를 알게 되면, 감정보다는 이성의 지배를 받게 될 것이다. 그 뉴스의 목적이 무엇인지를 파악하지 못한 사람만이 화를 내거나 기뻐한다.
글자수 : 1821자(공백제외)
원고지 : 12.15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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