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8일][01월28일][365매일글쓰기] 전체주의
조지 오웰의 작품을 읽으면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나는 민주주의, 자유주의, 사회주의, 공산주의, 전체주의, 독재, 파시즘을
잘 알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이들 개념을 안다. 또 한편으로는 전혀 모른다. 그저 두리뭉실하게 알 뿐이다. 그러니 조지 오웰의 글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었다. 뭔가 알듯말듯한
그런 답답함이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단톡방에서 누군가 한나 아렌트를 꺼냈다. 검색을 해보니, 그녀는 조지 오웰과 같은 시대 사람이었다. 단, 조지 오웰보다는 더 오래 살았다. 게다가 정치철학자였다. 그녀의 저술 중에는 <전체주의의 기원>이 있었다. 눈이 번쩍 띄었다.
한나 아렌트의 글을 통해서 개념을 잡을 수 있겠다는 희망에 마음이 살랑거렸다. 단톡방에
올라온 추천 도서들을 샀다. 명절증후군으로 책을 많이 읽지 못했지만,
조금 맛본 한나 아렌트의 생각은 매력적이었다.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나의 생각이 무럭무럭 자라나는 느낌이 들었다. 느낌! 겨우 입문서 한 권으로 완벽히 그녀의 생각을 알 수는 없다. 나의
사유도 겨우 조금의 진척이 있었을 뿐이었다. 한나 아렌트 이전에 존재했던 무수한 철학가들의 사상도 하나도
모르는 상태에서 겨우 입문서 한 권으로는 턱도 없음을 안다. 그래도 시작은 했다.
오늘은 <한나 아렌트의 생각>
김선욱, 한길사의 전체주의에 대한 생각을 조금 정리요약해 보려한다.
전체주의 totalitarianism은 파시즘, 제국주의, 독재를 지칭하는 단어로 1930년대 말부터 널리 사용되었다. 한나 아렌트는 전체주의를 나치
독일에 나타난 현상을 가리키는 개념으로 사용한다. “전제주의에는 두 핵심 축이 있다. 바로 테러와 이데올로기이다. 이 두 축을 통해 전체주의는 총체적인 재배를 추구한다.-83페이지” 이 문장에는 세 개의 개념이 들어 있다. 1) 총체적인 지배 2) 테러 3)
이데올로기 이들에 대해 하나씩 살펴봐야만 전체주의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첫째 “총체적 지배란 한 개인의 외부세계와 내면세계를 모두 철저히
지배하는 것을 말한다.-83페이지” 지배라 함은 타인이 나의 자유를 제한하여 타인의 명령만을 수행하게 하는 것이다.
총체적 지배는 지배보다 더 심한 행위이다. 타인이 나의 자유는 물론 생각까지도 박탈하여
개별적인 인격체가 아닌 나를 포함한 모두가 동일한 존재가 되게 한다. 이것은 마치 영화 <매트릭스3>의 스미스가 스스로를 복제해서 매트릭스 안의
모든 존재를 스미스로 만드는 것과 같다. 모든 존재가 동일한 존재가 되어 자극에 동일한 반응을 보이고
동일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일사분란하게 행동하는 모습은 공포 그 자체였다. 하나의 스미스가 제거되면
또 다른 스미스가 등장하고, 스미스가 개미 떼처럼 달려들었다. 영화에서의
스미스는 ‘대체 불가능한 개성적인 존재’가 아닌 언제나 ‘교환 가능한 부품같은 존재’가 되었다. 나치는 수용소를 만들어, “인간의 자발성을 완전히 제거해 단순한
반응기계로 만들어버렸다-84페이지”
나치는 세 단계를 거쳐 인간성을 말살했다. 첫 번째 단계는 인간의
법적 인격 살해였다. 나치의 법이 지배하는 모든 곳에서의 유태인의 법적 지위를 박탈해 법적 보호를 받지
못하게 했다. 두 번째 단계는 인간의 도덕적 인격 살해였다. “너에게
아들이 셋 있지? 그 셋 중에 누구를 죽일래?-84페이지”와 같은 선택을 강요했다. 선과 악의 딜레마가 아닌 악과 악의
딜레마 속에서 도적적 인격이 파괴되었다. 세 번째 단계는 개성을 파괴하는 것이었다. 수용소안에서는 모두 머리를 깍고 똑같은 옷을 입고 똑같은 일을 하고 똑같은 식사를 한다. ‘나’라는 개념을 파괴되면 ‘생각’이 사라진다. ‘생각’이
없으면 ‘새로움’도 없다.
인간의 자발성이 철저히 분쇄되어 결국은 육체라는 껍데기만 남게 된다. 수용소 안의 유태인들은
완벽히 쓸모없는 존재로 전락했는데, 이것이 바로 나치가 유태인들을 총체적 지배하는 방식이었다.
<내일 계속>
글자수 : 1492자(공백제외)
원고지 : 9.35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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