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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7일][01월27일][365매일글쓰기] 상투어와 독단에 대한 단상과 필사


[027][0127][365매일글쓰기] 상투어와 독단에 대한 단상과 필사

한나 아렌트는 말과 생각의 관계를 중요하게 본다. 나는 아렌트의 이러한 견해에 크게 공감한다. 전문 분야에 대해 이해가 부족했던 젊은 시절의 나는 개념을 설명할 때 전문 용어와 영어를 주로 사용했었다. 이런 식의 설명은 듣는 이에게 내용을 잘 전달하지 못했다. 공부도 하고 회의도 하고 기술 설명서를 쓰기도 하면서 점차적으로 전문지식에 대한 이해력이 더해지자 개념 설명이 쉬워지고 부드러워졌다. 전문용어나 외래어 하나 없이 술술 말하고 쓰게 되었다. 핵심은 단어였다. 누군가 기술해 놓은 전문용어를 그대로 사용하지 않고, 전문지식이 없는 일반인이 사용하는 단어로 바꾸어 설명하려는 노력을 통해 얻은 성과였다.

전문가들과 대화할 때는 전문 용어를, 비전문가들과 대화할 때는 일반 단어를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게 되면 진정한 전문가라 할 수 있다. 그 분야의 지식을 잘 알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한다. 왜냐하면 사용하는 단어가 달라지면 사고 체계 또한 달라지기 때문이다. 전문용어와 일반 단어 각각은 사용하는 언어체계가 다르다. 두 언어체계를 자유롭게 왕래하는 것은 그 지식을 완벽히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이것은 다국어 사용자에게도 적용된다. 자기 자신의 생각을 한국어, 영어, 스페인어, 중국어 등의 여러 언어로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은 어떤 개념에 대한 이해가 명확하다는 증거이다. 언어별로 각기 다른 사유체계가 있는데, 그 이유는 각 언어별로 문장의 구조가 다르고 어휘가 다르기 때문이다. 하나의 생각을 다른 단어와 문장 구조로 표현해내면, 더 깊은 사고와 이해로의 선순환이 이루진다.

25일차 글인 <악의 평범성 - 한나 아렌트의 생각, 김선욱, 한길사>에 등장하는 아이히만은 반대의 경우이다. 아이히만은 관청 용어를 자기 언어화하여, 사고 체계를 단일화하였다. 원래의 의미를 상실한 나치의 언어를 그대로 수용함으로써, 나치와 사고를 일체화했다. 개념을 왜곡시키는 신조어는 소설 <1984>에도 등장한다. 빅브라더는 언어를 단순화시킴으로써 사람들의 사고 또한 단순하게 만들었다. 개념들이 뭉그러지고 왜곡되어, 신조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제대로 된 사고할 수 없게 만든다. 이러한 형상을 한나 아렌트는 말의 무능함이라고 명했다. 이것의 또 다른 표현은 사유의 무능함이다. 생각을 하지 않으니 소통능력이 저하된다는 의미이다.

책을 읽고 나서 글을 써보는 것은 말의 무능함에서 벗어날 수 있는 한 방법이다. 글을 쓰는 과정에서 책의 내용은 자기화되고 나의 언어로 번역된다. 사유를 함으로써, 말이 풍성해지고, 소통 또한 원활해진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글쓰기는 공부의 정수이다.

현재 읽고 있는 책이 입문서라서, 한나 아렌트의 생각을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나 문제가 발생했다. 악의 평범성, 말의 무능함, 전체주의, 공과 사 등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해보고 싶은데, 나의 현재 수준으로는 불가능했다. 사유의 무력함이 느껴서 기가 꺾였다. 한나 아렌트의 저서를 읽어보면 나아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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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투어와 독단 <한나 아렌트의 생각> 65~66페이지, 김선욱, 한길사

상투어가 처음부터 상투어였던 것은 아니다. 상투어도 처음 사용했을 때는 신선한 말이었다. 다만 시간이 지나고 현실이 변함에 따라 말도 같이 변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고집스럽게 사용돼 상투어가 된 것이다. 따라서 상투어는 생각을 새롭게 일궈내지 못하고, 현실을 고정된 관념에 맞춰 이해하도록 한다. 상투어를 통해서는 현실의 생생함이 생각 속으로 들어올 수 없다. 상투어를 듣는 사람은 진부함을 느끼게 된다. 말이 변하지 않으니 진부해지는 것이다. ‘악의 평범성이란 말을 악의 진부성으로도 번역할 수 있는 것은 이런 맥락에서다.

말에는 생각을 변화시키고, 사람을 변화시키는 힘이 있다. 말이 주는 영향력을 거부하는 것을 독단이라 한다. 독단이란 자기만의 생각에 사로잡혀, 말을 통해 다가오는 현실의 영향력을 거부하는 것이다. 독단에 빠진 사람들은 자기 틀에 갇혀 산다. 그래서 새로운 이야기를 들어도 자기의 틀 안에서만 생각하고 말한다. 심지어 남에게도 자신의 생각을 따르도록 요구한다.

독단에 빠진 사람은 대화할 때 자기 생각만 반복적으로 말한다. 그에게 말은 자기의 독단을 관철하는 도구로만 기능한다. 이때 말은 세상을 공격하는 도구로만 쓰일 뿐, 현실의 영향력을 반영해 자기 생각을 바꾸도록 하지 않는다. 말의 힘이 그에게는 작동하지 않는 것이다. 독단에 빠진 사람에게 말은 항상 공격용 무기일 뿐 대화장치가 아니다.

글자수 : 1716(공백제외)
원고지 : 10.98

#연금술사 #365매일글쓰기 #숭례문학당 #한나아렌트 #상투어와독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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