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3일][01월23일][365매일글쓰기] 설 이틀 전
그건 남편이 잘못한 거다. 오늘 남편은 재래시장에서 장을 봤다. 그런데 부인인 나에게 알려주지도 않고 갔다. 오후에 올라온 페이스북을
보고서야 알게 되었다. 페이스북에 첨부된 사진 속에는 설 준비를 위해 살 물건들이 여기저기 보였다. 남편이 샀을까? 당연히 안 샀다.
자기가 사고 싶은 것만 샀다. 사진 속에서 빛나던 통통한 깐 쪽파가 눈에 어른거렸다. 저 통통한 쪽파로 꼬치전을 하면 맛있을텐데......
지난 추석에 시어머님은 자식들 먹일려고 이것저것 준비하셨었다. 바리바리 음식을
싸주셨다. 시어머님은 이제 70대 후반이시기 때문에, 음식 준비하시다가 몸이 상하셨다. 몸 생각해서 명절 준비를 안하신다더니만...... 추석 지나고 나서 시누이와 의논을 했다. 우리도 이제 집에서
음식 준비하지 말고 식당에서 부모님 좋아하시는 메뉴를 먹자는 내용이었다. 시누이는 당연히 그래야 한다며
찬성했다. 시누이네 시댁도 명절에 여행 갈 생각이라고 했다. 며느리인
나와 딸인 시누이 둘이서 시어머님을 설득했다. 맛있기는 한데 몸이 힘드니, 식당에서 먹자고 했다. 드디어 시어머님의 동의 얻고, 이번 설부터는 명절 음식을 하지 않기로 했다.
명절이 다가오자, 고민이 생겼다. 명절마다
먹던 음식들은 직접 준비하지 않으면 먹을 수 없다. 휴일내내 뭐 하지?
먹는 재미없는 명절은 앙금 없는 찐빵인데! 그래서 결심했다. 우리 가족이 좋아하는 음식 몇 가지만 준비해서 먹어야겠다고. 가지수와
양을 확 줄여서 만들어야겠다고.
아이를 데리고 장을 보러 갔다. 대형마트->백화점->재래시장을 돌 계획을 야심차게 나섰다. 첫 도착지인 대형마트에서
기가 꺾였다. 사람이 많아도 너무 많아서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이곳
저곳에 카트들이 정차되어 있어서 정체가 일어났다. 이런 날!!! 마트는
여전히 통로에 매대를 내놓았다. 매대만 없었어도 쌍방통행이 원활했을 텐데, 난리도 이런 난리가 없다. 결국 물건도 제대로 사지 못한 채 백화점으로
이동했다. 백화점에서만 살 수 있는 갓 잡아온 서해 홍어 한 마리를 샀다. 시부모님은 전북 출생이어서 삭힌 홍어를 좋아하지 않으신다-나는 전남사람이라
삭힌 홍어를 무척 좋아한다. 싱싱한 홍어를 찾아 이곳 저곳을 다녀봤지만, 어시장이나 재래시장 모두 삭힌 홍어만 팔았다. 싱싱한 홍어를 구할
수 있는 곳은 백화점 식품관이 유일하니, 명절 전에는 꼭 백화점을 들러야만 했다.
장을 다 보니, 아이와 나는 파김치가 되었다.
현관문을 들어서자 남편은 미안했는지 슬쩍 눈치를 본다. “음식 장만 안 하기로 했지않아?” “우리 먹을 거야!” 남편은 재래시장에서 사온 물건들을 거실에
늘어놨다. 헐~ 진짜 자기 먹고 싶은 것만 샀네! 장 본 것들을 정리하니, 녹초가 되었다. 오늘 저녁에 갈비를 재워두어야만 명절 당일에 먹기 좋기 때문에 배와 양파를 갈아서 양념을 만들었다. 갈비를 버무려서 냉장고에 쑥 집어넣었다. 돌아서니 설거지가 산처럼
쌓여 있다. 에휴~ 빨래도 널어야 한다. 에휴~ 글도 써야 한다. 에휴~
일단 글부터 쓰기로 마음 먹고 컴퓨터를 켰다. 남편은 또 글을 쓰냐고 한다. 피곤하면 쉬는 것이 낫다는 뜻이다. 글을 쓰지 않는다고 쉴 수 있는
것도 아니니, 그냥 글을 쓰기로 했다. 오늘은 뭘 쓰지, 쌓아 둔 책을 뒤적였다. <버마시절>의 플로리가 절규한 “인격이 곧 소득이다”를 제목으로 두고 쓸까? 조지 오웰이 비판한 지식인의 도덕적 상대주의에
대해 썰을 풀까? 한나 아렌트에 대해 써볼까? 그러나...... 이들에 대해 쓸려면 생각을 정리해야 한다. 머리를 쥐어짜야만
한다. 급 피곤해졌다. “아니야! 오늘은 편하게 쓸래” 그래서 오늘은 남편이 재래시장에 가서 자기가
먹고 싶은 것만 산 일에 대해 쓰기로 했다. 쫌 얄미웠다. 시장에
갈 거면 부인에게 뭘 사와야 하냐고 물어봐야 하지 않나?
글자수 : 1436자(공백제외)
원고지 : 9.44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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