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0일][01월20일][365매일글쓰기] 여성
잡지
등장인물들은 표면적으로는 노동계급이지만 그들의 습관, 집안 인테리어, 옷, 생각, 그리고 무엇보다
말투가 완전히 중산계급이다. 그들의 생활비는 일주일에 삼사 파운드 정도 되는데, 수입보다 높은 수준이다. 말할 것도 없이 이는 일부로 의도한 것이다. 지겨운 삶을 사는 여성 공장노동자나 다섯 아이 키우기에 지친 주부에게 자신을 대입해볼 수 있는 꿈같은 생활을
제공한다는 생각이다. 여기서는 공작부인이 아니라 가령 은행가 아내로 살아가는 자기 모습을 그리게 된다. 일주일에 오륙 파운드 생활비를 쓰는 삶이 이상적인 삶으로 설정되어 있고 노동계급이 실제로 이렇게 사는 것처럼
암묵적으로 가정한다. - <모든 예술은 프로파간다다>134페이지, 조지 오웰, 이론과실천
조지 오웰의 에세이 <소년 주간지> 중 여성잡지에 대한 부분은 나의 과거 모습이다. 젊었을 때는
여성 잡지들을 사서 보고는 했다. 온통 광고만 있는 잡지를 왜 사야만 했을까? 잡지 안에 나오는 물품들을 눈 여겨 보고 그것이 무엇인 알고 있어야만 유행에 뒤떨어지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유행하는 색깔, 화장품, 옷을
사야만 주변으로부터 인정받을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간혹 있는 인터뷰를 보면서 잡지에 나올 정도로
성공한 사람들의 삶을 동경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처럼 되고자 노력했다. 그러나 나는 천만원을 호가하는 모피를 살 돈이 없었고, 억대의 외제차를
살 형편도 안되었다. 물론 수 캐럿 다이아몬드 반지는 꿈도 못 꾸었다.
이렇게 해서 모피, 차, 반지는 나의 꿈이 되었다. 계급 상승을 이끌어 줄 백마 탄 왕자님이 짠하고 나타났으면 하고 생각했다.
냉철히 생각해보면, 백마 탄 왕자님은 있을 수 없었다. 그들이 사는 세계와 나의 세계는 엄연히 달라서 서로 교차할 여지도 없었다. 현실을
깨닫고 나서는 여성잡지는 더 이상 사지 않았다. 여성잡지들이 그리는 세상은 나의 것이 아님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그만 둔 것이 있다. 더
이상 드라마를 보지 않게 되었다. 멜로 영화도 마찬가지였다. 대부분의
드라마와 멜로 영화는 신데렐라, 잠 자는 숲 속의 공주, 인어공주, 백설공주를 모티브로 했다. 공주 환타지를 꾸준히 만들어내어 여성들로
하여금 환상세계에 머물게 했다. 사회는 여성들의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 헛된 욕망을 쫓도록 종용했다. 그래서 거부했다.
남성 위주의 직장에서 나는 나쁜 여자가 되기로 했다. 여성잡지, 드라마, 멜로 영화에서 보여주는 롤 모델들을 버리고 악바리가 되기로
했다. 남성 동료들은 직설적으로 “No!”를 말하는 나를
어색해하면서도 편안해했다. 그들과 치열하게 경쟁하고, 나의
몫을 지키는 삶은 해낼만 했다. 착한 여자가 되지 않기로 하면서부터 심적 압박감에서 해방되었다. 회사에서 고참이 되어서 여자 후배들을 관찰해보니, 상당 수의 여자
후배들이 여전히 착한 여자로 조련당하고 있었다. 항상 예쁘게 꾸며야 하고, 항상 “네”만을 말해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들에 착한 여자 컴플렉스를 설명해주어도 누구는 바로 이해하고 실천했지만
누구는 변화가 없었다. 회사를 그만 둔 후, 여성들이 현재는
어떤 자세로 직장생활을 임하는지는 하나도 모른다. 그러나 여전히 여성잡지들이 버젓이 서점매대에 놓여있고, 드라마에서는 애처로운 눈빛을 한 평사원 여주인공이 회사 임원과 절절한 사랑을 하고 있었다. 사회는 하나도 변하지 않은 듯 보였다.
그러면 나는 어떠한가? 여전히 여성잡지에는 눈길도 주지 않고 있고, 로맨스 드라마와 영화는 보지 않는다. 그런데도 여전히 신데렐라 류의
이야기에 자연스럽게 마음이 간다. 이야기에 몰입하다 소스라치게 놀라며 냉엄한 현실을 일깨우고는 한다. 이것은 아마도 너무 어린 나이에 그림동화책의 환상적인 이야기에 포획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나이 50이 되어서도 신데렐라를 은연 중에 동경하는 것을 보면 그림동화의
중독성은 이 세상 무엇보다 강하다.
글자수 : 1474자(공백제외)
원고지 : 9.54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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