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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일][01월10일][365매일글쓰기] 고세훈 작가의 <조지 오웰>을 읽고


[010][0110][365매일글쓰기] 고세훈 작가의 <조지 오웰>을 읽고

2017년 봄 생애 처음 양명학을 접했던 때를 떠올려 봅니다. <전습록>을 읽기 전까지 읽었던 동양고전이라고는 <연암집><열하일기> 밖에 없던 나에게 심학(心學)의 세계는 너무나 어려운 것이었지요. 15주 일정 중에 5주 정도는 책을 읽어도 검은 것을 글자요 흰 것은 종이일 뿐이었답니다. 저만 그런게 아니었죠. 다들 알듯말듯한 경계선 상에 혼란스러워하고 있었죠. 강사님은 끊임없이 심학(心學)의 핵심을 이런저런 방식으로 설명해주었답니다. 6주가 지난 어느 날, 그 날도 암울한 기분으로 수업을 듣고 있었지요. 그런데 말입니다. 강사님의 설명을 듣다가 번개를 맞은 듯 그 동안 읽었던 부분들이 차르륵 일렬로 정렬하기 시작한 겁니다. 관통(貫通)된 겁니다. 그리고 1년이 흐른 2018년 가을, 다시 수업을 들었습니다. 1년이 흘러서일까? 아니면 음기운이 가득한 장소의 영향이었을까? 아니면 남산의 기운 때문이었을까? 그 날, 잊을 수 없는 말을 듣게 됩니다. “구슬을 하나하나 꿰어 나가다 마지막 구슬이 꿰어지는 순간, 운명처럼 모든 구슬로부터 산란하던 빛들이 하나로 모아져 영롱하게 빛을 발하는 순간이 온다. 그것이 심학(心學)의 매력이다.” 관통(貫通)하는 순간을 묘사한 말이었지요.

학문의 핵심을 관통했다고 해서바로 그것을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다면 얼마다 좋을까요! 안타깝게도 깨달음 뒤에는 익힘()이 필요합니다. 깨달음은 한 순간이지만, 그것을 갈고닦아(切磋琢磨) 완성시키기는 인고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익힘이 언제 완성될지는 예측불가입니다. 각자가 처한 상황()에 달려있기 때문이지요. 운이기도 하고, 운명이기도 하고 그런거죠. 그래도 마음 속에 깨달음이 있으면, 더 이상의 의심은 없을테니 흔들지는 않겠지요.

이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오늘 고세훈 작가의 <조지 오웰 : 지식인에 관한 한 보고서>라는 책을 읽고 온라인 토론을 했기 때문입니다. 고세훈 작가는 조지 오웰을 심층분석한 책을 썼고, 저는 그의 책을 읽고 있습니다. 고세훈 작가의 방대한 자료 조사와 통찰력 덕분에 조지 오웰과 그의 작품을 이해하는데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누군가가 좌르륵 정리해주면, 단지 읽기만 하면 되니 정말 고마운 일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이 책은 무려 600여 페이지가 넘습니다. 두꺼운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밑줄을 긋고, 형광펜을 칠하다가 문득문득 느껴지는 기시감은 무얼까요? 특정 문장과 인용이 반복적으로 등장합니다. 책을 읽다가 헷갈려서 멈칫했습니다.

(조지 오웰)는 자신의 체험을 글로 옮기는 일을 지식인으로서 자신에게 부과된 최소한의 윤리적 과제로 간주했다. 그리고 글의 내용 뿐 아니라 글 쓰는 행위(문체와 내용 모두) 자체를 준엄한 자기검열과 자기수련의 과정으로 만들었다. “내가 발표한 모든 글들은 사실상 적어도 두 번을 쓴 것들이며, 나의 모든 책들은 세 번씩 썼고, 개별 문장들은 5~10회 다시 쓴 것들이 수두룩하다.” 말년에 가까이 가서 쓴 에세이 <나는 왜 쓰는가>에서는 책을 쓴다는 것은 사람을 탈진시키는, 끔찍한 투쟁이다. 그것은 어떤 고통스런 병고를 오래 앓는 것과 같다 (...) 우리는 우리의 개성을 끊임없이 소멸시키지 않으면 읽을 만한 글을 만들어낼 수 없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조지 오웰> 187페이지, 고세훈, 한길사

무라카미 하루키는 매일 원고지 20매를 쓴답니다. 그래서 그는 글쓰기가 두렵지 않다고 합니다. 썼던 글을 여러 번 뒤집어 엎고 다시 쓴다고 하더군요. 조지 오웰도 그랬다고 하네요. “모든 책들은 세 번씩 썼다는 대목에서는 기가 질렸습니다. 지금까지 읽은 조지 오웰의 글들은 모두 다 여러 번 다시 써서 나온 거죠. 그래서인지 조지 오웰의 글은 아름답습니다. 뜻밖의 전개에 놀라기도 하고,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서 계속 읽기도 합니다. 그의 마지막 작품인 소설 <1984>는 손으로 한 번 써서 교정한 다음에 타자기로 쳤다고 하더군요. 엄청난 노력을 기울인 거죠.

조지 오웰의 글을 4주간 읽다가 5주차에 고세훈 작가의 글을 읽어보니 차이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좋은 생각을 구슬이라고 하면, 좋은 생각들이 실에 꿰어지는 것은 책의 편집일 것입니다. 구슬을 잘 엮어서 각각의 빛이 한데로 모이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조지 오웰에게도 어려운 일이었나 봅니다. “끔찍한 투쟁”, “고통스러운 병고라고 하는군요. 작가들의 고통이 생생하게 느껴지는 대목입니다.

글자수 : 1672(공백제외)
원고지 :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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