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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9일][12월28일] 접시닦이


[119][1228][백일글쓰기2] 접시닦이

<파리와 런던의 따라지 인생>에 대한 12 26일자 글에서, 주인공이 가난으로 굶주리다가 친구의 도움으로 호텔 접시닦이로 취직되었다고 했다. 주인공에게 취직은 하늘이 준 기회와도 같았다. 일을 해야만 방값을 낼 수 있고 밥을 먹을 수 있다. 당시의 주인공에게는 이 두가지가 가장 중요했다.

주인공이 접시닦이로 취직한 호텔은 200명의 손님을 위해 약110명의 종업원들이 군대처럼 계급구조를 이루어 정확한 서비스를 제공했다. 계급별로 수입의 차이는 무척 컸다. 수석 요리사는 한달에 5천프랑을 받았고 일반 요리사는 3천프랑에서 750프랑을 받았다. 수석 웨이터는 귀족이나 지체 높은 손님들의 시중을 들고 팁 등의 수입으로 하루 200프랑을 벌었고, 일반 웨이터들은 팁으로 하루 70프랑을 벌었다. 수습 웨이터와 접시닦이는 한달 750프랑을, 하녀들은 500~600프랑을, 식료품 저장실 종업원--실은 주방의 온갖 잡스러운 일을 했다-은 한달 500프랑을 받았다. 주인공은 접시닦이가 아닌 식료품 저장실 종업원으로 채용되었는데, 그의 일은 호텔 종업원들이 식사한 후 나오는 접시를 닦을 뿐만아니라 손님을 위한 차와 토스트 만들기 등이었다. 그의 일당은 하루 25프랑이었데, 일당을 지급하는 수위는 주인공이 물정을 모르는 것을 알고 일부를 착복했다.

한푼도 없다가 하루 25프랑을 벌게 되니, 살 것만 같았다. 게다가 호텔은 종업원들에게 식사와 하루 2리터의 와인도 제공했다. 먹을 것이 해결되니 이제 열심히 일하기만 하면 되었다.

그들(접시닦이)의 일은 노예가 하는 일이며 아무런 기술도 필요하지 않다. 임금은 겨우 연명할 정도이다. <중략> 지금 이 순간에도 대학을 나온 자들이 파리에서 하루 열 시간 내지 열다섯 시간씩 접시를 닦는 형편이다. 그건 그 사람들이 게을러서가 아니다. 게으른 사람은 접시닦이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사고를 할 수 없게 만드는 판에 박힌 생활에 사로잡혀 있다. 만약 접시닦이도 생각을 할 수 있다면 오래전에 노동조합을 조직해서 처우개선을 위한 파업이라도 했을 것이다. 그들은 생각하지 않는다. 생각할 수 있을 만큼 한가한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그네들의 생활이 그들을 노예로 만들었다. - <파리와 런던의 따라지 인생> 275페이지, 조지 오웰, 문학동네

주인공은 아침 7~9시까지 일했다. 오후 2~5시 사이의 휴식 시간을 제외하면 하루 11시간동안 일을 했다. 일은 단순했다. 하지만 폭발적으로 밀려드는 일의 양이 문제였다. 일을 할 때는 너무 바빠서 종업원들간에 심한 욕설이 오갔다. 그들은 정확한 시간까지 정확한 서비스를 제공해야만 했기 때문에 종업원의 공간에서는 시간을 지킬 수만 있다면 어떤 일이라도 했다. 신속함을 얻으려면 포기해야할 것이 있다. 품질이다. 최고급 호텔이지만 서비스 품질은 엉망이었다. 가장 큰 문제는 청결이었다. 바쁠 때는 신문지로 접시를 대충 닦기도 하고 바닥에 떨어진 고기를 주워서 그냥 접시에 올리는 일도 많았다. 식사를 기다리는 손님에게 음식을 제때에 전달하지 못하면 손님은 화를 내고 떠나버리기 때문이다. 주인공도 처음에는 불결함에 치를 떨었다. 하지만 곧바로 일에 떠밀려 청결 따위는 던져버렸다. 오직 정확한 시간내에 정확한 음식을 내보는 것만이 목표가 되었다.

하루를 어떠한 생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기계처럼 바쁘게 보내고 나면, 중간 휴식 시간이든 퇴근 후의 시간이든 술을 마시지 않고는 버틸 수 없게 된다고 한다. 그래서 호텔에서는 모든 종업원에게 하루에 와인 2리터를 무료로 주었던 것이다. 단순하지만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양의 일을 술의 힘을 빌어 해내게 한다. 또한 술은 마치 마약과 같은 효과를 부리기도 한다. 술을 마시면 기분이 좋아져서 일에 대한 혐오감도 덜 수 있었다.

그나마 호텔은 사정이 나았다. 러시아 망명자인 친구의 지인이 식당을 열자, 친구와 함께 러시아인 식당으로 일자리를 옮기고 나서는 더 열악한 환경에 빠지게 된다. 이제는 아침 7시부터 자정까지 쉬는 시간도 없이 일을 해야했다. 출퇴근 시간을 제하고 나면 하루에 겨우 5시간동안 잠을 잘 수 있었다. 종일 부엌에서 요리사와 웨이터와 식당주인부인에게 시달리고 나면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는 잔혹한 하루하루가 계속되었다. 게다가 불결함은 극에 달했다. 호텔보다 모든 면에서 열악한 시설과 환경이 문제였던 것이다. 결국 주인공은 접시닦이 일을 그만 두었다.

마르쿠스 카토가 말하길, 노예는 잠잘 때만 빼고는 일해야 한다고 했다. 그가 하는 일이 필요하냐 필요하지 않느냐가 문제가 아니라, 일 자체가 좋은 것이기 때문에 --- 적어도 노예에게는 --- 일을 해야만 하는 것이다. <중략> 이런 무용한 일(, 접시닦이)을 항구화하려는 본능은 단순한 대중에 대한 공포가 그 근저를 이루고 있다고 생각한다. 대중이란 (사고는 이렇게 이어진다) 저급한 동물이기 때문에 한가해지면 위험하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바빠서 생각할 틈을 주 않는 것이 안전하다. - <파리와 런던의 따라지 인생> 279페이지, 조지 오웰, 문학동네

이것이 조지 오웰이 접시닦이 일에 대해 내린 결론이다. 프랑스 대혁명을 겪은 유럽은 혁명을 두려워하지 않았을까? 그래서 겨우 입에 풀칠할 정도의 임금으로 인간을 하루 종일 일하게 하지 않았을까? 귀족이나 지체 높은 사람들은 호텔에서 시중을 받으며 식사를 한다. 이 일을 위해서 110명이나 되는 종업원들이 벌처럼 분주하게 일하는데 이들의 삶은 매일매일 쳇바퀴처럼 돌아가기 때문에 사고 자체를 봉쇄당한 채 살아간다. 비싼 음식값을 지불할 능력이 되는 중산층들은 집이 아닌 식당에서 식사를 하며 자신의 부를 과시한다. 이들을 주는 팁을 받기 위해 웨이터들은 목을 매고, 주방에서는 요리사와 접시닦이가 전쟁을 치룬다. 주방은 하루 14~15시간 일해야 하고 너무 바빠서 어떤 생각도 할 틈이 없다. 오직 음식 준비와 뒷처리에만 매달린다.

돈 있는 사람들이 서비스를 받는 동안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들은 낮은 임금, 긴 노동시간, 강도 높은 일에 치여 노예와 같은 삶을 영위한다. 이것이야 말로 노예의 삶이 아닌가!

글자수 : 2278(공백제외)
원고지 : 14.94

#연금술사 #백일글쓰기 #숭례문학당 #접시닦이 #현대판노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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