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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일][12월17일] 모범을 보여도 따라오지 않으면 벌로써 다스린다, 서합괘


[108][1217][백일글쓰기2] 모범을 보여도 따라오지 않으면 벌로써 다스린다, 서합괘

921, 21일차에 <보다, 보게 하다()>는 글을 올렸었다. 이 글은 주역의 관괘(觀卦)를 읽고 쓴 글이다. 어제는 관괘 다음에 오는 서합괘(噬嗑卦)를 공부했다. 이 괘는 한자부터 기를 팍 죽인다. 처음 보는 어려운 한자이다. 이해가 잘 안되어서 120분짜리 인터넷 강의를 들었다. 강사조차도 잘 해석이 안된다며, 강의 중에 이런 뜻이지 않겠냐고 한다. 책도 모호하게 기술한 부분이 있는데 저자도 잘 이해가 안되었나 보다.

주역(周易)은 주나라의 시조인 문왕(文王, 기원전 1152~1056)이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주나라는 기원전 1046년에서 기원전 256년까지 유지되었던, 봉건국가였다. 그런데 문왕은 주나라가 건국되기 전에 세상을 떠났으며, 그의 아들인 무왕이 은나라 마지막 왕인 걸과의 전쟁에서 승리하여 주나라를 세웠다. 그러니 주역은 기원전 1050년보다 이전에 만들어졌을 확률이 크다. 무려 3천년 전에 지어진 책이니, 그 당시의 사회문화를 모르는 현대인인 우리가 주역을 해석하는 일은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다. 그 어려움을 여실히 보여주는 괘가 바로 서합괘이다.

서합괘의 이름부터 살펴보자. ()는 치아로 물건을 무는 것이고 합()은 입을 다무는 것이다. 서합은 위아래 턱을 맞물려서 입안의 음식을 씹는다는 뜻이라고 한다. 보다 혹은 보이다는 뜻의 관괘 다음에 오는 괘에서 갑자기 왠 음식 먹는 이야기인가 싶었다. 전통문화연구회의 강좌 중 전호근 교수님이 아주 오래 전에 했던 강의가 있었다. 화질도 음질도 구린 인강을 본 결과는 이렇다. 이 괘가 서합괘가 된 까닭은 괘의 모양 때문이라고 한다. 맨 아래와 맨 위 효()만 양이고 중간의 4개 효가 음인 괘가 있는데, 이름은 이괘(, 그림2 참조)이다. 이괘는 그 모양이 입과 같다고 해서 음식을 먹어 양분을 취해 자라난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이괘에서 4효가 음에서 양으로 바뀐 것이 바로 서합괘(그림1 참조)이다. 입이 무언가를 물고 있어서 음식을 씹어 먹은 모양이다. 그래서 서합이라는 이름이 붙였다고 한다.

 그림1. 서합괘

 그림2. 이괘

괘의 모양으로 음식을 씹어 먹는 뜻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은 이해가 되었다. 그런데 임금이 예를 행하는 모습을 보여 백성을 교화시키려 했는데도(관괘) 따라오지 않는 백성은 형벌로써 다스려 강제로 교화시켜야 한다(서합괘)는 뜻도 있었다. 갑자기 왠 형벌? 또 전호근 교수님의 인강의 내용을 가져와서 설명해야 한다. 이게 좀 묘하기 때문이다. 噬嗑의 발음이 市合의 발음과 같아서 같이 혼용되었다고 한다. 한글로는 서합이고 시합인데? 중국어로도 shìkèshìgě 발음이 다른데? 아마도 옛날에는 발음이 같아서 같은 글자로 취급했나보다. 그래서 噬嗑(서합)은 市合(시합), , 시장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모두 한 백성으로 합()해진다는 뜻으로도 통용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噬嗑(서합)합함을 상징한다. 시장에서는 사람들이 물건때문에 서로 다툰다. 다툼이 해결되지 않은 송사, 즉 재판을 건다. 뜻이 달라서 재판까지 올라왔으니, 재판을 잘 처리해야만 사람들은 합할 수 있다. 그래서 噬嗑(서합)은 治訟(치송), , 송사를 다스린다는 뜻으로 발전하게 된다. , 어렵다. 어려워!

그래서 서합괘는 죄를 지은 사람에게 형벌을 주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각 효의 풀이를 보면 고대의 형벌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전호근 교수님은 이 끔찍한 형벌을 인정하고 싶어하지 않으셨다. 뒤꿈치가 잘리는 형벌, 코를 베는 형벌, 독을 먹는 형벌 등. 책의 저자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발에 차꼬를 차서 뒤꿈치의 움직임을 제약했다라든지 부드러운 살로 한 요리에 코를 박았다든지 등으로 순화해서 생각하셨다. 안타깝게도 교수님의 온화한 생각과 달이 서합괘에는 가장 작은 죄에도 뒤꿈치를 자르는 형벌을 가했던 상황을 담고 있다. 그러다 맨 끝에 가서는 높은 자리에 올라 천하 만민을 고통스럽게 하는 큰 죄를 저질러 목에 무거운 형틀을 메고 귀를 잘리는 형벌을 받게 되는 처참한 지경에 처하게 된다. 이 괘의 이야기에 담긴 내용은 다음과 같다. 사람은 처음에는 작은 죄를 저지르다가 점점 더 죄에 무디어져 점점 더 큰 죄를 저지르고는 한다. 죄질이 가벼울 때 형벌을 받고 뉘우친 후 다시는 죄를 저지르지 않으면 죄인은 백성으로 합해진다. 그런데 벌을 피하고 더 나쁜 짓을 벌이면서 법을 집행하는 사람에게 대들게 되면 결국에는 목에 형틀을 매는 돌이킬 수 없는 형벌을 받게 되는 것이다. 고대인들은 돌이킬 수 없는 지경까지 가지말라고 각 단계별로 가해지는 형벌을 언급함으로써 경고를 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눈 여겨 봐야 할 것은 서합괘(그림 1 참조)의 왕인 다섯 번째 효이다. 원래 이 자리는 양효(陽爻)가 와야 하는데 음효(陰爻)가 자리하고 있다. 보통은 이런 경우 나쁘다()고 한다. 그런데도 서합괘에서는 바르게 행하기만 하면 어렵지만 뒤탈이 없다고 한다. 왜 그럴까? 서경(書經)에 따르면, 用賞惟重 用刑惟輕 용상유중 용형유경 상을 줄 때는 잘한 것보다 더 크게 주고, 벌을 내릴 때는 저지른 잘못보다 더 가볍게 해야만 한다고 했다. 서합괘는 형벌을 쓰는 일에 대한 괘이므로, 음효의 유약한 성질과 잘 맞아떨어진다. 따라서 서합괘의 왕인 다섯 번째 효인 음효가 죄인이 강경하게 나오더라도 일을 바르게 처리하면 허물이 없게 된다. 강하다고 해서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니다. 약하다고 해서 반드시 나쁜 것도 아니다. 좋고 나쁨은 그 때에 따라 다를 뿐이라는 것을 서합괘를 통해 알 수 있다.

글자수 : 2089(공백제외)
원고지 : 13.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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