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6일][12월15일][백일글쓰기2] 나는
왜 쓰는가
나는 왜 쓸까? 여러 차례 이 질문이 백일글쓰기 카폐에서 제기되어
왔었어요. 글을 쓰는 동기가 무엇인지를 묻고 거기에 답하는 글들도 여러 번 등장했었지요. 어떤 사람은 소설가가 되고 싶어서, 어떤 사람은 생각이 넘쳐 정리가
필요해서, 어떤 사람은 더 잘 쓰고 싶어서, 어떤 사람은
자신의 하루하루를 기록으로 남기고 싶어서, 어떤 사람은 일상을 좀 더 가치 있게 만들고 싶어서 등. 다양한 욕구가 있었어요.
그러면 나는 왜? 나는 별로 쓰고 싶지 않았어요. 외울래 쓸래? 하면 외우는 것을 택했지요. 쓰는 일에 대한 저항감이 무척 컸었는데, 쓰는 것뿐만 아니라 의견을
말하는 것도 싫어했어요. 어렸을 적부터 시녀나 무수리과에 속했던 터라 입을 꼭 다물고 잘 들어주는데
익숙했거든요. 몇 년 전까지도 그랬어요. 엄마들 중에 독보적인
존재를 주위로 몰려다녔거든요. 저는 당연히 독보적인 존재는 아니였죠.
이렇게 된 데에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었어요. 그 중에 가장 큰 원인은 바로 학교 교육이죠. 수업 중에 질문하면 안되거든요. 잘 듣고 기억하는 것이 중요했고, 그래야 성공할 수 있었지요. 게다가 나의 중학 시절은 1212 쿠테타 직후에 시작되었어요. 그러니 학교는 학생들을 붙잡아
두는 곳이 였고, 자기 의견을 말해서는 안되는 곳이었어요. 그렇게
길들여진거죠.
착한 시민인 나는 글을 많이 썼어요. 주로 계획서와 보고서를 썼지요. 일을 원활히 진행하게 하기 위해 꼭 필요한 문서들을 만드는 일을 아주 오랫동안 해 왔어요. 그런 류의 글은 의견이 필 요없어요. 사실을 잘 정리하고 평가기준까지만
제시하면 의견은 윗 사람들이 해주지요. 그러니 의견을 낼 필요가 없는거예요. 회사도 의견 따위는 없는 말 잘 듣는 직원을 더 원했지요. 내가
속한 기술 부문은 뭐든 해낼 수 있는 곳이예요. 그런데 뭘 해내야 하냐면, CEO가 원하는 걸 해내는 거예요. CEO의 말 한 마디에 촤르륵~ 마법을 펼치죠. 그전까지 죽어도 안된다고 하던 것이 짜짠하고 되어야만
했어요. 이렇게 말을 잘 듣는데도 기술자들은 항상 최하의 대접을 받았어요. 연봉도 그랬고 승진도 그랬어요. 그래도 우리는 말 잘 듣는 사람들이라
좋고 싫음을 표현하지 않았어요. 만약 싫다고 하면 .......
그래서 과제로 글을 쓸래 외울래라고 하면 꼭 외우는 걸 선택했죠. 더
이상 글쓰기를 피해갈 수 없는 순간에 직면했을 때 겨우 글을 썼어요. 그랬더니 이렇게 써야 한다 저렇게
써야 한다는 잔소리들이 쏟아졌어요. 잔소리가 듣기 싫어서 고민을 했죠.
오래 전에 글쓰기 강좌를 들은 적이 있었지요. 어떻게 글을 써야 한다는 수업을 들으면 글이란
이렇게 써야 하는 거구나하고 알게 되기는 해요. 그런데 막상 글을 쓰면 엉망진창인 글이 나오죠. 왜냐면 글쓰기가 익숙하지 않아서, 즉 서툴러서 그런거예요. 글을 잘 쓰고 싶으면 연습을 해야 해요. 악기를 잘 다루기 위해
연습을 하는 것처럼요. 예전에 유튜브에서 성인 여성이 바이올린 배우는 과정을 영상으로 올린 적이 있었어요. 처음에는 겨우 음을 내더군요. 1주가 지나니 <비행기>와 같은 동요를 삐뚤빼뚤 연주했어요. 한 달이 되자 들어줄만하게 연주하고 점점 더 어려운 곡을 잘 연주하더군요.
2년이 되자 꽤 잘한다는 느낌이 들게 연주하더군요. 이처럼 모든 일에는 일정 기간의 일정량의
연습이 필요해요. 그러니 글을 잘 쓰고 싶으면 연습을 해야지요. 그래서
백일글쓰기를 시작했죠.
나는 창피를 당하지 않기 위해 글을 쓰기 시작했어요. 읽을만하다는
소리를 듣고 싶었거든요. 그런데 매일 글을 쓰다 보니, 새로운
세계를 발견한 느낌이 드는 거에요. 독서한 내용이 정리되고 공부한 내용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더군요. 글쓰기는 공부의 연장이었던거죠. 그래서 신이 났어요. 책을 읽고 쓰고 공부하고 쓰고 그런 나날이 계속되었어요. 당연히
재미있는 글들은 아니었죠. 공부일기 같은 거니까요.
매일 백일글쓰기 강사님이 올려 주시는 리드문에 유명한 작가들의 글을 쓰는 목적과 구체적인 방법들이 등장했어요. 유시민 작가의 글쓰기, 무라카미 하루키의 글쓰기 등. 작가들의 글쓰기는 큰 영향을 미쳤어요. 나는 매일 500자 정도를 쓰는데, 하루키는 4천자를
쓴대요. 와~ 엄청난 양이었어요. 하루키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떤 작가님이 하는 것처럼 2천자는 쓰고
싶었어요. 그래서 노력해봤지요. 500자에서 조금씩이나마
더 써보려고 한거예요.
1000자까지 썼을 때 장벽에 부딪쳤어요. 쓸 말이 없는거예요. 그 때 깨달았어요. 아는 만큼 쓸 수 있는 거였어요. 그래서 30일 읽기를 시작했죠. 매일 책을 읽고 발췌하고 단상을 썼어요. 단상을 쓰다보니 생각이 더 정밀해지더군요. 매일 읽고 생각하고 쓰다
보니 글의 양도 늘더라구요(흐믓). 쓸 말이 많아진거죠. 하고 싶은 말이 많을 때는 글이 술술 잘 써져요. 그런데 어떤 주제는
하고 싶은 말이 마음 속에서 넘쳐 흐르는데도 글이 써지지 않았어요. 왜 그렇까? 그 주제에 대한 정보가 부족했기 때문이었죠. 어떤 주제는 상당한
깊이의 사고를 요구해요. 그 주제를 요리할 지식이 부족했던 거죠. 쓰고는
싶지만 쓸 수 없는 주제였어요. 그래서 또 생각했어요. 공부가
필요하다고요.
또 공부? 창피하지 않을 글을 쓰기 위해 시작한 글쓰기로 공부를 하게
되었네요. 그래서 지금 제 옆에는 책이 쌓여 있어요. 글쓰기가
독서를 부르고 생각을 하게 해요. 이제는 무엇이 더 중요한지 모르겠어요. 무엇이 더 좋은지도 모르겠어요. 독서, 공부, 생각하기, 글쓰기
모두가 하나로 뭉쳐져 버린 것 같아요. 모두 다 좋고 소중해요.
글자수 : 2057자(공백제외)
원고지 : 14.06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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