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2일][12월01일][백일글쓰기2] JLPT 보는
날
오늘 아이가 JLPT의 최하난이도 시험을 봤다. N5이다. N5와 N4는
응시한 사람이 적어서 시험장이 드문드문있다. 여기저기에서 인정받을 수 있는 레벨이 N3이다 보니, N3 이상을 보는 응시자는 많은 편이다. 게다가 일본 유학을 염두에 두고 있다면 N2나 N1을 꼭 봐야만 한다. 그런 이유로 우리 집 근처에서는 N1~N3까지만 시험을 볼 수 있다고 한다.
아이와 함께 지하철을 타고 용산까지 이동했다. 시험장소가 이촌역 바로
옆에 있었기 때문이다. 직행을 탄 까닭에 30분만에 도착했다. 인근 카페에서 여유롭게 차도 한 잔하고 입실 시간에 맞춰 아이를 들여보냈다.
그리고 나서 오랫동안 앉아 공부할 곳을 검색했다. 다행히 조금 걸어가면 스타벅스가 있었다. 학교길을 따라 걸어가다 보니, 큰 길이 나왔다. 사람들의 왕래가 많은 곳이었다. 그곳에 스타벅스가 있었다. 핫초코 한 잔을 주문하고, 이층으로 올라가니 이곳도 사람들로 꽉
차있었다. 큰 테이블에 빈 자리에 양해를 구하고 합석을 했다. 다들
열공분위기이다. 나도 그 틈에서 시험 공부를 했다.
내 옆의 학생은 고등학생인 듯했다. 시험공부를 하는 것 같은데, 집중시간이 짧았다. 자주 핸드폰을 들여다본다. 공부하다 핸드폰을 보다를 반복했다. 내 앞의 아가씨는 대학생인 듯했다. 깜지를 만들며 열심히 외우는 중이다. 정말 분주하게 공부를 하고
있었다. 나의 대각선 방향에는 프로젝트 수주를 위한 설명이 한창이었다.
선택을 받기 위해 자기 회사의 장점을 줄줄이 나열하고 고객의 가려운 곳을 싹싹 긁어주고 있었다. 고개를
들어 멀리 보니, 저 건너편 기둥 옆에 2인 테이블에 앉은
남성은 공부보다는 딴 생각에 빠진 것 같았다. 내 뒤에서는 과외가 한창이었다. 열정적인 설명 뒤에 학생의 ‘예’가
들린다. 일요일 이른 오후 스타벅스는 이런저런 사람들로 만석이었다.
한참 공부를 하고 있었는데, 색다른 소리가 들렸다. 젊은 여자 둘이서 음료를 들고 앉을 곳을 찾고 있었던 듯하다. 일본어로
자리가 없다며 이 많은 사람들이 무엇을 하는지 살펴보고 있다. 다들 자기 자리에 컵 하나씩은 올려둔
걸 보고, 이 많은 사람들이 자리를 샀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아무래도
일본과 우리나라는 카페 이용 문화가 다른가보다. 그들의 이야기를 듣다보니, 주문한 음료를 기다리는 줄에서 작은 꼬마가 아빠에게 노트북을 들여다보고 있는 사람들을 보며 뭐하는 거냐고 물어봤던
것이 떠올랐다. 아빠는 공부하는 거라고 설명해주었다. 아빠도
대학생 때 자주 그랬노라고 대답했다. 나는 저으기 놀라 그 아빠를 쳐다보고 말았다. 나의 대학시절에는 이런 곳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 아빠에게 의문의
1패를 당해버렸다.
아이의 시험이 끝날 무렵 자리를 정리하고 음료가 든 컵을 들고 1층으로
내려갔다. 계단 옆 테이블에서 어떤 사람 둘이서 자연스러운 영어로 대화를 하고 있었다. 한국사람인 듯한데, 외국 생활 경험이 있나보다. 너무 자연스러워서 이곳이 서울이라는 사실을 새삼 확인했다. 서울은
다양한 배경과 문화를 가진 사람들이 모인 곳이다. 몇 십년보다 그 변화가 커서 깜짝 놀랄 때가 많다.
시험장소로 이동하는 길에 부동산이 보였다. 유리창에 매물 정보가 빼곡히
붙어 있었다. 잠시 서서 살펴 봤다. 27평형대 아파트 매매가
22억, 30평형대 아파트 매매가 24억, 대형평형 아파트 매매가 48억이
붙어있었다. 2016년 문화센터에서 재테크 수업을 받을 때, 강사가
말하기를 동부이촌동은 10억 후반대라 했는데 그 사이에 많이 올랐다.
전세가는 얼마인지 봤다. 16~18억. 이곳은
전세조차도 고액이다. 건물은 오래되어 낡았지만, 외형과 달리
가치가 상당했다. 이곳이 재건축되면 가격은 천정부지로 치솟을 것이라는 생각하며 길을 건넜다.
고액의 부동산이 있는 곳을 걸으면서도 별다른 감흥이 없었다. 동양고전을
만난 이후로, 나의 가치관이 180도 달라졌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좋은 집, 좋은 차, 좋은
가방, 좋은 옷 등에 관심이 많았다. 좋은 물건을 갖고 싶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런 것들에 마음이 가지를 않는다. 그 대신 내 정신을
사로잡은 것은 공부이다. 그냥 공부가 아닌 양지(良知)로 가는 길에 온 정신을 집중하게 되었다. 어차피 인간은 죽음에 이르게
되고, 그 순간에는 아무것도 가져갈 수 없다. 단지 그 순간에
나의 내면이 어떤 상태인지가 더 중요하다.
내가 양명선생을 크게 존경하는 이유는 2가지로 압축된다. 첫 번째는 그의 생애 마지막 출정을 준비하는 바쁜 순간에 그의 수제자 둘이 청천교 위에서 양지에 이르는 길에
대해 논쟁을 하고 있었다. 두 제자의 기질은 정반대여서 그들이 체득한 이치에 이르는 길이 달랐다. 그래서 서로가 걸어온 길이 맞다고 우기는 중이었다. 서로 합의가
되지 않자, 마침 지나가던 바쁜 양명선생에게 가르침을 청한다. 그
바쁜 와중에도 두 제자-이들도 관료이다-에게 요약 정리를
해준다. 이것이 그 유명한 사구교(四句敎)이다. 선도 없고 악도 없은 것은 마음의 본체이고(無善無惡是心之體), 선도 있고 악도 있는 것은 의념의 발동이며(有善有惡是意之動), 선악을 아는 것은 양지이고(知善知惡是良知), 선을 행하고 악을 제거하는 것은 격물이다(爲善去惡是格物). 알듯말듯했던 심학(心學)의 실체를 알게 해준 사구교는 나의 보물이 되었다.
두 번째는 양명 선생이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이었다. 아픈 몸을 이끌고
반란을 평정하고 나서 병이 악화되었다. 집으로 돌아가기를 청했으나, 황제를
둘러싼 환관들은 눈엣가시 같은 양명선생의 청을 거절했다.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어서 집으로 돌아가는
배 위에서 양명 선생은 생의 마지막 순간을 맞게 된다. 옆에서 시중들던 제자-그도 관료이다-가 마지막으로 남기실 말씀이 있으시냐고 묻자, 양명선생은 형형한 눈빛으로 제자에게 “이 마음이 이렇게 밝은 더
무슨 말을 하겠는가? 此心光明 亦復何言?”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눈을 감았다. 죽음, 그 순간까지도 그의 마음을 밝게 빛나고
있었던 것이다.
22억짜리 아파트 옆을 나는 옛 성인들과 현인들의 글귀를 마음 속에
품은 채 지나쳤다. 밝은 마음보다 더 가치 있는 것이 이 세상 어디에 있겠는가? 그리고 사랑하는 가족보다 더 소중한 것이 어디에 있겠는가?
시험장소에 도착해보니, 많은 부모들이 비가 내리는 차가운 공기 속에서
서성이고 있었다. 가장 낮은 등급이니 초등학생들이 많은가보다 생각하며,
나도 그 곁에서 발을 동동거리며 서있었다. 시험이 끝나고 응시생들이 하나 둘 입구로 빠져나왔다. 그런데 초등학생은 보이지 않는다. 성인이 다수이다. 그나마 중고등생들이 가장 어린 듯하다. 부모들은 중고생 자녀나 성인이
된 자녀를 위해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아이와 둘이서 전철역으로 가는 길에 시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역시
단어는 다 외워야 한다는 공통된 의견을 도출했다. 방학 때 국어 단어부터 공부해보자고 이야기했다. 모국어가 튼튼하면 외국어 습득이 더 빨라질테니까. 특히 일본어와
중국어는 둘 다 우리나라와 동일한 한자문화권이기 때문에 더욱 더 국어 단어가 중요하다. 아이와 두런두런
대화하며 집으로 오늘 길은 무척이나 평안했다. 내 곁에 선 아이의 키가 나보다 더 커졌고, 나와 동등한 수준의 대화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서로가 서로에게
지적 자극을 주며, 이끌어주는 관계가 되었다. 오늘 나의
마음은 이 보다 더 밝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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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고지 : 18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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