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7일][09월17일][백일글쓰기2] 재미있는
주역강의를 나에게 상으로 주다
#연금술사 #백일글쓰기
#숭례문학당 #주역 #전통문화연구회
#사이버서원
조선 사대부들은 사서삼경은 물론 유학과 관련된 다양한 책을 읽었다. 당시에는
책이 비쌌기 때문에, 어떤 사람은 책을 빌려서 공책에 필사하고 어떤 사람은 몽땅 외웠다고 한다. 연암이 아끼는 벗, 형암 이덕무는 천 권이 넘게 책을 읽었는데, 그의 식견이 높아서 고관대작들도 책을 구하면 형암에게 우선 보내서 오탈자 체크를 했다고 한다. 형암도 이에 대한 글을 남겼는데, 그의 글에 따르면 책을 읽을 때의
정갈한 마음가짐으로 책장을 넘길 것과 돌려줄 때는 반드시 오탈자를 작은 종이에 적어 해당 페이지에 끼워서 보내야한다고 했다. (뒷 이야기 : 하지만 형암은 서얼이어서 과거시험은 볼 수는 있었으나, 등용될 수 없는 처지였다. 그래도 형암은 한 겨울에 바람이 들이치는
작은 집에서 책을 읽으며 겨우 얼어 죽지 않고 살아남았다고 회고했다. 서얼도 양반이어서 벼슬살이 이외의
직업은 가질 수 없었기 때문이다. 원래 중국과 우리나라에서는 서얼 차별이 없었다. 조선 초 서얼인 조광조의 개혁이 실패한 이후, 조선에서는 서얼은
철저히 차별받았다. 연암의 또 다른 벗 초정 박제가도 서얼 출신이었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남다른 재기를 보였으나, 그의 아버지가 서얼인 박제가에게 자신의 처지를
잊지 않도록 이름을 제가(齊家)로 지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연암이 쓴 글의 독자는 당대의 사대부였다. 따라서 연암의 글은 유학
필독서를 모두 읽어야만 이해가 가능하다. 연암집에는 다양한 고서가 인용되는데, 어떨 때는 한 단어만 이용되기도 하고, 어떨 때는 한 구가 인용되기도
한다. 따라서 연암집을 읽을 때는 주석을 꼼꼼히 읽지 않으면, 글을
읽어도 무슨 내용인지 전혀 이해가 되지 않을 수 있다. 그런 이유로 나는 연암집을 읽고 난 후 다양한
고서를 읽기 시작했다. 2년이 지나자, 연암이나 양명선생의
글을 읽으면 그 속의 숨은 뜻을 겨우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아직 읽지 못한 책이 있으니, 바로 주역(周易), 즉
역경(易經)이었다.
올해 봄, 학당에서 어떤 강사분이 주역 강의를 시작했다. 정이천 선생의 <주역>
완역본으로 1년동안 64괘를 강의 한다니, 눈이 번쩍 뜨였다. 그런데 강의 시간이 평일 저녁과 토요일 오전이어서
나는 들을 수 없었다. 직장인이나 학생들이 듣기 좋은 시간대이지만, 주부인
나에게는 불가능한 시간대였다. 게다가 학당과 우리집은 편도로 1시간
30분 거리이다. 나와 함께 강의를 듣는 학우들 중 여러
명이 주역강의를 듣기 시작했다. 정말이지 너무 부러웠다. 그래서
작년 사두었던 중국사람이 저술한 주역책을 꺼내 들었다. 독학을 시작한 것이었다. 읽다가 모르는 부분이 있으면, 학우들에게 질문하기도 하면서 6월까지 주역을 읽었는데 16괘를 읽었다. 64괘 중 16개. 16개의
이야기를 읽은 것이다. 7월과 8월 숭례문학당의 30일 읽기를 시작하면서 주역은 뒷전으로 밀리게 되었다. 주역책은 바로
나의 왼편에 놓인 채로 내가 다시 읽어 주기를 기다리고 있다.
주역은 자연과 인생의 변화를 기술한 책이다. 예를 들면 기다릴 때는
저 멀리서부터 점점 더 가까워지면서 기다리는데, 각 기다림에도 방법이 있다. 멀리 있을 때는 무리해서 나아가지 않는다. 중간 즈음에서의 기다릴
때에는 위험에 처할 수 있다. 상대방으로부터 공격을 받아서 손실이 있더라도 냉정함을 잃지 않고 조급해하지
말아야 한다. 가까이 다가섰을 때에는 상대방이 나에게 항복할 것이지만,
그렇다고 자만해져서는 안된다. 아직도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고 조심하며
정도를 지켜야 한다. 그리고 기다림이 끝났을 때에도 마찬가지이다. 목적을
달성했다고 마음을 놓고 방만하게 즐겨서는 안된다. 항상 자신을 낮추어야 한다. 이런 이야기를 읽고 나와 주변의 생활에 대입해보는 즐거움이 컸다. 주역으로
지적 유희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각 괘의 형상을 분석하는 재미도 솔솔하다. 그 괘에 얽힌 옛 이야기도
재미있다. 가장 처음에 나오는 건괘(乾卦)은 6효(爻)가 모두 양(陽)으로 이루어져
있다. 건괘의 각 효를 빗댄 범려에 대한 고사는 너무나 매력적이었다.
건괘의 맨 끝 효에 이르러서는 항룡유회(亢龍有悔), 즉
‘끝까지 올라간 용은 후회가 있다.’는 시기의 범려의 처신은
혀를 내두루게 했다. 이보다 재미있는 책이 있을 수 있을까?
이번 가을에는 어쩔 수 없이 중국어를 공부해야 하는데, 난이도가 높다
보니 쉽게 지친다. 지루하기는 이루 말할 수 없이 지루하다. 한
문장 한 문장을 어렵게 넘어가는 것으로 보아도, 현 수준이 나의 수준보다 훨씬 높다. 그러니 재미가 있을 턱이 없다. 인강을 듣는 중에도, 사전을 찾는 중에도, 단어를 외우는 중에도, 문장을 해석하는 중에도 주역이 옆에서 자꾸만 놀아 달라고 보챈다. 애써
외면해도 저절로 생각이 주역으로 가고야 만다. 다음 괘는 무엇인지 궁금하기 그지없다.
그래서 추석 동안에 전통문화연구회의 사이버서원을 방문해봤다. 주역
전체를 강의한 인강을 발견했다. 총 292강이며, 각 차시는 1시간 전후로 구성되어 있었다. 평일에 1강씩만 들어도 1년은
걸리는 구성이다. 다행히 추석이라고 회비를 할인도 하고 있었다. 하루의
공부를 다 끝내면 나에게 상으로 주역 강의를 듣게 해주려 한다. 17번째 괘부터 듣기 시작해서 64괘까지 들은 후 처음부터 다시 들어볼 생각이다. 오늘 열심히 공부하고
주역 강의를 한 시간 들어야겠다.
글자수 : 2041자(공백제외)
원고지 : 13.52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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