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콘텐츠로 건너뛰기

[003일][09월03일] 왜 굳이 공부를 해야 할까


[003][0903][백일글쓰기2] 왜 굳이 공부를 해야 할까
#연금술사 #백일글쓰기 #작년이맘때 #주자 #왕양명 #전습록 #세상에서가장쉬운실천법

작년 이맘 때, 나는 남산 밑에 자리잡은 학당에서 주희(주자)와 왕양명에 대한 공부를 막 시작하고 있었다. 우리가 주자에 대한 간략한 책 1권을 읽고 토론을 하던 중이었다. 우리 중 한 명이 질문을 했다. 주자께서 공부에 매진하여 성인(聖人)이 되라고 하시는데, 나는 현재의 나로 만족한다. 왜 굳이 힘들게 공부해서 저 높은 곳에 있는 성인이 되어야 하는가?” 당연한 질문이었다. 주자의 조언에 의하면, 한평생 켜켜이 쌓인 공부의 계단을 하나씩 하나씩 밟고 올라가야만 하는데 그 계단은 끝이 없어 보였다.


질문을 듣자 마자, 나의 생각은 과거로 돌아갔다. 다음 학기에는 왕양명 선생의 <전습록>을 할 계획이라는 강사의 말을 듣던 바로 그 순간으로 돌아갔다. 생전 처음 들어본 단어인 왕양명전습록은 왠지 모르게 거부감을 느끼게 했다. <연암집>보다 더 어려울 것 같았고, 읽어보지 않은 <논어> <맹자> <장자> 등 유명한 책들도 많은데 왜 굳이 <전습록>인가? 수강생들이 한 명씩 조심스럽게 의견을 냈다. 차라리 <사기>를 공부해요. 그러면 인기 많은 강좌가 될 거예요. <장자>도 듣고 싶어요. 하지만 강사는 큰 눈을 빛내며 확신에 찬 어조로 말했다. “왕양명을 한 번 만나보세요. 만나고 나면 생각이 달라질 겁니다. 저를 믿어보세요.”

그렇게 해서 다음 해 봄에 우리는 다시 모여서 <대학><전습록>을 읽기 시작했다. 학창시절에 선생님들께서 슬쩍 흘리신 빵 부스러기로만 알았던 <대학>을 생애 처음으로 진지하게 읽어봤다. 빵 부스러기는 후~욱 불러 날려버리고 나니, 1500여 자밖에 안되는 짧은 텍스트에는 크고 넓은 세계가 담겨있었다. 단어 하나하나를 꼭꼭 씹어 소화시키면서 좋은 영양소를 섭취했다는 포만감이 들었다. 그런데 <전습록>을 읽기 시작하자마자, 하루에도 몇 번씩 머리를 쥐어뜯었다. 검은 것은 글자요, 흰 것은 종이였다. 뾰로퉁해진 나는 퉁퉁 불은 얼굴로 너무 어렵다. 무슨 말인지 도통 모르겠다.”를 반복했다. 그럴 때마다 강사는 큰 눈을 빛내며 여러 번 반복해서 읽어보세요. 그리고 조금만 더 읽으면 더 쉬워져요.”

알 듯 말 듯하니 질문이 쏟아졌고, 그 때마다 강사는 실생활에 빗대어 이해시키려고 노력했다. 답을 들으면 이해가 된 듯하다가, 잠깐 뒤에는 다시 깜깜이가 되고는 했다. 그때마다 강사는 중요 메시지를 반복해서 설명해주었다. 반복 또 반복.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또 다시 반복된 설명을 듣던 중에 벼락같이 깨닫게 되었다. “그 말이 이 말이었어? 뭐야, 엄청 쉽잖아!” 한 번 깨달으니, 눈이 환해지고 마음이 탁 트였다. 이제는 강사의 한 마디 한 마디에 고개가 저절로 끄덕여 졌다.

<전습록><주자어류>처럼 형이상학적인 설명에서 시작해서 형이하학적인 설명으로 이어지는 구조를 갖는다. 책을 펼치자 마자 마주한 고차원의 내용에서 헤매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차츰 이어지는 일상생활과 연결되는 설명을 통해서 앞에서 읽은 어려운 내용을 재해석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독특한 구조 덕분에 책을 여러 번 읽을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 중요 개념과 메시지를 확실하게 이해하게 되었다. 정말로 놀라운 공부법이었다. 이제야 강사가 왜 그 큰 눈을 빛내며 확신에 차서 설명했는 알 수 있었다. 강사도 나와 동일한 경험을 한 것이다. 물론 내용이야 다를 수 있지만.

<대학><전습록>을 통해서 나의 삶은 완전히 바뀌었다. 변명, 주저, 불안, 미루기와 같은 고질적인 나의 문제들이 말끔히 사라졌다. 대신에 열정, 희망, 긍정, 낙관, 실행이 들어섰다. 미래에 대한 걱정과 불안은 현재를 충실히 사는 것과 바꾸었다. 하고 싶은데 00때문에 지금은 안된다던 마음은 지금 당장 실행하자는 마음으로 바뀌었다. 출신, 나이, 성별, 직분 등의 인습을 발로 뻥차버리고 나니, 온전하고 순수한 만 남았다. 이것이 바로 왕양명 심학(心學)의 요체였다. 누구나 쉽게 실천할 수 있는 학문이 바로 양명학이었다.

이후 <대학><전습록>은 나의 보물이 되었다. 그리고 그 보물들을 한 번 더 읽어 보려고, 머나먼 남산까지 가서 주희와 왕양명을 공부하려던 그 순간에 우리 중 한 명이 질문을 한 것이다. 주자께서 공부에 매진하여 성인(聖人)이 되라고 하시는데, 나는 현재의 나로 만족한다. 왜 굳이 힘들게 공부해서 저 높은 곳에 있는 성인이 되어야 하는가?” 양명학으로 삶을 바꾼 경험이 있는 나는 다시 강사의 큰 눈을 바라보며 어떤 답을 내놓을지 기다렸다. 강사는 눈을 빛내며 말했다. “나는 성인을 현대의 기준으로 재해석해 보았다. 현대의 성인은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다. 오늘 하루 공부하여 어제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다면 충분하지 않은가?”

글자수 : 1802(공백제외)
원고지 : 12.1

댓글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사피엔스 3일차 3 아담과 이브가 보낸 어느 날

사피엔스 3 일차 제 1 부 인지혁명 3 아담과 이브가 보낸 어느 날 (70~101 페이지 ) 2019 년 8 월 5 일 월요일 # 사피엔스 # 함께읽기 # 숭례문학당 # 인지혁명 # 게걸스런유전자 #7 만년전부터 1 만년전까지 # 수렵채집위주생활 # 약 1000 만명인구 ▶ 오늘의 한 문장 현대인의 사회적 , 심리적 특성 중 많은 부분이 이처럼 농경을 시작하기 전의 기나긴 시대에 형성되었다 . 심지어 오늘날에도 우리의 뇌와 마음은 수렵채집 생활에 적응해 있다고 이 분야 학자들은 주장한다 . - 70 페이지

[034일][10월04일] 넷플릭스 크리미널 영국, 독일, 프랑스, 스페인편

[034 일 ][10 월 04 일 ][백일글쓰기2]  넷플릭스 크리미널 영국 , 독일 , 프랑스 , 스페인편 넷플릭스를 가입하기 전에는 케이블 TV 에서 미드 ( 미국 드라마 ) 를 보고는 했다 . 유명한 미드는 여러 장르가 있는데 , 범죄스릴러 미드가 압도적으로 많다 . 미국의 각종 수사기관들이 혼신의 힘을 다해 범인을 잡는 장면은 시청자의 속을 후련하게 했다 . 정의가 실현되는 장면은 마치 어릴 적 읽었던 권선징악 ( 勸善懲惡 ) 동화들을 떠올리게 했다 . 비록 드라마이지만 , 착한 사람은 복을 받고 악한 사람은 벌을 받는다는 이야기에 심리적 위안을 느낀 것이다 . 일종의 카타르시스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