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8일][05월07일][365매일글쓰기] 삼국지
함께 읽기를 포기하다
소설 삼국지는 나의 중학시절을 대표하는 책이다. 집에서 1시간 떨어진 학교를 배정받자 엄마는 울었다. 시내에 있는 그 많은
중학교를 두고 하필이면 멀리 변두리에 위치한 신생학교를 배정받았기 때문이었다. 긴 시간을 버스를 갈아타가며
통학을 했던 힘든 시절에 나에게 위안을 준 것은 영웅호걸들이 천하제패(天下制覇)하는 이야기였다. 수많은 사람들이 등장하는 소설 속에서 관우의 멋진
수염을 칭찬하고 공명의 백우선을 탐냈다. 주유가 피를 토하며 죽을 때는 발을 동동 굴렀다. 3년내내 삼국지를 백 번은 읽었던 것 같다. 중학생의 눈으로 중학생의
마음으로 읽고 또 읽었다.
중학생 때 읽었던 삼국지는 일본 소설을 번역한 것이었다. 40대가
되어 다시 선택한 책은 황석영 작가의 번역본인 창비 출판사의 10권짜리 삼국지였다. 혼자 읽어보려 했으나, 중학 시절 읽었던 책과 도입부부터 달랐고, 문체도 상당히 달라서 적응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책은 몇 년간
먼지 속에 잠겨 있었다. 숭례문학당에서 삼국지 함께 읽기를 발견했을 때 무척 기뻤다. 매일 조금씩 함께 읽어나가면 끝까지 읽어낼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간
숭례문학당의 읽기 강좌에서 얻는 작은 성공을 믿었다.
그러나 실패했다. 나는 삼국지와 함께 이중텐의 <삼국지 강의>도 함께 읽어 나갔다. 삼국지를 읽으며 사건의 전후맥락을 파악하고 승패의 원인을 생각하려 노력했다.
등장인물 각각에 조명을 비춰서 그들 각자가 사건에 끼치는 영향을 분석해보려 했다. 중학시절과
달리 전풍, 저수, 순욱,
가후, 서서, 공명 등과 같은 모사들에 저절로
마음이 갔다. 모사들은 무엇을 보았고, 어떤 계책을 내어놓았는지를
관찰했다. 또한 동탁, 여포, 원소, 원술, 유표와
같은 실패한 인물들을 유심히 살폈다. 각 인물의 장단점을 평가하고 어떤 요인 때문에 실패했는지 파악하려
노력했다. 그런데 삼국지에 대한 분석을 하면 할수록 함께 읽을 수가 없게 되었다.
함께 읽을 때 가장 중요한 점은 서로의 언어를 맞추는 것이다. 함께
읽는 멤버의 수는 별로 많지 않았다. 그런데 나는 그곳에서 무척 외로웠다. 나는 삼국지 함께 읽기를 조지 오웰 전작 읽기처럼 해내려 했다. 너무
진지하게 임했던 것이다. 소설을 읽으며 깊은 사유를 하려 했던 점이 실패의 원인이었다. 소설은 그냥 재미있게 읽으면 된다. 그 속에서 진리를 찾으려 하는
것은 반칙이다. 이 반칙으로 인해 나는 멤버들과는 다른 언어를 사용하게 되었다. 다른 언어로 인해 홀로 읽기가 되어버렸고, 더 이상 함께 읽을 이유가
없어졌다. 그래서 지난 일요일에 단톡방에서 나왔다. 아마도
리더는 예상하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삼국지 함께 읽기가 실패하자, 독서를 중단했다. 홀로 읽기로 전환하기 위해서 에너지를 비축해야만 했다. 며칠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고 드라마 몰아보기를 하며 놀았다. 탱자탱자 놀면서,
일상을 글로 썼다. 그러면서 과거에 했던 함께 읽기를 반추해봤다.
30일 읽기에서는 매일 발췌하고 단상을 올렸다. 매일해야 하는 숙제였다. 오늘의 한 문장만 봐도 멤버들이 어느 부분에
중점을 두었는지 파악할 수 있었다. 다른 멤버들의 단상을 읽고 나의 것과 비교해 보고는 했다. 매일 하는 숙제인 발췌와 단상은 30일 읽기의 꽃이다. 그리고 30일 동안 완성된 발췌록은 보물상자에 담겨져서 글로 재탄생되었다.
조지 오웰 전작 읽기에서는 매주 한 권씩 읽어내느라 진땀을 흘렸다. 익숙하지
않게 많은 독서량이었지만, 해내고 나면 뿌듯했다. 리더가
올려준 발제문을 읽고, 항목별로 글 한 편씩을 써내면 큰 일을 해낸 듯한 성취감이 들었다. 전작을 읽으면서 한 명의 작가를 이해하게 되면 될수록 그 작가가 내 곁에 살아 숨쉬며 나와 대화를 하는 듯했다. 끊임없이 작가와 대화하는 동안, 나는 나의 글을 통해 매번 새롭게
태어났다. 전작 읽기는 30일 읽기와는 다른 각도로 책을
읽게 했고, 나에게 끼친 영향은 컸다.
나는 삼국지 함께 읽기에서도 조지 오웰 전작 읽기와 같은 성취감을 맛보기를 원했다. 이것이 함께 읽기에 실패한 주요 원인이다. 30일 읽기 하듯이 했어야
했다. 쩝, 아쉽다. 결국
삼국지는 홀로 읽게 되었다.
글자수 : 1548자
원고지 : 10.5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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