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일][04월09일][365매일글쓰기] 365일
중 100일이 되었다
2019년 5월 20일 나는 첫 글을 썼다. 제목은 <발제문과
에세이가 무섭다>였는데, 이 글에서 나는 글쓰기가 무섭다고
했다. 당시 듣던 강좌에서는 학기 중에 발제문을 한두번은 써야 했다.
다른 사람의 발제문을 보고 흉내를 내었더니, 글이 엉망이었다. 뭘 쓰는지도 모른 채 글을 썼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독서토론 모임에서
사용하는 것과는 다른 발제문은 에세이 같기도 하고 논문 같기도 하고 감을 잡을 수 없었다. 또 에세이를
써야 했었는데, 수필을 써야 하는지 주장문을 써야 하는지 감상문을 써야 하는지 헷갈렸다.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는 좌충우돌의 시기였다. 마치 글쓰기
감옥에 있는 듯도 하고 글쓰기 개미지옥에 빠진 듯도 했다. 그래서 탈출구로 삼은 것이 백일글쓰기였다.
첫 번째 백일글쓰기에서 처음으로 쓰고 싶은 것을 마음껏 썼다. 마음
가는 대로 자유롭게 썼고, 문장이나 구성 오류가 있어도 그냥 썼다. 마치
세상을 구하는 마음으로 글을 썼다. 힘이 잔뜩 들어간 글들이 나왔다.
다행히도 당시의 강사와 멤버들은 마음이 너그러웠다. 좌충우돌하면서 날을 잔뜩 세운 나에게
끊임없이 말을 걸어주었고, 용기를 북돋아주었다. 하루하루
지날수록 자신감이 생겼다. 글쓰기는 어렵지도 무섭지도 않은 것이 되었다.
두 번째 백일글쓰기에서는 글에서 힘을 뺐다. 무섭지 않으니 마음이
가벼워져서 그냥 썼다. 쓰고 또 썼다. 학과 공부를 하다가
쓰고 책을 읽다가 쓰고 음악을 듣다가 쓰는 나날이 계속되었다. 무라카미 하루끼처럼 매일 원고지 20매를 쓰려고 노력해봤다. 물론 매일 실패했다. 원고지 20매(4000자)를 쓰려면 긴 호흡이 필요했다. 긴 호흡 속에서 길게 생각해야만 4000자를 쓸 수 있었다. 그러나 이 때의 나의 호흡은 2000자까지도 가지 못했다. 겨우 1000자를
넘기는 수준이었다.
생각 재료가 부족하다는 것이 나의 결론이었다. 아는 것이 적으니 생각도
짧은 것이다. 그래서 읽기 강좌를 신청했다. 빡빡한 일정을
가진 난이도가 높은 강좌를 겨울내내 들었다. 아침에 눈 떠서 읽기 시작해서 잠들 때까지 읽었다. 매일 20페이지 읽던 읽기체력을 50~70페이지로
늘렸다. 참으로 이상했다. 읽기 체력이 늘자 생각 체력도
늘었다. 그래서 글쓰기 체력도 늘리기 위해 노력하고 또 노력했다. 무척
힘든 겨울이었다.
세 번째 백일글쓰기를 할 것인가? 365매일글쓰기를 할 것인가? 어차피 쓸거라면 길게 가자고 마음먹고 365매일글쓰기를 선택했다. 여전히 목표는 원고지 20매로 잡았다. 여전히 목표 달성하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고 초조하지는 않다. 원고지 20매는 길게 호흡하기 위한 수단일 뿐 강제수단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원고지 20매를 쓸 만큼의 생각을 매일 시도해보는
것으로도 족했다.
독서와 씨름하는 와중에 코로나19(COVID-19)가 전국을 뒤흔들었다. 난리도 이런 난리가 없었다. 때로는 어처구니 없는 일들도 일어났다. 코로나19는 나의 글쓰기의 전환점이 되었다. 뉴스를 읽고 SNS를 탐독하면서 생각들이 뭉게뭉게 피어올랐다가 사라지고는
했다. 그 중에 하나라도 잡고 글을 써보려 노력했다. 이
과정은 의외의 결과를 가져왔다. 자료를 잘 수집하면 생각도 잘 되고 글도 잘 써진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이다.
학기가 시작되었다. 한편으로는 코로나19가 전세계로 확산되었다. 내 나라의 일일때는 잘 보이지 않던 일들이
남의 나라에서 일어나자 더 명확하게 보이기도 했다. 내 일에는 힘이 빡 들어가지만 남의 일에는 힘이
안 들어가기 때문에 그런가 보다. 그동안 글뿐만 아니라 생각에도 힘이 너무 들어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잘 써질리가 없었다. 억지로 쓴 글은 보기에도 좋지 않았다. 힘을 빼야 했다.
지금까지는 나는 ‘힘을 뺴야 한다’고
했다. ‘힘’이란 무엇일까?
잘 쓰고 싶다는 자의식과 기대이지 않을까? 잘 써야 창피하지 않을 것이라는 자의식과 잘
써야 더 많은 사람이 읽어 줄 것이라는 기대가 내 글을 망친 것이다. 자기 검열을 하고 갖가지 수식어를
붙이고 중언부언하게 했다. 그래서 365매일글쓰기를 시작하면서
나는 내 글을 사람들이 읽지 않기를 희망했다. 이전과는 정반대로 기대를 갖자 마음이 한결 편안했다. 아무도 읽지 않을 글이기에 편하게 쓸 수 있었다. 굳이 좋을 글을
쓸 이유도 없어졌다. 그냥 쓰면 되었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무라카미 하루키처럼 매일 원고지 20매를 목표로 삼았다. 매일
목표 달성에 실패해도 괜찮았다. 언젠가는 식은 죽 먹듯이 쓰게 될 테니까.
나는 오늘이 100일이라는 것을 잊고 있었다. 어제 분명히 99일차 글을 써서 올렸는데, 그새 잊어버렸다. 오늘은 000에
대해서 쓸 생각으로 어제부터 수집한 자료를 정리할 계획이었다. 단톡방에서 100일이 거론되자 000은 내일의 글감으로 넘기기로 했다. 100일 소감을 쓰려고 노트북을 켰다. 그리고 첫 번째 백일글쓰기의
첫 번째 글을 열었다. 제목은 <발제문과 에세이가 무섭다>였다. 원고지 6장짜리
글이었고, 생각은 중간에 뚝 끊겨 있었다. 첫 글을 읽고
나니, 마음이 더욱 더 편안해졌다. 324일간 나의 글에
진보가 있었기 때문이다. 첫 번째 백일글쓰기 멤버들과 함께 천일을 약속했었다. 천일까지는 676일이 남아있다.
676일이 지나고 나면 내 글에는 얼마만큼의 진보가 있게 될까? 궁금하다. 너무 궁금해서 매일 글을 쓰지 않고는 배길 수가 없다.
글자수 : 2022자(공백제외)
원고지 : 13.08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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