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5일][03월15일][365매일글쓰기] 사후(事後)의 깨달음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나는 자주 이렇게 말하고는 했다. “고등학생
때 영어 공부를 좀 더 열심히 했더라면” 혹은 “그때 과감히
회사를 그만두고 공부를 더 했더라면” 이것은 삶의 회한이었고 신세 한탄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에서 정신이 번쩍 드는 표현을 마주하게 되었다. ‘사후(事後)의 깨달음’
일이 다 끝난 후에 일의 진행과정을 반추하면서 “그때 그래서 그렇게
되었다”라든지 “그때 다르게 했더라면 더 좋아졌을 것이다”라는 식으로 인과관계를 유추하는 것을 ‘사후의 깨달음’이라 한다. 그래서인지 많은 드라마, 소설과 영화에서는 과거로 회귀한 주인공이 등장한다. 현재에 살고
있는 관객과 과거로 회귀한 주인공은 그 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고 있지만, 주인공을 둘러싼 인물들은
무슨 일이 진행되고 있는지 감조차도 잡지 못한다. 관객들은 주인공과 함께 과거를 활보하며 마치 예언가가
된 듯한 희열을 느끼게 된다. 그래서 이런 류의 이야기는 대중에게 인기가 많다.
사실 그 시대를 가장 잘 아는 사람들, 다시 말해 그 시대에
살았던 사람들이야말로 그 시대를 가장 모르는 사람들이다. 사후의 깨달음에 의해 필연적인 것처럼 보이는
것이 정작 그 시대에는 전혀 명백하지 않은 일이었다. 이 역사의 철칙은 오늘날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우리는 글로벌 경제위기에서 벗어난 것인가, 아니면 최악의 위기가
곧 닥쳐올 예정인가? 중국이 성장을 계속해서 선도적 초강대국이 될까?
미국은 헤게모니를 잃을까? 일신론적인 근본주의가 급증하는 것은 미래의 파도일까 아니면 장기적
중요성은 별로 없는 국지적 소용돌이일까? 우리는 환경적 재앙으로 향하고 있는가, 아니면 기술적 파라다이스로 향하고 있는가? 어느 쪽이든 이를 뒷받침하는
훌륭한 주장이 존재하지만, 확실히 알 방법은 없다. 그러나
불과 몇 십 년 지나지 않아 사람들은 과거를 돌아보면서 이 모든 질문에 대한 해답은 명백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 <사피엔스> 338~339 페이지, 유발
하라리, 김영사
2019년 12월 하순이
되자 유튜브에서 중국 우한시에 심각한 전염병이 돌고 있다는 영상들이 등장했다. 당시에는 중국 우한시에
한정되어 보였다. 사스가 다시 발병한 것일지도 몰랐다. 아니면
야생동물을 날 것으로 먹어 야생동물의 병이 사람에게 전이된 것일 수도 있었다. 그래서 한국에 있는 우리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2019년 12월 31일이 되자 우한 폐렴이라는 이름으로 국내 뉴스에 등장했다. 여전히
그 병은 우한시에 국한되어 있었고, 한국에 있는 우리는 안전했다. 2020년
1월 초순이 되자 중국 우한시의 상황은 악화되었다. 중국
당국이 사건을 은폐하고 있다는 유튜브 영상들이 등장했다. 뉴스로 알려진 것보다 더 심각하다는 내용이었다. 1월 중순이 되자 중국 우한시는 영화 <감기>의 한 장면 같아졌다. 하지만 유튜브로 영상을 본 사람들에 한해서
불안을 느꼈을 뿐 여전히 중국 당국은 사람간 감염이 되지 않는 병이라고 중국인은 물론 세계인을 안심시켰다.
2020년 1월 21일 중국 보건당국은 중국 우한시에 퍼지고 있는 전염병(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병)이 사람간 전염이 된다고 공식 인정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라고
명명한 이유는 이 바이러스가 사스, 메르스처럼 코로나바이러스 계열이지만, 지금까지 보고된 적이 없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아무도 이
바이러스의 정체를 몰랐다. 염기서열만 밝혀졌을 뿐, 어떻게
진단해야 하고 치료해야하는지는 인류의 숙제로 남겨졌다.
2020년 1월 14일 한국 보건당국은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염기서열을 중국의 한 연구소로부터
받았고, 이를 바탕으로 국내업체들이 진단키트, 백신, 치료제 개발에 착수했다. 2020년 2월 7일 한국은 코젠바이오텍에서 개발한 진단키트로 6시간만에 코로나19 진단이 가능해졌다. 기존의 판코로나바이러스 검사는 코로나19를
포함한 모든 코로나바이러스를 검출할 수 있지만, 하루 200건정도만
검사가 가능했고, 진단까지 24시간이 소요되었다. 새로운 진단키트는 환자 샘플에서 유전자를 추출, 증폭 후 검사하는 방식으로, 코로나19 하루 3천건(며칠 후 5천건이 됨)을
검사할 수 있게 되었고 검사 결과도 6시간이면 나온다. 따라서 검사 가능 장소가 대폭
늘었다. 기존에는 질병관리본부와 18개 시도보건환경연구원, 총 19곳에서만 검사가 가능했지만 이제는 전국 50여개의 민간 병원과 124곳 보건소 등 170여곳에 검사가
가능해졌다.
국내 기업들의 발 빠른 진단키트 개발이 가능했던 이유는 과거 사스, 신종
플루, 메르스, 지카 등의 진단키트를 개발했던 경험이 있었고, 우한시의 원인 모를 폐렴 발생 시점부터 미리 연구를 진행한 덕분이었다. 지난
1월 14일 보건당국이 입수한 코로나19 염기서열로 더욱 빠른 개발이 가능했다는 것이 업체측의 설명이었다. 코젠바이오텍, 씨젠, 솔젠트 그리고 SD바이오센서, 4개의 바이오벤처기업은 모두 DNA와 유전자 분석 등을 일컫는 ‘분자진단법’을 사용한다.
이를 실시간 유전자 증폭기술(RT-PCR) 방법이라고도 한다.
이들 4개사의 진단키트로 한국은 하루 최대 1만 7천건의 검사를 진행해 왔다. 또한 치료제와 백신의 개발도 발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한국은 확진자를
빨리 찾아내 더 이상 코로나19가 전파되지 않도록 차단하는데 노력해왔다. 코로나19 병증은 초기에는 몸살 수준이었다가 환자의 상태가 급격히
나빠져서 죽음에 이른다. 따라서 빨리 발견해서 치료를 하게 되면 환자를 살릴 확률이 높아진다고 할 수
있다. 중국 우한시에서 코로나19에 걸린 부모님을 간병하다가
전염되어 숨진 중국 영화감독 창카이는 55세의 건강한 사람이어 었지만,
치료를 받지 못해서 사망하고 말았다. 아무리
젊은 사람이라도 발견이 늦어지면 ‘사이토카인 폭풍’으로 인해서
장기가 손상되어 중증이 된다. 이는 곧 사망에 이를 수도 있다는 의미이다. ‘사이토카인 폭풍(cytokine storm)’이란 인체에 바이러스가 침투하였을 때 면역 물질인 사이토카인이 과다하게 분비되어
정상 세포를 공격하는 현상이다. 사이토카인이 과다하게 분비되어 정상 세포들의 DNA가 변형되면서 2차 감염 증상이 일어나게 된다. 스페인 독감과 조류 독감의 주요 사망 원인이기도 하다.
최근에 의사가 코로나19 검사를 권하는데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검사를 받지 않은 채 생활하다가 증상이 악화되어서야 코로나19 검사를 받는 사례들이 종종 뉴스에 등장하고
있다. 젊음과 건강을 과신해서는 안된다. 스페인독감으로
무수히 많은 젊은이들도 숨졌다는 사실을 상기해야만 한다. 현재까지는 한국 보건당국과 지자체의 보건 및
행정공무원들이 하루도 쉬지 않고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바로 우리들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잠을 줄여가며 코로나19와 싸우고
있는 것이다.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우리는 이들의 노력에 부응하는 행동으로 보답해주어야 하지 않을까? 나중에 그때 검사를 빨리 받았더라면 하고 후회하지 않으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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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고지 : 15.8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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