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4일][03월04일][365매일글쓰기] 가짜
뉴스
지난 주 나는 크게 실망을 했었다. 매번 선거가 다가오면 다가올수록
흑색선전과 가짜뉴스가 판을 치고는 한다. 이 패턴이 반복되다 보니, 이제는
흑색선전을 하거나 가짜뉴스를 퍼뜨리는 행위 자체를 극도로 혐오하게 되었다. 비단 나만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텔레비젼의 채널이 몇 개 안되었고, 조간과 석간 이외에는 정보를 구할
수 없었던 적이 있었다. 이 때에는 입소문에 군중이 이리저리 휩쓸리고는 했다. 어릴 적에 부모님은 누구에게 투표해야 하는지를 서로 의논하고는 했다. “000은
첩이 있대” 여자들은 바람기 있는 후보를 싫어했다. “ㅁㅁㅁ은
뇌물을 받는대” 남자들은 잇권에 민감했다. 물론 어린 나는
000도 ㅁㅁㅁ도 몰랐다. 투표를 위해 토론하는 이야기를
그저 듣고 있었다. 부모님이 토론하던 중에 아버지가 갑자기 버럭 화를 내셨다. “그 소문은 가짜야. 그 양반은 그런 사람이 아니야.” 카더라 뉴스가 나왔던 것이다. 아버지는 매일 아침 4개의 신문을 보셨다. 당시의 신문은 읽을 거리가 많았다. 카더라 뉴스의 정체를 밝히는 기사들도 꽤 있었기 때문에 읽는 재미도 솔솔했다.
여러 개의 신문을 읽다보면 카더라 뉴스의 정체가 밝혀졌으니까.
몇 년전 신문을 구독하기 위해 고민해본 적이 있었다. 길 거리에서
어떤 아저씨가봉투를 쥐어주면서 XXX신문을 구독해달라고 사정한 적이 있었다. 광고 전단지인 줄 알고 봉투를 열어보니 현금이 두툼하게 들어 있었고, 깜짝
놀라 그 아저씨에게 되돌려주면서 신문같은 거 안본다고 했었다. 어렸을 적에 신문들을 읽으면서 카더라
뉴스를 추적하던 흥미진진한 경험이 생각나서 신문을 구독하려 했던 나는 이 사건으로 큰 충격을 받았다. 충격
속에서 XXX신문은 열외로 하고 구독할 신문을 선정하기 위해 며칠 동안 인터넷으로 PDF판을 살펴봤었다. 그리고는 신문 구독을 포기했다. 어릴 적 집에서 읽던 신문에 담겨져 있던 날카로운 기사들을 찾을 수가 없었다.
포털이 인기를 끌면서 종이 신문은 아예 보지 않게 되었다. 원하는
기사가 있으면 인터넷을 검색하면 관련기사가 주르륵 떴고, 여러 기사를 읽고 비교하면 되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관련기사들이 토씨 하나도 틀리지 않고 똑같은 내용을 앵무새처럼 반복하기 시작했다. 신문의 복수성이 필요없게 된 것이다. 이 현상은 점점 더 심해졌다. 결국은 하나의 매체만 봐도 충분했다. 그 기사나 이 기사나 토씨
하나도 틀리지 않기 때문이었다. 어쩌나 다른 관점으로 쓴 기사를 발견하면, 그 기사를 올린 매체를 눈여겨 보았다가 다음 번에는 그 매체의 기사부터 읽었었다. 허! 이상한 일이 발생했다. 매체가
오염되어 기사들이 지리멸렬해진 것이다. 그러면 그 매체는 더 이상 신선하지 않다. 더 이상 기사를 읽을 이유가 없어진다. 또 다른 매체를 탐색해 본다. 나는 그때까지 잘 몰랐다. 기사는 기자가 쓰기 때문에 기자 이름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말이다.
최근에 SNS를 통해 믿을 만한 친구들이 첨부하는 기사를 읽다가 기자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요즘은 기자들이 직접 진행하는 유튜브 채널도 있다. 흑색선전이나 가짜뉴스를 퍼나르지 않고 진위를 탐색하는 기자들이 눈에 띄면 그들의 기사와 동영상을 즐겨찾기로
선정해두고 기사와 동영상이 올라올 때마다 봤다.
양방향 소통 시대에 단방향 소통을 고집하는 매체는 사절이다. 자기
주장만 하는 기사나 방송은 보기도 싫다. 판단하는 사람은 ‘나’인데, 매체들이 먼저 판단하고 ‘나’더러 매체의 판단을 그냥 받아들이라고 강요하니 거부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대중을
양떼로 길들이려는 저열한 시도는 참을 수 없다. 검색 한 번만 하면 진짜인지 가짜인지 쉽게 알 수 있는
시대에 말이다.
2020년을 살아가는 대중은 불평등에 민감하게 반응할 뿐만 아니라
가짜뉴스에서도 민감하게 반응한다. 가짜뉴스는 승리할 수 없다. 그럴
듯하게 꾸민 이야기의 작용의 효과보다 가짜뉴스를 혐오하는 반작용의 효과가 더 크기 때문이다.
글자수 : 1458자(공백제외)
원고지 : 9.73장
#연금술사 #365매일글쓰기
#숭례문학당 #가짜는가짜일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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