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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5일][02월24일][365매일글쓰기] 온달전 에세이 필사


[055][0224][365매일글쓰기] 온달전 에세이 필사

오늘은 글을 쓸 의욕을 잃었다. 그래서 언젠가 쓸 생각이었던 주제에 대한 글감을 필사 한다. 신의가 주제인 삼국사기의 온달전이 똑똑하고 부자인 여자를 만나 성공하는 바보 온달전으로 왜곡되었다. 누가 그랬을까?

<삼국사기, 역사를 배반하는 역사> 225~230페이지, 길진숙, 북드라망

<삼국사기> <열전>에서 가장 유명한 이야기는 온달전이다. ‘현처우부賢妻愚夫의 전형으로 일컬어지는 바보 온달이야기는 동화로, 혹은 남자를 성공시키는 능력 있는 여성들의 신드롬으로 회자된다. 온달 이야기는 남성의 성공은 곧 여성의 성공이라는 등식을 유포하며 여성의 내조를 강조하는 이야기로 우리의 뇌리에 콕 박혀 있다. 그야말로 평강왕(평원왕, 재위 559~590)의 딸은 내조의 여왕의 원조이다. 부자에 능력 있는 여성을 만나 금시발복, 입신출세하는 남성들의 꿈이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해석이라고 할까?

<삼국사기>온달전을 다시 읽어 보자. 꼼꼼하게 읽어 보면 강조점이 다르다. 19세기의 대학자 김택영은 온달전을 조선 오천 년 이래 최고의 명문장 중 한 편으로 꼽은 바 있다. 문체도 문체지만 그 내용은 우리가 알고 있는 바, 환상적인 동화 이야기는 아니다. 얼핏 읽으면 부인을 잘 만나 성공한 남자 이야기인 듯하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온달전을 가난하고 신분도 낮고 바보스런 남자가 신분 높고 돈 많고 똑똑한 여인을 만나 성공한 이야기로 읽는다. 물론 왕실의 공주를 만나 온달은 장군으로 성공했다. 그러나 온달전에서 보여 주는 핵심은 여기에 있지 않다. 주인공은 온달이지만, 이야기 속의 실제 주인공은 평강왕의 공주이다. 공주가 왕실의 결혼 규칙을 깨고 나와 스스로 남편을 선택한 이야기이다.

온달은 액면 그대로 바보가 아니다. 온달은 가난하지만 이미 유명했다. 왕의 귀에 들어갈 정도로 유명했다. 온달은 용모는 여위고 옷이 허름하며 우습게 보였으나 마음은 순박한 사람으로 묘사된다. 어머니를 봉양하는 착한 아들에 마음은 순수한 사람이지만, 허름한 옷차림으로 길거리에 구걸하였기 때문에 사람들이 우습게 보고 바보라 불렀던 것이다. 그러나 마음이 순박하다는 것은 본바탕 그대로 지니고 있는 매우 순수한 청년이라는 의미이다. 가난이나 구걸에도 흔들리지 않고 본바탕을 지니고 있다면 온달 또한 매우 능력이 뛰어난 청년이었음에 틀림없다. 공주는 온달의 품성을 일찌감치 알아본 모양이다.

문제는 왕의 딸이 울보라는 것. 울보 공주가 의미하는 건 무엇일까? 공주는 불만이 많은 소녀이다. 시도 때도 없이 운다. 궁중 생황에 대한 불만족, 채워지지 않는 욕구가 울음으로 표현된 것으로 보인다. 이런 딸에게 왕은 그렇게 울면 사대부의 처가 될 수 없고 바보 온달의 처가 될 수 밖에 없다고 말한다. 왕은 매번 이렇게 말했다.

불만 많은 소녀가 16세의 여인으로 성장한다. 왕은 공주를 고구려 귀족가문 고씨에게 시집보내려 한다. 그런데 공주가 고씨에게 시집가라는 왕의 말을 거역한 것이다. 공주는 시집가라는 아버지의 명령을 거절할 뿐만 아니라, 왕이 신의를 지키지 않는다고 따지기까지 한다. 어릴 때 온달에게 시집가라고 하더니 어찌하여 왕이 그 언약을 지키지 않느냐는 것이다.

필부도 자신이 한 말을 지킨다. 그러니 지존이신 왕이 식언을 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지존에게 농담이란 있을 수 없다. 그러므로 일단 뱉은 말은 지켜야 한다고 당당하게 주장한다. 이 지점이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공주가 온달에게 시집가기 위해 왕에게 희언이란 없다를 물로 늘어질 수 있었던 것은 을 절대적으로 신뢰했던 고대사회의 윤리가 작용했기 때문이리라. 내뱉은 말은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 행동하지 않는 말은 허언이자 식언이다. 고대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윤리는 바로 신의였다.

사실 공주가 이렇게 왕에게 따진 것은 왕실의 법도대로 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공주는 궁중에 불만이 많았다. 아버지의 명령에 따라 살기보다 자신의 인생을 자신이 주도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야말로 주체적이 삶을 원했던 것이다. 공주가 울보가 된 까닭은 이 때문이다. 주체적인 삶의 첫 관문이 바로 결혼, 공주의 혼사가 정해지자 완강하게 저항한 것이다. 왕실에서 정해 준 귀족의 처가 아니라 마음이 맞는 사람의 처로 살기 위해 왕의 명령을 거역할 수밖에 없었던 것. 가난하여 추레하지만 마음만은 올곧고 순수한 온달은 공주가 배필로 맞이하고 싶었던 짝이다. 적어도 정해준 대로가 아니라 내 마음 가는 대로 살고 싶었던 공주는 결국 궁실에서 쫓겨난다.

이야기 전개를 보면 쫓겨난 것이지만, 공주는 궁궐에서의 탈출을 준비한 것처럼 보인다. 공주는 진귀한 금은 팔걸이 수십 개를 손목에 걸고서 대궐문을 나와 홀로 걸었다. 루쉰이 말한 바 있지 않은가. 노라가 집에서 독립하려면, 적어도 생활을 뒷받침할 든든한 돈가방 하나가 준비되어야 한다고. 그렇지 않으면 다시 집으로 돌아가거나, 타락하여 노리개나 노예가 될 수밖에 없다고, 공주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독립해서 살 수 있는 재물을 준비하여 나왔던 것이다.

궁궐에서 나온 공주는 곧바로 온달의 집으로 찾아간다. 가난하고 신분 낮은 온달과 그 어머니는 공주를 받아들일 수 없다. 귀신이나 여우가 아닌 다음에야 이렇게 살결이 희고 고우며, 향기 나는 여인이 이런 미천한 집에 와서 살겠다고 할 리가 만무하지 않은가. 그러나 공주는 굽히지 않는다. 공주가 온달을 만나 한 말은 바로 동심(同心)이다. “예전 사람이 말하기를 한 말의 곡식도 찧어서 함께 먹을 수 있고 한 자의 베도 기워서 같이 입을 수 있다 하였으니 만일 마음만 맞는다고 하면 어찌 꼭 부유하고 고귀해야만 같이 살겠습니까?”

평강왕의 딸이 온달을 찾아온 것은 그런 믿음 때문이다. 공주에게 부부는 신분이나 재산에 의해 맺어지는 관계가 아니라 마음이 합해져야 하는 관계이다. 공주는 온달이 그런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공주는 온달을 만남으로써 서로 믿어 주는 관계, 신의가 있는 부부로서 맺어지고 싶다는 발원을 이루게 된다. 그야말로 동지가 될 수 있는 남편을 찾은 것이다.

뜻이 맞은 공주와 온달. 공주의 지혜로 온달은 재능을 발휘하게 된다. 공주는 온달을 신뢰하고 온달은 공주를 신뢰한다. 공주의 제물은 생활의 기반이 되지만, 재물만으로 온달의 재능이 발휘되는 것은 아니다. 온달이 공주의 말을 믿고 따르며, 더불어 능력을 발휘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으면 성공하기 힘들다. 공주는 재물과 지혜를, 온달은 그에 대한 전폭적인 신뢰와 노력을 보여 준다.

공주는 궁에서 가지고 나온 보석을 팔아서 집안을 일으키고, 온달에게 좋은 말을 사오게 하여 그 말을 준마로 길러 낸다. 처음 말을 살 때에 공주가 온달에게 말하기를 부디 저자 사람의 말을 사지 말고 나랏말로서 병들고 수척하여 버리게 된 것을 고른 다음 값을 치러야 한다하니 온달이 그 말을 따랐다. 공주는 값싸고 좋은 말을 정성스럽게 길렀고, 온달은 이 말을 타고 사냥 기술을 연마했다. 온달은 이 말을 끌고 사냥에 나아가 장수로 성장한다. 장수가 된 온달은 혁혁한 공을 이룬다. 부모의 나라 고구려를 위해 몸을 바치는 장수로 성공한 것이다. 왕은 온달이 뛰어난 장수로 성장하자 사위로 인정한다. 온달의 성공은 궁중을 탈출하여 주체적으로 결혼한 공주의 성공에 다름 아니다.

우리가 주목했던 온달 이야기의 정점은 바로 이 부분이다. 정작 온달을 입전한 김부식은 공주의 결단을 더 강조하고 있는데, 우리들은 바보 같고 가난한 온달의 성공 신화에 눈길을 준다. 사실 이 이야기는 공주의 성공이자 온달의 성공이기도 하다. 공주는 결혼 생활을 아주 주체적으로 독립적으로 이끌고 있다. 온달도 벼락출세한 것이 아니다. 공주 덕분에 능력을 키울 수 있었지만 사냥에 발군의 실력을 드러낸 것은 온달 스스로의 힘이다. 서로를 믿어 주고 끌어주는 관계. 그것이 공주가 꿈꾼 생활 아니었을까? 내가 모든 것을 갖추었는데도 다 갖춘 남자를 만나기 위해 노심초사하는 현대의 독립적이라고 하는 여성들과 사뭇 다른 결혼관을 가지고 있지 않은가? 결혼에서 중요한 것은 사랑도 사랑이지만, 마음을 함께할 수 있는가, 즉 뜻을 함께 할 수 있느냐는 것. 공주와 온달을 맺어 준 열쇠는 바로 이것이었다.

그래서 온달전의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온달은 공주에게 신라에 빼앗긴 고구려의 땅을 찾아 돌아오겠다는 맹세를 하고 아단성 전투에 참여한다. 땅을 되찾지 못하면 돌아오지 않겠다는 굳은 맹세를 던지고 전투에 나아간다. 그러나 온달은 신라군사와 싸우다 화살에 맞아 죽는다. 공주와의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이다. 약속을 지키지 못했기에 공주 곁으로 갈 수 없었던 온달의 관은 움직이지 않는다. 공주가 생사는 결정되었으니 돌아가시라고 서약을 풀어 준 뒤에라야 관이 움직였다.

자신이 뱉은 말에 대한 책임, 신의가 온달을 움직이는 윤리였다. 공주를 떠나지 못해서 관이 요지부동한 것이 아니다. 전쟁터에 나서기 전 공주와 했던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돌아온 데 대한 책임 때문에 관이 움직이지 않은 것이다. 공주가 그 약속을 풀어 주자 비로소 온달은 떠날 수 있었다. 평강왕의 공주는 마음을 나눌 사람을 남편으로 선택했고, 온달은 그런 부인을 위해 죽은 뒤까지 믿음을 지켰다.

글자수 : 3384(공백제외)
원고지 : 22.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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