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4일][02월03일][365매일글쓰기] 가불기
“엄마, 내가 신조어 하나
알려줄까? 방금 엄마가 말한 경우를 가불기라고 해.”
우리 지역에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확진자가 생겼다. 주말 동안 불안한데
어린이집 휴원 안 하냐는 댓글들이 자주 눈에 띄었다. 특히 확진자가 사는 동네의 불안은 극에 달했다. 반면에 맞벌이 부부는 어디에 애를 맡기라는 말이냐며 휴원에 반대하는 댓글도 보였다. 일요일 오후 급하게 공지가 떴다. 어린이집과 유치원을 휴원한다는
내용이었다. 어린이집은 지자체에서 관할하고 유치원은 지방교육청에 관할하기 때문에 지자체에서는 어린이집
휴원 사실만을 공지했다. 당장 댓글에 유치원은 어떻게 하냐는 댓글이 달렸다. 조금 있으니 유치원도 휴원한다는 기사가 떴다. 이 두 사실을 종합한
기사도 떴다. 기사를 살펴보니, 댓글에는 휴원해서 다행이라는
내용과 맞벌이 부부의 애환을 호소하는 내용이 많았다.
어린이집 휴원을 안내하는 공지에는 어쩔 수 없는 경우에는 어린이집에 아이를 보내면 보호를 해주겠다는 내용이 있었다. 유치원쪽은 공지가 공개되지 않았으나, 비슷한 공지가 학부모들에게
전달되었을 듯했다. 문제는 아침이 되자 일어났다. 왜 어린이집과
유치원 통원 버스 운행을 안 하느냐는 것이었다. 애를 보내려는데, 버스가
오지 않는다며 강한 항의를 했다. 월요일 아침 출근 준비로 바쁜 맞벌이 부부의 애환이 담긴 항의였다. 아.... 그러나 어쩌랴! 휴원이기
때문에 그런 것을.
아이와 이 내용에 대해 대화를 했다. 하나의 일을 두고도 다양한 견해가
있을 수밖에 없음을 아이와 나 둘 다 수긍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상반되는 두 의견 사이에서 어떻게 해야
하느냐를 두고 아이와 토론을 했다. 부모와 자식은 닮기 때문일까? 안전이
우선이니 휴원을 해야 한다로 의견이 통일되었다. 그러면 맞벌이 부부의 항의는? “이래도 저래도 욕 얻어먹는 상황이네!” 그러자 아이가 말했다. “그런 경우를 가리키는 신조어가 있어. 알려줄까?” “뭔데?” “가불기!” “과불기?” “아니, 가불기” “그게
뭔데?” “약자인데 정확한 것은 검색해봐야해.”
가불기를 검색했다. 사전이 떴다.
‘가불기다’는 ‘갈기다’의 강원도 방언이란다. “아니, 이거
말고!” <신조어 – 가불기의 뜻>을 클릭했다. 가불기는 “대전액션
게임에서 유래된 용어로 가드.불능.기간(Guard 不能 其間)의 약자라고 한다. 어떤 방어도 못하고 상대방에게 무차별 공격을 당하기만 하는 상태를 뜻한다. 그러니까
매우 억울한 상태인 것이다.
그 예로 등장한 4컷 만화에 빵 터졌다. 어떤 아이가 엄마에게 야단 맞는 상황이 묘사되어 있었다. “엄마
똑바로 쳐다 봐.” 아이가 고개를 들었다. “뭘 잘했다고
고개를 드냐?” “왜 대답이 없어?” “그게....” “지금 어디서 말대꾸야!” 정말 딱 맞는 예시였다. 이 외에 다른 예도 있는데, 여기에 쓰기에는 부적절한 내용이어서
생략하겠다. 궁금하면 검색을!
직장 다닐 때, 간혹 악성 민원인의 전화를 받고는 했다. 몇 명의 상담원을 거쳐도 해결 안되는 민원은 업무담당자에게 연결되고는 했다.
날카로운 목소리로 따지는 내용을 수십 분 들으면서 거기에 맞춰 슬픈 목소리로 “죄송합니다. 저희 실수입니다.”를 적절히 해야만 했다. 상담원들과의 친분이 생기자 처리가 어려운 민원을 종종 연결해주고는 했다. 어떤
고객은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를 상세히 설명해주면, 수긍을 하기도 했다. 때로는 “이제 잘 알았다. 왜
그랬는지 이해가 된다. 내가 화내서 미안했다.”라고 끝나는
경우도 있었다. 이후 상담원들에게 기술적인 문제를 설명하기 어려우면 우리 기술진들에게 돌리라고 이야기했다. 그러나 상담원들은 어쩌다 한번씩만 전화를 연결했다. 왜 그랬을까? 상담원들에게는 자신의 상담처리에 대한 자부심이 강했다. 특히 악성민원을
잘 응대해내는 것에 대한 자부심은 더 컸다. 자신들이 모르는 내용을 적극적으로 물어보기도 하고 관련자료를
받아서 공부도 했다. 교육이 필요할 때는 교육을 받기도 했다. 나는
상담원들의 업무 태도를 보고 크게 감명받았었다. 자기 자리에서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새삼
느꼈었고, 상담원들에게 존경심을 품게 되었다. 악성 민원은
한 번도 3번 이내에서 상담이 끝나지 않는다. 적어도 10번은 상담을 해야만 한다. 어떨 때는 수십 번이 되기도 한다. 무차별적인 폭언을 묵묵히 견디며 친절하게 응대하는 상담원들이야말로 가불기를 당하고 있었다.
글자수 : 1626자(공백제외)
원고지 : 10.1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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