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4일][01월04일][365매일글쓰기] 오브라이언
어제 조지 오웰의 소설 <1984>를 완독하고 온라인 토론까지
마친 후, 꿈을 꾸었다. 소설 속의 한 장면처럼 소름끼치도록
냉막한 장면이 나타났다. 나를 둘러싼 환경이 갑작스럽게 텅 빈 공간으로 바뀐 것이다. 소스라치게 놀라 서재로 뛰어가 보았다. 다행히 그곳은 원래 모습
그대로였다. 서재에서 몸을 돌려 나오자마자, 한순간에 휘황찬란한
공간으로 바뀌어져 있었다. 어두운 창밖을 보자, 건너편 건물에
감시자가 보였다. 그 위로는 별이 빛나는 밤 하늘도 보였다. 꿈에서
깨어난 후, 꿈 속에서 겪은 두 공간은 각기 윈스턴의 아파트와 오브라이언의 저택이였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궁핍하고 감시당하는 외부당원 윈스턴과 부유하면서도 감시당하는 내부당원 오브라이언은 다르지만
같다.
바로 그때 그들의 눈이 마주쳤다. 윈스턴–그렇다. 그는 알았다-은
오브라이언이 자기와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위스턴의 의도가 확실히 전해진 것이다. 마치 그들의 두 마음의 창문이 열리고 서로의 생각이 상대방의 눈으로 전달된 것 같았다. <난 자네 편이야.> 오브라이언이 그에게 말하는 것 같았다. <난 자네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정확히 알고 있네. 무엇을
경멸하고 증오하고 싫어하고 있는지 모두 다 알고 있어. 하지만 걱정하지 말게. 난 자네 편이니까!> 그러고 난 뒤 오브라이넌에게서 번쩍이는
지성이 사라졌고 얼굴은 다른 사람들처럼 알 수 없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 1부 1장 중에서
오브라이언는 7년 동안이나 윈스턴을 지켜봐왔었다. 감시한 것이다. 오브라이언은 내부당원이기 때문에, 그 또한 정신 깊숙한 곳까지 감시당하고 있을 것이다. 오브라이언도
윈스턴도 당이 항상 옳도록 과거의 기록을 조작하는 일을 한다. 윈스턴은 기록을 수정하면서도 진실을 기억하려고
노력한다. 그 과정에서 윈스턴은 당을 혐오하게 된다. 일탈을
꿈꾼다. 오브라이언은 어떠한가? 오브라이언은 윈스턴을 마지막
남은 인간다운 인간이라고 말한다. 왜? 오브라이언 안에 남아있던
마지막 인간성이 윈스턴이었기 때문이지 않을까? 당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벌이는 일을 하려면 정신력이
강하면서도 유연해야 한다. 끊임없이 사실을 왜곡면서도 자신이 만든 왜곡을 믿어야 하기 때문이다. 어제는 A가 적이었지만, 오늘은
A가 친구가 된다고 상상해 보자. 그러면 A는 어제도 친구였고, 오늘도 친구였다고 믿어야 한다. 끊임없이 반복되는 이 과정을 정신이 견뎌낼 수 있을까?
완전한 의미의 정통성은 마치 곡예사가 자신의 몸을 자유롭게 하듯이 정신 과정을 완벽하게 통제하는 것을 요구한다. <중략> 검은 것이 흰 것이라 믿고, 더욱이 검은 것이 흰 것이라고 더욱 분명히 알고 있어 전에 반대로 믿었던 사실을 까맣게 잊어버리는 능력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렇게 하려면 과거의 지속적인 개조가 필요한데, 그것은
나머지 모두를 포함하는, 신어로 이중 사고라 하는 사고 체계에 의해 가능하다. – 2부 9장 중에서
이중사고. 오브라이언 또한 이중사고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그래서 7년 간이나 윈스턴을 지켜 본 것이다. 그에게 윈스턴은 흥미로운 존재였다. 빅 브라더를 증오하지만, 사랑하는 척 속였다. 진실을 기억하면서도 진실을 왜곡하는 일에 온
마음 다했다. 끊임없이 텔레스크린을 의식하면서 자신의 심장박동까지 속였다. 오브라이언 또한 그러지 않았을까? 윈스턴이 오브라이언에게 당을 전복시킬
계획이라고 털어놓는다. 오브라이언 또한 그러고 싶었을 것이다.
문이 열리고 오브라이언이 들어왔다. 윈스턴은 깜짝 놀라 일어섰다. 오브라이언을 본 충격이 너무 커서 주변 상황을 모두 망각해 버렸다. 수년
만에 처음으로 텔레스크린의 존재까지 잊어버렸다. “당신도 체포되었군요!”
그가 소리쳤다. “붙잡힌 지 오래되었네.” 오브라이언은
부드러우면서도 조금은 유감스러운 듯 조소 어린 투로 말했다. – 3부 1장 중에서
윈스턴이 체포되었다. 오브라이언은 자기 자신도 붙잡힌 지 오래되었다고
말한다. 사상경찰이 되려면 어떤 절차를 거쳐야 할까? 당이
요구하는 일들은 모두 인간의 본성을 거슬리는 일들이다. 인간성을 없애야만 받아들일 수 있다. 오브라이언 또한 101호에서 윈스턴과 동일한 일을 당하지 않았을까? 101호에서 인간성을 말살당했지만, 세월이 흐르자 꿈툴꿈틀 되살아난
인간성 때문에 이중사고에 어려움을 겪었을 것이다. 그 때 윈스턴을 발견했으리라. 7년간 윈스턴을 지켜보며, 자기 자신과 동일 시 해왔을 것이다. 그런 이유로 두 사람은 서로를 이해할 수 있었다.
왜 우리가 자네를 이곳에 데려왔는지 말해 줄까? 치료를 해주기
위해서야! 정상으로 만들기 위해서지! <중략> 우리의 관심은 오직 사상이야. 우리는 적을 없애 버릴 뿐 아니라
개조까지 하고 있어. – 3부 2장 중에서
윈스턴이 균형을 깨뜨렸다. 줄리아에게 진심을 털어놨고 당을 전복시키기
위한 행동을 하려고 했다. 오브라이언으로는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는 상태가 된 것이다. 오브라이언이 치료라고 부르는 것은 세뇌이다. 아니, 세뇌를 넘어선 정신 개조이다. 윈스턴을 학습-적응-수용시키는 단계는 오브라이언 스스로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었을
것이다. 오브라이언 또한 스스로를 다시 세뇌시켰다.
일기 쓴 것 기억나지. 내가 적어도 자네를 이해하고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내가 친구든 적이든 아무 상관없다고 쓴 것 말이야. 자네 말이 맞았어. 나는 자네와 이야기하는 게 즐거워. 자네의 그 정신에 호감이 가. 자네가 제정신이 아니라는 것만 빼고는 내 정신을 닮았어. – 3부
2장 중에서
두 사람의 정신은 같았다. 윈스턴이 줄리아를 사귀면서 제정신이 아니게
된 것이다. 줄리아는 어떤 존재인가? 윈스턴이 스스로 가면을
벗고 인간성을 되찾도록 만들었다. 그것이 줄리아의 역할이었다. 따라서
줄리아는 인간성, 그 자체였다. 그것을 오브라이언은 참을
수 없었다. 윈스턴과의 연결은 사라졌다. 윈스턴은 외쳤다. “줄리아! 줄리아! 줄리아! 내 사랑 줄리아!” 윈스턴은 끝까지 인간성을 버리지 않았다. 오브라이언은 윈스턴에게 마지막 남은 인간성인 줄리아에 대한 사랑을 파괴하기로 한다.
“이것(고문)을 줄리아에게 하시오! 줄리아에게 말이오! 내게 하지 말고 줄리아에게! 당신들이 그녀에게 무슨 짓을 한들 난
괜찮소. 그녀의 얼굴을 찢고, 뼈가 드러나도록 살갗을 벗겨도
괜찮소. 난 안 돼요! 줄리아에게! 난 안 된단 말요!” – 3부 5장
중에서
오브라이언은 성공했다. 오브라이언에 의해, 윈스턴에게 인간다움은 모두 사라졌다. 물론 오브라이언 자신에게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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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고지 : 15.40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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