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일][12월30일][백일글쓰기2] 지극히
상대적인
중학생 때였다. 교내 사생대회가 있었다. 나는 짝꿍과 함께 학교 건물 앞 화단에 자리 잡았다. 학교가 산
중턱에 있어서 건너편의 산들이 겹쳐진 풍경이 보였다. 아마도 때는 가을이었나보다. 나는 짝꿍과 떠들면서 앉으며 산들을 바라보았다. 연필로 스케치를
했다. 그리고 물감을 쓱쓱 펴발랐다.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하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게으름을 피우지도 않았다. 그냥 산을 그렸다. 내 짝꿍도 나와 비슷한 속도로 그리고 있었다. 짝꿍도 물감을 들었다. 응? 물감을
칠하는 방식이 나와 다른데? 짝꿍, 너는 도대체 누구냐?
평범한 나의 그림은 이러했다. 묽은 파란색 물감으로 하늘을 칠했다. 산은 녹색으로 칠했다. 그게 끝이었다. 그냥저냥 산을 그렸을 뿐이다. 그런데 내 짝꿍은 똑같은 산을 단풍이
물든 산으로 바꾸었다. 붓의 옆면을 이용해 다양한 색으로 점들을 찍으니, 알록달록한 산이 나왔다. 입을 헤벌리고 친구의 그림을 보고 또 봤다. 와~ 멋지다.
잠시 후, 내 주변이 시끌벅적해졌다.
교장 선생님이 내빈들과 함께 사생대회를 구경하다가 짝꿍 뒤에 멈춰섰기 때문이다. “오, 잘 그리는데!” “표현력이 좋아!”
등의 감탄사들이 튀어나왔다. 글쵸? 저두 동감입니다. 고개를 끄덕이며 속으로 맞장구를 쳤다. 어? 잠깐만! 내 그림은 형편 없는데!
내 그림을 의식한 순간, 고개가 저절로 숙여졌다. 내
두 팔로 그림을 가렸다. 이제는 학생들까지 몰려들었다. 슬그머니
그림을 가슴에 안고 빠져나왔다. 뒤를 돌아보니 인산인해가 따로 없다.
그날 이후로 내 짝꿍에 대한 기억이 없다. 그러나 그날 이후 나는
달라졌다. 내가 잘하는 것을 더 잘하기로 한 것이다. 짝꿍의
멋진 그림처럼 나도 멋진 뭔가를 이루어내고 싶었다. 수업도 열심히 듣고, 쉬는 시간을 이용해 복습도 했다. 매일 밤 9시까지 이어지는 자율학습 시간도 허투루 보내지 않고 초집중해서 공부를 했다. 어쩌겠나! 잘하는 것이 공부밖에 없으니, 더 잘해내야 하지 않겠는가!
나는 아직도 짝꿍의 단풍으로 물든 산 그림을 떠올리고는 한다. 한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방법으로 산을 그린 친구의 대담한 표현에 되새기고는 한다.
글자수 : 820자(공백제외)
원고지 : 5.38장
#연금술사 #백일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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