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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5일][12월04일] 나는야 허당


[095][1204][백일글쓰기2] 나는야 허당

간혹 사람들이 나에게 의외라고들 한다. 왜냐하면 종종 그들의 생각과는 정반대의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나는 잘 넘어진다. 잘 걸어가다가 삐끗하기도 하고 꽈당하고 넘어지기도 한다. 걸을 때는 걷은 것에만 집중하고 앞을 잘 봐야 한다. 그런데 하던 생각을 이어가거나 뜬금없는 생각이 떠오르면 거기에 빠져든다. 앞을 보고는 있지만 보지 않으니 턱이나 계단을 보지 못한다. 그런 이유로 꽈당하고 넘어진다. 넘어지면 창피하기는 하지만, 이미 넘어진 걸 어떻게 하겠는가. 그냥 일어나서 손바닥과 무릎을 털뿐이다.

나는 잘 부딪친다. 마음이 바빠서 성큼성큼 걷을 때가 있다, 빠른 속도로 걸을 때는 주위를 잘 살피고 끊임없이 경로 확인을 해야만 한다. 이곳 저곳을 잘 확인하면 사람이 많아도 절대로 부딪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딴 생각에 빠지는 것이다. 재빨리 움직이는 순간에 어떤 생각에 사로잡힐 때가 있다. 그래서 벽에, 책상 모서리에, 문에 부딪친다. 그리고는 또 순식간에 잊어버린다. 나중에 멍을 발견하고는 간혹 이런 생각을 하기도 한다. “저절로 멍이 드나?”

나는 잘 흘린다. 아주 어렸을 때, 외출 준비를 하고 있었다. 손수건을 가지고 나가고 싶었다. 손에 꼭 쥐고 고집을 부렸다. 나의 고집에 진 엄마는 그대로 외출했다. 한참을 가다 보니, 손에 꼭 쥐고 있던 손수건이 온데간데 없다. 분명 손에 꼭 쥐고 있었는데 어디로 간 걸까? 어른이 된 후로도 손에 있던 물건이 홀연히 사라지는 일을 몇 번이나 경험했다. 그래서 그 뒤로는 꼭 가방을 매고 다닌다. 꼭 매는 가방이어야만 한다. 손에 드는 가방도 몇 번이나 두고 온 적이 있기 때문이다. 한참을 생각에 빠져있다가, “아차!”하고 손을 보면 가방이 없다. “?” 하면서 몸 주변을 보면, 다행히 내 어깨에 가방이 매어져 있다. 그러니까 가방은 꼭 매는 가방이어야만 한다.

나는 자주 깜빡한다. 국이나 찌개를 데우다가 여러 번 냄비를 태워먹었다. 5분을 데우려고 생각했었는데, 데우는 동안 그 앞에서 지키지 않으면 다른 일을 하다가 시간의 흐름을 잊고는 한다. 한 번은 김치찌개가 졸은 냄새가 나길래, 윗집이나 아랫집에서 가스불 위에 국 냄비를 올려두고 잊었나보다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 냄비가 우리집 냄비였다. 그 이후로는 국을 데울 때, 물을 끓일 때, 빨래를 삶을 때 반드시 핸드폰 타이머를 설정한다. 그래야 가스불의 시간의 흐름에 맞출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때로는 나의 시간과 주변의 시간의 속도가 다르다는 느낌이 든다. 내 시간이 좀 더 천천히 흐르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나는 무지하다. 한 번은 다른 도시로 이사간 친구가 찾아왔다. 그 친구의 취향은 무척 멋져서 항상 아름다운 모습을 유지했다. 우아하고 절제된 모습이었다. 그런데 그 날은 그 친구가 비닐 백을 들고 나왔다. 나는 생각했다. 그 친구가 어느 매장에서 비싼 물건을 샀고, 그 매장에서 그 비싼 물건을 담아 준 비닐 백일 것이리라. 요즘 이런 패션이 유행인가? 어떤 매장에서 이런 행사를 하나? 무척 궁금했지만, 차마 묻지는 못하고 대화를 했다. 대화가 끝나갈 무렵, 다른 친구가 그 비닐 백에 대해 물었다. 나도 궁금했던 차라 귀를 쫑긋하고 들었다. 아이고! 그 비닐 백은 비닐로 만든 명품백이었다. 거의 200만원에 가까운 가격이었다. 나는 순간 푸하하 웃음을 터트리며 친구들에게 방금 전까지 그 백에 대해 생각했던 내용을 말해주었다. 나의 무지로 인해 우리는 한바탕 배꼽이 빠지도록 웃을 수 있었다. 실제로 나는 모른 것이 많다. 그래서 항상 이것저것이 궁금하다.

만약 길 위에서 잘 걸어가다 휘청이거나 손에 든 물건을 떨어뜨리고 발을 동동거리는 사람이 있다면, 어쩌면 그 사람이 바로 저일 겁니다.

글자수 : 1381(공백제외)
원고지 : 9.81
#연금술사 #백일글쓰기 #숭례문학당 #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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