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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6일][11월25일] 외국어 수집


[086][1125][백일글쓰기2] 외국어 수집

학창시절에 나는 이과생이었다. 잘하는 과목도 좋아하는 과목도 모두 이과 과목이었다. 영어보다는 수학문제 푸는 것이 재미있었고, 생물, 지리, 물리, 화학을 공부하면 시간이 가는 줄 몰랐다. 그렇다고 역사나 사회를 싫어했던 것은 아니었다. 싫어했던 과목은 바로 영어였다. 도저히 이해 안가는 과목이었다. 이렇게 해봐도 저렇게 해봐도 정이 붙지를 않으니 영어에 투여되는 공부시간은 수학보다 훨씬 적었다. 그러다 보니 영어는 시험에서 적정한 점수를 받을 만큼만 공부하고는 했다.

30대초반, 5일 근무가 도입되면서 나는 멘붕에 빠졌다. 6일근무일 때는 토요일 밤 11시까지 꽉꽉 채워서 일하고 일요일은 부족한 잠을 자면 되었다. 사무실에서 온갖 자료를 읽고 분석하는 것이 나의 일이자 나의 취미였다. 그런데 토요일이 갑자기 허공에 떠버린 것이다. 처음에는 토요일 조조 영화를 보러 다녔다. 마치 출근하듯이 영화를 보고, 서점에 가고, 윈도우 쇼핑을 했다. 몇 번하고 나니 재미가 없어서 더는 하기 싫었다. 그래서 영어공부를 시작했다. ~토 새벽반에 등록했다. 새벽반을 듣고 사무실에 오면 820. 동료들이 출근할 때까지 EBS라디오 영어회화 받아쓰기를 했다. 받아쓰기가 끝날 즈음에 동료들이 오면 봉지 커피를 함께 마시고, 근무를 시작하고는 했다. 매일매일 게다가 토요일까지 빈 시간을 영어로 채우는 생활을 몇 년간 했는데, 의외로 엄청 재미있었다.

학창시절의 나는 영어공부법을 제대로 몰랐던 것이다. 30대초반에 다시 공부하기 시작하면서 유학을 준비하는 커뮤니티에서 수많은 글을 읽고 유학준비생들의 영어공부법을 긁어모았다. 그 중에서 나에게 적합한 방법을 골라 내었다. 통문장 암기, 어휘습득, 문법은 사전 찾듯이, 원서 읽기를 해보니, 공부가 수월했다. 무리하지 않고 차근차근 인내심을 가지니, 영어는 더이상 지루하지도 어렵지도 않았다.

40대 중반, 중국어를 다시 시작했다. 30대 초반 몇 개월 공부했던 즐거운 기억으로 중국어를 시작했다. 천천히 몇 년에 걸쳐서 입문, 초급, 초중급, 중급 수준으로 공부를 해나갔다. 그런데 중급에서 다다르자 헛바퀴를 도는 느낌이 들었다. 뭔가 이상했다.

그 사이에 일본어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두 언어를 동시에 배우다 보니, 두 언어를 비교할 수 있어서 좋았다. 한 단어에 두 언어 단어를 떠올리고, 한 문장을 두 언어의 문장으로 떠올리면 무척 재미있었다. 일본어도 천천히 몇 년에 걸쳐서 입문, 초급, 초중급 수준을 밟아갔다. 중급에 이르자 중국어처럼 헛바퀴를 도는 느낌이 들었다. ? 이게 뭐지?

원인의 하나는 너무 천천히 나가다 보니, 앞 단계에서 배운 것을 대부분 잊어버리는 것이었다. 또 다른 원인은 어휘였다. 수 년간 배운 어휘를 다 외우고 있어야 했는데, 잊어버렸기 때문이었다. 망각이 문제였다. 그래서 방송대 중어중문학과에 편입을 했다. 인터넷으로 강의를 들을 수 있어서 편리하기도 했고, 방송대를 다녀본 사람들이 한결같이 졸업하기 쉽지 않다고 했기 때문이었다. 졸업하기 쉽지 않다는 것은 제대로 된 교육과정이 있다는 뜻일 터였다. 방송대에서 공부하면서 공부가 더 진보하고 더 넓어졌다. 방송대는 제대로 된 빡센 교육과정을 제공했다. 그래도 과목 하나하나가 재미있어서, 힘들어도 신이 났다.

2020년이면 중국어 공부는 어느 정도 마무리가 될 듯하다. 그렇다고 중국어를 마스터한다는 의미는 절대 아니다. 겨우 기틀을 다지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이 기틀 위에 원서도 읽고, 뉴스도 듣고, 신문도 읽는 후처리가 수년간 혹은 수십년간 지속되어야만 한다.

중국어가 일단락되면 일본어를 공부해볼 생각이었다. 그런데 요즘 일본이 하는 행태를 보면 정이 싹~ 떨어진다. 미운데 그들의 언어와 문화를 공부할 수 있을까? 그래서 일본어는 혼자 복습할까 생각 중이다. 복습을 마치고 더 공부할지 여부를 결정지을 생각이다. 그 사이에 러시아어가 나의 호기심을 끌었다. 러시아어는 마치 외계어 같다. 알파벳부터 신기하다. 다른 한편으로는 몇 년 전에 여행을 가본 적이 있는 베트남어도 호기심을 끈다. 몸에서 울려 나오는 듯한 영롱한 발음에 끌린다. 한편으로는 영어 다음으로 많이 쓰이고 있다는 스페인어도 배워보고 싶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노라면, 내 자신에게 웃음이 난다. 20대까지 영어때문에 고통스러워하던 사람은 어디로 갔을까? 왜 외국어 따위를 공부해야 하냐고 분통을 터뜨린 사람은 어디로 갔나? 그 사람은 사라지고 여기에는 외국어를 수집하듯이 배우고 싶어하는 사람만 남았다.

글자수 : 1710(공백제외)
원고지 : 10.85

#연금술사 #백일글쓰기 #숭례문학당 #외국어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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