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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4일][11월23일] 염따 후드티와 王朔 왕숴의 动物凶猛 사나운 동물


[084][1123][백일글쓰기2] 염따 후드티와 王朔 왕숴의 物凶猛 사나운 동물

그냥 까맣고 평범한 티이고 후드인데?” “티셔츠는 순면이고, 후드는 뒷면에 염따가 접촉사고 낸 더 콰이엇 차 사진이 있어.” 그리하여 염따의 티셔츠와 후드를 구매했었다. 그게 언제적 이야기 인가? 105일이었다. 주문한지 한 달 만에 티셔츠가 도착했다. 아이는 그 티셔츠를 보물처럼 소중하게 다룬다. 세탁 바구니에 넣을 때는 꼭 뒤집어서 넣어두었다.

그리고 거의 두 달 만에 후드티가 도착했다. 온통 까맣다. 후드티가 도착하자마자 꺼내서 펼친 후 사진을 찍어 아이에게 보냈다. 바로 응답이 왔다. 포장이 어떻게 되어 있었냐고 한다. 그래서 포장지를 찍어서 보내줬다. “, 그냥 평범한 비닐 포장이야. 세탁할까?” 물론 아이의 소중한 후드이니 단독세탁을 할 생각이었다. “뒤집어서 세탁 부탁이라고 답신이 왔다. 후드 뒷면에 박혀있는 사진에 흠집이 가면 안되니까. 뒤집어서 중성세제로 단독세탁을 해주었다.

이번 주에는 1990년대 중반의 중국소설 <物凶猛 사나운 동물>을 몇 페이지 읽었다. 소설가 王朔 왕숴는 중국의 인기 통속소설 작가이다. 얼마나 인기가 좋은지 화보집까지 있단다. 소설가의 화보집은 상당히 낯설다. 그는 문화대혁명(1966~1976)이 끝나갈 무렵 중학생이었다. 지독했던 10년 문혁으로 사회는 상당히 피폐해져 있었다. 어른들은 사상비평을 하러 몰려다녔다. 이 과정에서 상당수의 지식인들이 죽임을 당했다. 문화대혁명의 선두에 섰던 십대후반, 이십대의 젊은이들은 중국곳곳에 파견나가 인민들을 지도한다는 명목 하에 감시를 했다. 그리하여 15세의 학생들이 북경 거리를 차지했다. 배급사회인지라 상점도 썰렁했고, 직장도 학교도 제 기능을 하지 못했다. 출근 시간인데도 거리가 텅 비어 있을 정도였다. 학교에서는 학생들이 교사를 비평했다. 지식은 쓸모 없는 것으로 취급을 받았다.. 15세 학생의 꿈은 입대하는 것이었다. 군대에 들어가 전쟁터에서 신나게 총을 쏘고는 공을 세워 전쟁 영웅이 되는 것이 꿈이었다. 소설가의 자전적 소설인 <物凶猛 사나운 동물>에는 기성세대에 대한 비판과 조소가 가득하다. 어른들은 미래를 위해 학교에서 공부하라고 하지만, 아이들은 문화대혁명을 통해 지식은 불필요한 것임을 체험했기 때문에 공부에 뜻이 없었다. 실제로 지식인들은 매일 광장 한 복판에 팻말을 걸고 세워져 비판받다 죽어갔다.

그 아이들이 커서 청년이 되었다. 개혁개방이후, 중국 곳곳으로 파견되었던 지식 청년들에게 대학의 문을 열어주었다. 공부할 의지가 있는 이들은 대학에 들어갔고, 졸업 후에 사회 곳곳에서 개혁개방에 동참했다. 그래도 이들의 가슴에 뚫린 구멍은 아무도 채워주지 못했다. 기성 세대와의 단절된 채로 기성세대를 거부하는 청년 세대들은 일탈을 꿈꿨다. 그래서 대중소설, 통속소설이 각광받았다. 그들에게 사회 혁명은 먼 이야기였던 것이다.

<物凶猛 사나운 동물>의 몇 페이지를 읽으면서, 50대인 나와 10대인 아이를 떠올렸다. 내가 살아온 세월을 아이는 모른다. 21세기 초에 태어난 아이가 느끼는 세상은 나의 세상과 확연히 다르다. 아이에게 엄마가 자라난 시대를 이야기해주면, 마치 내가 어린 시절에 들었던 어른들의 보릿고개를 듣는 것과 같을 것이다. 너무나 동떨어져서 실감은 커녕 그런 일이 있었구나 정도의 고개 끄덕임으로 그칠 것이다. 21세기에 태어난 세대에게 20세기의 이야기는 너무 먼 이야기인 것이다.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 중에 다수는 20세기를 겪었다. 그 강렬했던 20세기의 사건사고에 대한 경험은 몸에 각인되어버렸다. 그래서 20세기를 떨쳐내지 못한다. 항상 20세기를 그리워하며 향수에 젖는다. 하지만 나에게 20세기는 아픔과 슬픔의 시대였다. 공포의 시대였다. 나는 다시는 그런 일들을 겪고 싶지않다. 21세기는 밝고 희망찬 시대이다. 2007년에 등장한 스마트폰으로 인한 대변혁과 같은 일들이 줄줄이 일어날 것이다. 우리의 생활은 엄청난 변화를 겪을 것이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21세기의 세상에서는 21세기식의 사고를 해야만 한다. 21세기를 살면서 20세기식 사고를 한다면 부조화가 일어나서 문제를 발생시킨다. 변화를 수용하지 못하고 저항하면, 언젠가는 누적된 변화에 압도되어 질식하게 되어버릴 것이다. 그러므로 조금씩 조금씩 밀려드는 변화에 순응하면서 받아들여만 한다.

사람들은 변화를 싫어한다. 항상 지금과 같기를 바란다. 그래서 자꾸만 옛날을 이야기한다. 청년세대들은 옛날을 모른다. 그들에게 중요한 순간은 바로 지금이다. 바로 지금 만족스럽고 행복해야만 한다. 그런데 어른들은 자꾸 과거를 이야기하고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하라고 한다. 만약 미래가 예측 가능하면, 그 미래의 행복을 기대해 볼 수도 있겠다. 하지만 21세기의 매순간은 휙휙 변하고 있기 때문에 미래를 예측할 수가 없다. 20세기에 각광받던 직업이 21세기에는 별로 일수도 있다. 21세기에는 20세기는 없었던 새로운 직업이 등장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사회는 20세기의 직업에만 관심을 갖는다. 어른들은 20세기가 너무나 좋은 나머지, 아이들에게 20세기 직업에 대해서만 말한다. 21세기에 태어난 아이들이 과연 어른들의 20세기 직업관에 공감할까?

2005년 유튜브가 처음 등장했다. 당시에는 별 볼일 없었다. 이동통신 기술의 발달로 인해 통신비용이 저렴해지면서 유튜브는 급성장했다. 2005년의 그 누가 유튜버, 즉 인플루언서라는 직업에 대해 신경을 썼겠는가? 2019년 현재 유튜버는 각광받는 직업 중에 하나가 되었다. 20세기에서는 컴퓨터 게임을 하면 어른들은 공부는 안하고 헛짓한다고 했다. 그러나 지금은 e스포츠로 각광받고있다. 20세기에는 싸이월드와 같은 블로그 활동을 하면 관심을 받기 위한 헛된 행동이라고 했다. 2019년에는 잘 가꾸어진 블로그는 돈을 벌어다 준다. 20세기에는 할리퀸과 같은 통속소설을 읽으면, 한심하게 보는 시각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무명작가가 쓴 인터넷 통속소설에 독자들은 코인을 던진다. 인터넷에서 인기가 좋으면 출판도 한다. 이런 세상에 사는 아이들이 과연 어른들의 20세기 직업에 관심을 가질까?

만약 부모라면, 아이의 미래에 대해 함부로 재단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잘못된 인도로 아이와 갈등에 빠지거나 아이의 미래를 망칠 수도 있다. 아이들은 아이들 자신의 시각으로 이 세상을 바라보며 판단을 내린다. 물론 어리기 때문에 그 판단이 미숙하다. 그래도 어쩌면 21세기에 태어난 아이들이 부모보다 더 정확하게 21세기를 느끼고 판단하고 있지 않을까?

글자수 : 2488(공백제외)
원고지 : 15

#연금술사 #백일글쓰기 #숭례문학당 #21세기 #염따후드티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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