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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2일][11월21일] 그 시절, 짠내 나는 직장맘의 일상


[082][1121][백일글쓰기2] 그 시절, 짠내 나는 직장맘의 일상

한 마디로 짠내 나는 생활이었다. 집에서 사무실까지 최소 1시간 40분 걸렸다. 회사에서는 920분 전까지 오라고 성화였다. 허겁지겁 준비하고 집에서 뛰쳐나가 버스를 타고 지하철역에서 내렸다. 출근시간대라서 사람에 밀려 계단을 오르고, 교통카드를 찍고, 다시 계단을 내려간다. 플랫폼은 이미 사람들로 꽉 차있다. 환승하기 쉬운 차칸의 줄은 더 길다. 그래도 환승시간을 줄이려면 긴 줄의 끝에 서야만 했다. 매일 서는 자리, 매일 타는 지하철칸 그리고 매일 있던 지하철 치한. 흡사 짐짝처렴 밀착된 사람들 사이에서 치한은 재주도 좋았다. 항상 여성 뒤에 바싹 붙어서 못된 짓을 했다. 어떤 여성은 얼굴이 빨개진 채 피했고, 어떤 여성은 대놓고 짜증을 냈다. 그래도 그 치한은 매일 당당하게 동일한 짓을 해댔다. 당하는 사람 이외에 그 누구도 뭐라 하지 않았다. 다들 너무 힘들어서 끼어들 기력이 없어 보였다. 여자인 나는? 나는 무서워서 입도 뻥긋 못했다.-참고로 덧붙이자면, 언젠가 한 번 어떤 남자분이 치한에게 하지말라고 큰 소리로 항의를 했다. 그랬더니 그 치한은 적반하장격으로 내가 뭘 했다고 그러냐, 생사람 잡지말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치며 난동을 부렸다환승역에 도착해서 사람에 떠밀려 내리고 다시 떠밀려서 가파른 계단을 내려갔다. 펭귄의 행진처럼 느릿느릿 꾸물꾸물 전진만 했다. 환승 플랫폼에도 사람들이 넘쳐났다. 매일 같은 시간, 매일 같은 지하철, 매일 같은 칸에 올라서면 앞뒤좌우로 자주 보던 사람들이 서있다. 다시 짐짝처럼 수송된다. 내려야 할 역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우르르 내렸다. 사람에 떠밀려 계단을 올라가고 차례차례 느릿느릿 교통카드를 찍고 출구 이곳저곳으로 흩어진다. 정말 짠내나는 출근길이었다.

아침에는 남편이 아이를 시댁에 맡기고 저녁에는 내가 아이를 시댁에서 데려와야만 했다. 엄마를 기다리는 아이를 위해서 정시퇴근해야만 했다. 그래서 눈코뜰새 없이 전력을 다해 일했다. 그래도 일은 넘쳐났다. 해가 지기 전까지 이어지는 수많은 회의 때문이었다. 아이가 태어나기 전에는 6시가 되면 구내 식당으로 저녁을 먹으려 갔었다. 저녁시간의 시작은 퇴근시간이라고 생각해서 6시에 짐을 싸서 퇴근했었다. 그러자 곧바로 피드백이 왔다. 우리 회사는 연봉에 점심 식사시간도 포함되어 있으니 정시 퇴근은 7시란다. 그래서 7시까지 맹렬히 일했다. 아이를 위해 일찍 퇴근하려면 잔업은 집에 가서 해야만 했다. 저녁 식사도 하지 못한 채 지하철을 타고 거꾸로 여정을 시작한다. 그래도 아침보다는 사람이 적어서 숨통이 틔였다. 하지만 퇴근시간에는 어김없이 큰 소리로 싸우는 소리가 들린다. 자리다툼이다. 지하철을 탄 사람들은 남녀노소할 것 없이 모두 피곤한 상태였다. 당시에는 지하철 자리 양보가 미덕이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미덕이 강요로 변하면서 다툼이 일어났다. 큰 소리로 다투어도 그 누구도 거들지 않았다. 다들 너무 피곤했고, 그 싸움에 끼어들어봤자 해답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정말 짠내나는 퇴근길이었다.

지하철에서 내려 버스를 타고 아이에게 간다. 흔들리는 버스 안에서 버스 천장을 바라보며 크게 호흡을 해본다. 계단을 뛰어올라 아이를 부르면, 아이는 엄마를 향해 활짝 웃으면서 달려온다. 하루의 피로가 싹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이제부터는 짠내 대신 행복이 들어선다.

아이와 집까지 가는 20분 동안 두런두런 대화를 한다. 노트북과 서류가 든 무거운 가방을 어깨에 매고 아이를 안고 집으로 나는 듯이 들어간다. 함께 손발을 씻고, 아이와 함께 노래도 부르고 장난감을 가지고 논다. 10시부터 아이를 재우지만, 아이는 엄마와 더 놀고 싶어한다. 겨우 11시에 잠이 든다. 아이 옆에서 아침까지 자고 싶었다.

하지만 밀린 일이 있다. 낮 동안 회의 때문에 하지 못한 일을 오늘안으로 하지 못하면 일이 지연된다. 아이를 키우는 직장맘에게 가장 큰 치욕은 그럴거면 집에서 애나 보라는 소리를 듣는 것이다. 그 소리는 정말로 듣기 싫다. 그래서 일을 하기 시작한다. 발표자료, 업무보고서, 업무계획, 업무평가, 시스템 규격서, 시스템 매뉴얼, 시험계획서, 시험절차, 시험결과보고서, 구매요청서, 업체평가서, 기술동향보고서, 규격분석, 민원분석, 민원처리보고서, 장애분석, 장애처리보고서, 업무협조요청서, 업무협조결과보고서 등등등. 각종 문서 작성을 끝내고 팀장에게 차례차례 메일로 보내고 노트북을 끈다. 새벽 2. 어떨 때는 새벽 3. 내일을 위해 잠은 자야만 한다. 아이 옆에 누워 잠이 든다.

아침이 되면 남편 표 알람에 벌떡 일어나 출근 준비를 한다. 시무룩한 아이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현관문을 닫는다. 다시 짠내 나는 시간이 시작된다.

글자수 : 1685(공백제외)
원고지 : 10.9

#연금술사 #백일글쓰기 #숭례문학당 #그때그시절 #짠내났던출퇴근길 #그시절의직장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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