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5일][11월14일][백일글쓰기2] 지나친
공부는 몸살을 부르고
공부에 몰두한 나머지 몸살이 나고 말았다. 어떤 일에 지나치게 몰두하는
것은 오랜 지병이다. 속속들이 파악하지 못할까봐 전전긍긍하며 좌불안석하다가 밥 때를 놓치고 잠도 자는
둥 마는 둥하고는 한다. 어릴 때는 조금 쉬면 금방 회복되고는 했는데,
이제는 조금 쉬는 것으로는 택도 없다.
오늘 글 제목은 연암과 같은 시기를 산 유명한 문인인 이옥 선생의 글 <걱정은
술을 부르고 글을 부르고>를 따라해봤다. 이옥 선생은
감수성 강한 문체 때문에 문체반정 때에 벌로 군대에 가게 되었다. 어쩐 일인지 일이 자꾸 꼬여서 무려
3번이나 군대에 가게 된 이옥은 그 후 벼슬에 뜻을 두지 않고 이곳저곳을 유랑하며 주옥같은 글을 남겼다. 이옥 선생은 조선후기의 싸이일까? 그의 글을 읽은 사람들은 그의
글이 머리 속에 떠나지 않는다고들 한다. 그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글 <걱정은 술을 부르고 글을 부르고>를 부천시민대학에서 암송했었다. 특히나 술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반드시 한 번은 이 글을 술자리에서 암송했다고 한다. 이 글을 암송하면 좌중이 모두 글의 흥취에 젖어 한 동안 말을 잊고 술을 주거니 받거니 했다는 뒷 이야기가
있다.
낭송 이옥, 이옥 지음, 채운
풀어읽음, 고미숙 기획, 북드라망
2. 내 마음의 풍경들
2-5. 걱정은 술을 부르고 글을 부르고
나의 동인 중에 걱정이 많아 술 마시기를 일삼는 사람이 있다.
그는 술이 맑아도 마시고 탁해도 마시고,
달아도 마시고 시어도 마시고,
진해도 마시고 묽어도 마시고,
많아도 마시고 적어도 마시고,
벗이 있어도 마시고 벗이 없어도 마시고,
안주가 있어도 마시고 안주가 없어도 마신다.
내가 물었다.
"왜 술을 마시는가?"
"내가 마시는 것은 맛을 얻으려 하는 게 아니요,
취함을 얻으려 하는 것도 아니며,
배부름을 얻으려 하는 것도 아니요,
흥을 얻으려 하는 것도 아니요,
이름을 얻으려 하는 것도 아니라네.
걱정을 잊으려 마시는게야."
"어떻게 술로 걱정을 물리칠 수 있단 말인가?"
"나는 걱정할 만한 몸으로 걱정할 만한 지경에 처했고, 걱정할 만한 때를 만났네.
걱정이란 마음속에 있는 것이라,
마음이 몸에 있으면 몸을 걱정하고,
마음이 처하는 곳에 있으면 처하는 곳을 걱정하고,
마음이 어떤 일을 당한 때에 있으면 그 때를 걱정하는 것이니,
마음이 있는 곳이 걱정이 있는 곳이라네.
그러므로 그 마음을 옮겨 다른 곳으로 가면 걱정이 따라오지 못하지.
지금 내가 술을 마시면서 술병을 잡고 흔들면 마음이 술병에 있게 되고,
잔을 잡아 술이 넘치는 것을 조심하면 마음이 술잔에 있게 되고,
안주를 집어 목구멍으로 넘기면 마음이 안주에 있게 되고,
손님에게 잔을 돌리면서 나이를 따지면 마음이 손님에게 있게 되어,
손을 뻗을 때부터 입술을 닦기까지 잠시나마 걱정이 없어진다네.
신변에 걱정이 없어지고,
처한 곳에 걱정이 없어지고,
때를 잘못 만난 것에 대한 걱정이 없어지니,
이것이 내가 술을 마시면서 걱정을 잊는 방법이요,
술을 많이 마시는 까닭이라네."
나는 그의 말이 옳다 여기며, 그의 심정이 서글퍼졌다.
아아! 내가 봉성에서 지은 글 역시 동인이 술을 마시는 것과 같은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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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옥(李鈺, 1760~1815)의
자는 기상(其相)이고 호는 문무자(文無子), 매암(梅庵), 경금자(絅錦子), 도화유수관주인(桃花流水館主人) 등이 있다.
1792년부터 여러 차례에 걸쳐 정조로부터 문체의 부정(不正)함을 지적받은 후 충군(充軍)의
벌을 받고 10여 년을 떠돌다가, 1800년 이후로는 고향집에서
글을 쓰는 데 전념했다. '나는 나의 언어로, 내가 쓰고
싶은 것을 쓴다'가 그의 모토, 그가 남긴 여러 시부와 소품문이
벗 김려(金?, 1766~1822)에 의해 편집되어 현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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