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콘텐츠로 건너뛰기

[073][1112][백일글쓰기2] 집 안에 폐비닐이 얼마나 있을까

나는 집안 정리에 소질이 없었다. 물건들이 방바닥 위에 늘어서 있기도 했고, 물건을 찾느라 상당한 시간을 허비하기도 했다. 정리 정돈에 대한 책을 사서 읽어봐도 읽기에 그칠 뿐 생활 안으로 들어오지를 않아서 애를 먹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시에 운영하는 학습프로그램 중에 <수납정리> 프로그램을 발견했고, 몇 주간 수납 정리에 대해 배웠다.

그 프로그램은 수납정리전문가 2급 과정이었다. 강사는 수납정리전문가라는 직업에 대해 설명을 하고, 협회 현황과 수납정리전문가들의 활동을 소개했다. 그 당시 여러 TV프로그램에서 한창 수납정리 소개를 했었고, 수납정리전문가에 대한 관심이 높았었다. 수강생들 중에 상당수는 직업으로서 수납정리를 배우러 온 사람들도 많았다. 그리고 나서 옷장, 냉장고, 부엌, 거실 등의 집안 구역별 정리법을 설명해주었다. 수업은 대체로 강사가 직접 정리정돈한 사례였다. 정리정돈 전후 사전들을 보면서, 나는 옷장은 이렇게 냉장고는 저렇게, 부엌 살림은 요렇게 하면 되겠다는 이미지를 머리 속에 그렸다. 이제 그 이미지대로 우리 집을 정리하면 된다.

수납바구니와 수납함을 사서 옷장->냉장고->부엌->거실 순으로 정리를 해나갔다. 수납정리는 그 구역의 모든 물건을 꺼내 놓고, 버릴 것과 사용할 것을 구분하는 것부터 시작한다. 집안을 한 차례 뒤엎고 나니, 버려야 할 물건들이 많았다. 구역별로 절반 이상이 버려야 할 것들이었다. 이 사실은 나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쓸모 없는 물건을 언젠가 쓰임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수 년간 혹은 십 년 넘게 끌어안고 살아 왔다니!

버린 물건 중에 나에게 가장 큰 충격을 준 것은 바로 폐비닐이었다. 물건을 사고 나면 나오는 비닐 중에 깨끗한 것을 한 곳에 모아 두고는 했다. 내 나름의 자원 재활용을 위한 행동이었다. 무의식 중에 했던 행동의 결과, 폐비닐은 사과 상자 2 박스가 넘게 모여 있었다. 모은 양이 재활용 양보다 훨씬 많았던 것이다.

수업 시간에 본 사례가 떠올랐다. 사람들은 무의식 중에 특정 물건을 모은다고 한다. 어떤 사람은 믹서기, 전기 밥솥과 같은 소형 가전을 여러 개를 사서 쌓아 두고, 어떤 사람은 옷을 사서 포장채로 쌓아 둔단다. 그런데 모든 사람이 공통적으로 쌓아 두는 품목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폐비닐이었다. 수납정리를 의뢰받아 방문했던 집마다 폐비닐 무더기가 있었다고 한다. 그 양도 무시못할 정도라고 했다. 그러면서 폐비닐의 양은 정리정돈력과 반비례한다고 했었다. 나는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럴 수도 있구나 하고 지나쳤었다. 그런데 내가 바로 폐비닐 수집가였다니!

엄청난 양의 폐비닐은 집안 한쪽 구석에서 크기를 키워오고 있었다. 처음에는 분명 그 곳에 폐비닐은 한 장도 없었다. 그것은 확실하다. 하루하루 한 장, 두 장씩 쌓인 결과 폐비닐의 그 곳의 주인이 되어 있었다. 수년 간 보면서도 보지 못했던 폐비닐 무더기를 자각한 순간, 너무 창피했다. 재활용쓰레기 수거일이 되자 누가 볼 새라 얼른 버렸다. 그러자 폐비닐이 차지하고 있던 공간이 드러났다. 마음 한 켠이 후련해졌다. 기분이 상쾌해졌다.

수업시간에 배운 대로 정리정돈을 해 본 결과, 정리정돈은 어쩌다 한 번해서는 안된 것이었다. 정리정돈이 생활습관이 되어야만 비로서 정리정돈이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또한 내가 직접 정리정돈해야만 정리정돈력도 키울 수 있다는 것도 느끼게 되었다. 폐비닐을 자각하고 난 뒤, 바로 폐비닐 수납함을 하나 샀다. 눈에 잘 띄는 곳에 폐비닐 수납함을 두고 매일 그 양을 측정했다. 폐비닐 하나만 신경 썼을 뿐인데도 생활이 달라졌다. 폐비닐을 생각하면, 자동적으로 집안에 정리정돈이 필요한 곳들이 함께 떠오르기 때문이었다.

물건을 살 때도 이 물건을 놓을 곳이 있는지를 생각하고 사게 되었다. 예를 들면, 냉장고 안에는 토마토를 두는 공간이 정해져 있다. 싱싱한 토마토를 보고 사고 싶은 마음이 들 때, 냉장고 안의 토마토 전용 공간이 어는 정도 차있는지를 떠올려본다. 이러한 사고 덕분에 항상 일정량의 토마토를 보관할 수 있게 되었다. 원래 있던 물건이 공간을 내어줄 때, 즉 그 물건을 다 사용하고 난 후, 새로운 물건을 사면 집안을 쾌적하게 유지할 수 있다.

매일 폐비닐의 양을 가늠하기만 했는데, 덜 사고 더 오래 사용하고, 더 넓은 공간을 활용하고, 더 쾌적한 생활이 가능해진 것이다.

글자수 : 1626(공백제외)
원고지 : 11.23

#연금술사 #백일글쓰기 #숭례문학당 #정리수납 #정리정돈 #폐비닐로측정해보는정리정돈력

댓글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314일][11월09일][365매일글쓰기] 나는 꿈이 없다

  [314 일 ][11 월 09 일 ][365 매일글쓰기 ] 나는 꿈이 없다   사람들은 나에게 질문을 하고는 했다 . 꿈이 뭐냐고 . 그러면 나는 00 년까지 0000 을 하는 것이라고 대답했었다 . 그들은 고개를 갸우뚱하며 말했다 . 그건 꿈이 아니고 목표잖아요 .   그렇다 . 나는 꿈이 없다 . 나의 꿈은 대학 진학과 동시에 사라졌다 . 어린 시절 내내 꿈꾸어 오던 분야로 진학을 하지 않고 전혀 다른 분야로 뛰어든 그 순간 나는 길을 잃었다 . 심지어는 진학한 분야에 적응하느라 너무 힘이 들어서 다른 꿈을 꿀 수조차 없었다 . 매 순간이 도전이었고 매 순간 눈 앞의 문제를 해결하기에 급급했다 . 차분히 생각할 시간 따위는 아예 없었다 .   대학 시절 내내 나를 극한으로 내몬 것은 영어였다 . 학교에서 영어를 배운 것이 전부였던 나에게 던져진 영어 원서가 문제였다 . 교과서를 읽어야 과제를 할 수 있고 시험 공부도 할 수 있는데 당시의 나의 영어 실력은 30 분에 겨우 한 페이지를 읽는 수준이었다 . 대학교 1 학년 교재 중에 국어와 한국사 빼고는 죄다 영어 원서였고 한 권당 페이지 수는 어머어마 했다 . 나에게 영어는 발목을 잡는 족쇄였다 .   영어에 치여서 20 대를 힘들게 보내나서 30 대에 진입하게 될 즈음에 나에게 꿈이 생겼다 . 영어를 잘하고 싶다는 꿈 . 그래서 3 년간 열심히 노력했다 . 나는 인생 처음으로 가장 열심히 , 가장 신나게 공부했던 시기였다 . 꿈을 이루기 위한 공부였기 때문일 것이다 . 사람들이 또 나에게 물었다 . 꿈이 뭐냐고 . 그래서 나는 대답했다 . 영어를 잘하는 것이라고 . 그랬더니 사람들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말했다 . 그건 꿈이 아니라 목표잖아요 . 나는 당황했다 . 그렇게 내 꿈은 사라졌다 .   그럼 꿈은 뭘까 ? 아무리 머리를 짜내 봐도 나오는 것은 목표뿐이었다 . 오랜 시간 동안 습관으로 자리잡은 사고방식 때문에 자꾸...

사피엔스 3일차 3 아담과 이브가 보낸 어느 날

사피엔스 3 일차 제 1 부 인지혁명 3 아담과 이브가 보낸 어느 날 (70~101 페이지 ) 2019 년 8 월 5 일 월요일 # 사피엔스 # 함께읽기 # 숭례문학당 # 인지혁명 # 게걸스런유전자 #7 만년전부터 1 만년전까지 # 수렵채집위주생활 # 약 1000 만명인구 ▶ 오늘의 한 문장 현대인의 사회적 , 심리적 특성 중 많은 부분이 이처럼 농경을 시작하기 전의 기나긴 시대에 형성되었다 . 심지어 오늘날에도 우리의 뇌와 마음은 수렵채집 생활에 적응해 있다고 이 분야 학자들은 주장한다 . - 70 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