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8일][11월07일][백일글쓰기2] 성적은
중요하다
12월 8일 일요일이 기말고사일이다. 겉으로는 “까짓거 점수 좀 안나오면 어때!”라고 너스레를 떨지만 솔직히 많이 긴장된다. 성적은 중요하다. 성적이 안 좋으면 창피하다. 성적이 나쁘면 업신여김을 당할 수도
있다. 성적에 대한 나의 이러한 감정은 어떻게 형성된 것일까? 그것은
아주 어렸을 때부터 이루어졌다.
국민학교 1학년 초반은 시골학교에 다녔다. 학교까지 숲길을 걸어간 기억이 있고, 청소를 했던 기억은 난다. 그런데 뭘 배웠는지는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다. 숙제를 안 해가서
할아버지께 한 소리 들은 기억은 나는데, 숙제란게 뭔지도 몰랐었다. 어찌어찌하다
도시의 학교로 전학을 갔다. 전학간 첫날. 담임 선생님이
받아쓰기 쪽지 시험을 보셨다. 중년의 여자 선생님의 카랑카랑 목소리로 <토끼와 거북이>의 문장 10개를
불러주셨다. 나는 빵점을 받았다. 매일 쓰는 한국어인데, 토끼를 쓸 수 없었다. 달렸다도 쓸 수 없었다. 거북이는 다행이 글자를 알고 있었다. 당당히 거북이는 썼다. 아뿔사! 거북이가 아니라 지북이를 썼다. 그래서 빵점이 되었다.
남자 짝꿍은 내가 빵점을 맞는 순간부터 나를 무시하기 시작했다. 책상의
대부분이 자기꺼라며 나를 책상 귀퉁이로 몰아세웠다. 빵점을 맞아서였다.
그제서야 나는 학교에서 점수는 무척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다시 빵점을 맞지 않기
위해서 수업을 열심히 들었다. 카랑카랑한 여자 담임 선생님은 훌륭한 선생님이셨다. 덕분에 한글 원리도 빠르게 깨우쳤다. 산수도 제법하게 되었다. 빵점을 받지 않기 위해 열심히 수업을 들은 결과, 그 다음부터는
절대로 빵점을 맞지 않았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나의 몫의 책상을 되찾았다는 것이다.
지금도 그 남자 짝꿍이 생각난다. 그 때의 기억으로 그 녀석도 공부를
잘하는 편은 아니었다. 지금은 뭘 하며 지낼까? 네 덕분에
나는 더 이상 빵점을 안 맞게 되었다. 고맙다.
6학년 2학기에 대도시의
학교로 전학을 가게 되었다. 작은 도시에서 온 전학생임에도 첫 월말 시험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 갑자기 반 친구들의 대접이 달라졌다. 학교에서 높은 점수를 받는
것은 좋은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나’는 나일 뿐인데, ‘점수’에 따라 대접이 달라진다.
중학교에 가게 되었다. 갓 지어진 학교는 멀었다. 시내버스를 한 참 타고 가야 했다. 학교이사장은 명문학교를 만들어야
한다며, 학생들에게 열심히 공부할 것을 당부했다. 그래서
우리는 공부하고 또 공부했다. 뭘 공부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밤
9시까지 모두 교실에 앉아 공부했었다. 월말고사, 중간고사, 기말고사 시험 점수와 등수는 교실 복도 벽에 붙여졌다. 아이들은 누가 1등이네 하며 떠들어댔다. 내가 몇 등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내 위에 몇 명이 있었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이전 시험보다 등수가 떨어지지 않는 것이었다. 아이들이 누가 올랐네 내렸네 재잘재잘 거리기 때문이었다. 등수가
떨어지지 않게 공부하다보니, 공부가 재미있었다. 외우면 시험점수가
잘 나오는 과목도 있었고, 원리를 알면 문제를 쉽게 풀 수 있는 과목도 있었다. 점수를 잘 받기 위해 초집중해서 수업을 들었다. 다행히 3년내내 등수가 떨어져서 창피를 느끼지는 않았던 것 같다.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이제는 시험의 달인이 되어가고 있었다. 교과서에 형광펜을 칠하고, 줄을 그었다. 여백에 선생님의 강의 내용을 적었다. 눈을 감으면 교과서의 어느
부분에 어떤 내용이 있는지 떠오를 지경이었다. 1학년 때 같은 반이었던 친구가 시험 끝나고 시험을 못봤다고
성질을 냈다. 친구가 안스러워서 위로해줬다. 시험 결과를
보니, 나보다 시험을 잘봤다. 성질 부린 이유는 1개를 틀렸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때 시험은 만점을 받아야만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친구 덕분에 3년내내 만점을 받기
위해 열심히 공부하게 되었다.
대학교에 진학했다. 입학하자마자 절망을 느꼈다. 교과서가 모두 영어로 되어 있었다. 책을 빠른 속도로 읽을 수가
없었다. 심지어 어떤 교수님은 영어로 강의를 했다. 의자에
앉아서 눈만 껌뻑껌뻑했다. 정말 야속한 학교였다. 영어라는
장벽에 가로막혀 무력감을 느꼈다. 자존감이 무너져 내렸다. 악몽같은
1학기가 지나갔다. 나는 생각했다. 이건 말도 안된다. 유학을 온 것도 아닌데 영어 때문에 무너져 내리다니! 학교를 그만 두어야 겠다. 아버지에게 학교를 그만두고 다시 입시를
치루겠다고 했다. 아버지는 먼 거리를 버스를 타고 오셨다. 그리고
말씀하셨다. 재수는 절대 안된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2학기도 다녔다. 눈물로 보낸 세월이었다.
직장에 취직했다. 직장월드에서는 시험 점수 대신에 인사고과라는 것이
있었다. 이것을 잘 받아야 월급도 더 오르고 더 존중 받을 수 있었다.
연말이 되면 사원들은 누구 인사고과가 S이네 누구는 C이네
하면 떠들었다. 인사고과를 잘 받기 위한 공부의 세계가 펼쳐졌다. 인사고과를
잘 받으려면 상사의 지시를 잘 따라야 한다. 상사가 “아!”하면 알아서 재깍 결과물을 바쳐야 한다. 일을 잘하려면 다른 팀은
물론 협력사와 경쟁사로부터의 협조도 잘 받아야 한다. 직무분야에 대한 전문지식도 깊고 넓어야 한다. 학교 다닐 때보다 더 열심이 더 많은 것을 공부했다. 눈이 아플
정도로 읽고 또 읽었다. 그리고 정리했다. 상사가 A라고 하면 A에 대해 좔좔좔 읊을 수 있어야 했다.
가만 생각해보니, 나의 인생은 성적과의 싸움이었다. 성적은 나의 가치를 대변해주는 중요한 요인이었다. 지금 나는 전업주부이다. 전업주부에게는 어떠한 시험도 평가도 없다. 그런데도 어디가서 시험이라도
볼라치면, 몸에 밴 방어기제가 작동한다. 높은 점수를 받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이번 기말 시험을 망쳐서 D학점을
받아도 누가 뭐라할 사람도 없다. 능력신장을 위해 공부하는 것이지 성적을 잘 받기 위해 공부하지 않기
때문이다. 졸업하고 취직할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성적을 신경쓰는 이유는 국민학교 1학년때 몰라서 못 썼던 받아쓰기 때문이다.
글자수 : 2241자(공백제외)
원고지 : 14.7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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