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4일][11월03일][백일글쓰기2] 21세기, 놀라운 대변혁의 시기
요즘 TV 시청 시간이 대폭 줄어들었다 TV를 보더라도, NGC나 Discovery
채널을 주로 보게 된다. 인간 세상의 이런저런 뉴스는 유튜브와 SNS에서 실컷 보고 있으니, TV에서는 자연의 뉴스만을 선택해서 본다. NGC와 Discovery는 영어 채널이지만, 멋진 한국어 자막이 제공된다. 광고는 주로 영어로 송출되고, 광고의 경우에는 자막조차도 없다. 사정이 이러하니 NGC와 Discovery 채널 시청할수록 영어 듣기 능력이 조금씩
향상되고 있다.
역시 TV 드라마 대신에 선택한 Netflix에서는
세계 각국의 드라마와 영화를 볼 수 있다. 어찌하다 보니, 영어
컨텐츠를 더 많이 선택하게 되었다. 미국식 영어, 영국식
영어, 호주식 영어 발음을 듣고 있으면 각국의 영어 표현 차이는 물론 미묘한 제스춰 차이와 상황별 행동방식
차이도 관찰이 가능하다. 게다가 한글 자막을 보며 듣다 보니, 자연스럽게
영어 듣기 능력이 조금씩 향상되고 있다.
나는 왜 TV를 보지 않게 되었는가?
우선은 방송 언론인들에게 실망을 느껴서였다. 그들은 공정하지 않다. 그들은 지나치게 기울었다. 그들이 기울어진 이유는 자세히 모른다. 그들도 나름대로 속사정이 있으리라. 이유야 어쨌든 간에 그들의 행동은
편향되어 있다. 그런 그들(작용) 덕분에 나의 영어듣기능력(반작용)이
나날이 좋아지고 있다.
‘나’라는 한 사람은 작은
존재이지만, 기울어진 방송 언론에 저항하는 의미로 그들이 생산해낸 콘텐츠를 소비하지 않기로 했다. 그들의 콘텐츠가 안 팔리면 그들의 수익이 줄어들테니까. 어떻게? 그들의 주 수입원은 광고이다. 사람들이 소비하지 않는 콘텐츠에 광고를
할 광고주는 별로 없다. 나는 유튜브를 통해 콘텐츠를 선별하여 보며,
콘텐츠를 해설해주는 중간 생산자들 중 몇몇을 신뢰한다. 오래 전부터 미래학자들의 1인 언론 시대를 예측했었다. 과거의 나는 설마 그런 일이 일어나겠냐고
의심했었다. 그런데 2019년 나는 실제로 1인 언론을 목격하고 있다. 수많은 가짜뉴스와 오염뉴스 속에서 진실을
찾는 등대와 같은 1인 언론들이 존재한다. 이들은 주로 유튜브와
SNS에서 활동한다. 이들은 기자로서의 역할에 충실하며 언론으로서의
역할에도 충실하고 있다. 기울지 않고 공정한 보도를 하는 언론이 아직도 있는 것이다. 참과 거짓을 정확하게 전달하고, 의심나는 부분에 대해 취재한 후
보도하는 기자의 본분을 지키는 사람들이 아직도 존재한다. 단지 그들이 주요(major) 언론이 아닐 뿐이다.
앞으로 1인 언론의 시대는 점점 더 확대될 것이다. 이제 누가 TV 요리 프로그램을 시청하겠는가? 이제 누가 TV 책 프로그램을 시청하겠는가? 이제 누가 예능 프로그램을 시청하겠는가? 재야의 숨은 고수들이 유튜브와
SNS를 통해 세상으로 하나둘씩 나오고 있지 않는가? 가장
대표적인 예는 박말례 할머니이다. 손녀와 함께 이런저런 이야기를 올리고 있는 박말례 할머니는 전형적인
한국 할머니이다. 그냥 그저그런 할머니로 세월을 보낼 수도 있었지만,
손녀와 함께 주체할 수 없는 끼를 유튜브를 통해 송출하고 있다. 박말례 할머니야 말로 진정한
예능 종사자인 것이다. 박말례 할머니와 같은 유튜브 예능인을 보고 나면, TV에 나오는 예능인들의 말과 행동이 재미가 하나도 없다. 박말례
할머니의 예능은 공감이 간다. 하지만, TV에 나오는 예능인들은
그저 나와는 다른 세상의 사람들이라는 느낌만 준다. 그들만의 세상에서 하는 예능에는 공감할 수 없다.
유튜브와 SNS에서 만나는 일반인 고수들은 <세상에 이런 일이> 출연자보다 더 놀라운 사람들이다. 게다가 그들 스스로 자신의 이야기를 동영상으로 꾸준히 올려준다. 이들이
유튜브나 SNS에 처음 모습을 드러냈을 때는 어설프기 그지 없었다. 한
번 두 번 계속해서 올라오는 영상에서 조금씩 진보하고 있다. 외모도 다듬어지고, 말 솜씨도 늘었다. 영상을 만들면서 진보한 것이다. 이렇게 몇 년이 흐르면, 아마도 그들은 전문 방송인 버금갈 정도의
수준이 될 것이다. 단지 지금의 전문 방송인보다 개인 능력치가 더 높을 뿐이다. 개인 능력치가 바로 열쇠인 것이다. 대중은 나와 같은 사람이 가진
비범함 능력을 더 선호한다. 그들의 비범함이 아니라.
이렇듯 21세기는 대변혁의 시기이다.
변화를 아무리 막으려해도 막을 수 없을 정도로 전 세계는 하나로 연결되었고 개방되어 있다. 21세기를
잘 살아가려면 변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본다. 지나간 20세기의 추억에 매달려 20세기를 고수하려 하면 변화를 따라갈 수
없게 되고 결국은 도태되고 말 것이다. 박말례 할머니는 70대이다. 70대이지만 열려 있는 마음으로 변화를 수용하고 적극적으로 변화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아름답다.
글자수 : 1797자(공백제외)
원고지 : 11.3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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