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8일][10월08일][백일글쓰기2] 무관심이
불러온 참상
기독교나 나치즘 같은 종교는 불타는 증오심 때문에 수백만 명을 살해했다. 자본주의는
차가운 무관심과 탐욕 때문에 수백만 명을 살해했다. 대서양 노예무역은 아프리카인에 대한 인종적 증오에서
생긴 것이 아니다. 주식을 구매한 개인이나 그것을 판매한 중개인, 노예무역
회사의 경영자는 아프리카인에 대해 거의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사탕수수 농장 소유자들도 마찬가지였다. 많은 농장주들이 농장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살았고, 그들이 원한
유일한 정보는 손익을 담은 깔끔한 장부였다. – <사피엔스>
468~469 페이지, 유발 하라리, 김영사
<사피엔스>를
읽다 보면 곳곳에서 내 자신의 무지함을 발견하고는 한다. 충격에 빠져 한동안 생각에 빠지게 만든다. <제16장 자본주의 교리>에서는
‘무관심’이 나를 충격에 빠지게 했다. 유발 하라리는 무관심으로 인한 재앙의 예로 미국 남부의 노예를 근거로 제시했다. 노예가 도입된 과정과 이들이 수 세기 동안 억압과 차별을 받은 과정을 읽고 있노라면 허탈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중세 유럽에서는 ‘설탕’은
매우 귀한 사치품이었다. 중동으로부터 고가로 들여와 고급 요리나 비법 약의 재료로 사용되었다. 유럽인이 아메리카를 정복한 뒤에 대규모 사탕수수 농장을 만들었다. 이곳에서
생산되는 ‘설탕’은 농장주들에게 큰 돈을 벌어다 주었다. 공급이 많아지면 가격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증가한 공급보다
수요가 더 커졌다. 케이크, 쿠키, 초콜릿, 사탕과 같은 달콤한 간식들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그래서 아메리카에 더 많은 사탕수수 농장이 들어섰다.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사탕수수 농장에서 혹독한 노동에 시달리다 죽음을 맞이했지만, 아무도 그들에게 관심을 주지 않았다. 달콤한 홍차 한 잔에 달콤한 쿠키를 곁들여 먹는 유럽인들에게는 ‘설탕’의 가격이 중요할 뿐이지, ‘설탕’을
만드는 과정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관심밖의 일이었다.
더 많은 ‘설탕’을 원하는
유럽을 위해 아메리카의 설탕농장주들은 아프리카로부터 노예를 수입했다. 왜 아프리카인가? 왜 아시안이 아니었을까? 당시 영국은 인도를 식민지로 가지고 있었다. 그 이유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아프리카인들은 말라리아에 내성이
있었다. 전염병에 내성이 있기 때문에 선택된 것이다. 둘째는
인도나 아시아보다 아프리카가 운송비용이 더 쌌다. 저렴한 비용때문이었다. 아프리카에서 아메리카까지 노예들을 운송하는 과정과 참혹한 노예 생활은 이미 영화나 소설로 많이 묘사되었기 때문에
자세히 설명하지 않겠다. 그 과정이 궁금하다면 1976년에
출판된 알렉스 헤일리의 소설 <뿌리>나 1977년 방영된 ABC 미니시리즈 <뿌리>를 보기를 권하고 싶다.
이런 일이 일어나는 동안 많은 유럽인들이 노예 사업에 투자했다. 그들의
관심은 오직 투자 수익에 있다. 영국인들이 매일 오후에 쿠키를 곁들인 홍차를 마시며, 자신이 투자한 노예 사업의 수익에 대해 대화를 했다. 노예 대신에
거창한 다른 이름을 가진 회사이름이 등장했을 뿐이었다.
나는 사회 문제에 무관심한 사람이었다. 어느 날, 퇴임한 대통령이 갑자기 높은 바위 위에서 추락해서 죽음을 맞이했다. 방송과
신문에서 부도덕한 사람이라고 맹비난을 퍼붓던 중이었다. 당시 나는 뉴스를 흘려들으면서, 문제와 원인을 파악하지 않았다. 단지 무관심했다. 이 일은 나의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참담한 사건이 발생했다. 이 일로 인해, 내 자신에게 크게 실망하게 되었다. 또 세월이 흘러, 세월호가 침몰했다. 충분히 구조할 수 있었음에도 구조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당시 나는 TV를 지켜보면서 곧 구조하겠지, 곧 구조할거야를 되뇌었지만, 배가 다 가라앉을 때까지 구조는 없었다. 그리고는 희생자들과 그
가족들은 기나긴 기간동안 모욕을 받았다. 왜 희생자들이, 그들의
가족들이 ‘돈’을 잣대로 모욕 받아야만 했을까? 왜 그들은 오지 ‘돈’을
근거로 모욕을 가했을까? 바로 사람들의 무관심했기 때문이었다.
수년 전에 인터넷에서 어떤 초로의 아주머니가 ‘국물녀’라 불리며 사회의 지탄을 받은 적이 있었다. 그 아주머니가 푸드코트에서
어린아이 얼굴과 목에 뜨거운 된장국물을 쏟고는 도망쳤다는 것이었다. 화상입은 아이의 처참한 모습에 인터넷은
순식간에 끓어올랐다. CCTV에 잡힌 초로의 아주머니 얼굴이 인터넷 여기저기에 떠돌았다. 당시에 나 자신도 그 초로의 아주머니에게 분노했었다. 그래서 계속
네티즌들의 다음 이야기를 찾아봤다. 그런데 며칠 지나서, 그
초로의 아주머니의 인터뷰가 올라왔다. 사건의 내막은 이랬다. 어린아이는
푸드코트 안을 뛰어다녔다. 그 초로의 아주머니는 자신의 음식을 식탁에 두고 나서 된장국물을 따라서 돌아서는
순간 뛰어오는 아이와 부딪혔다. 뜨거운 국물이 자신의 손으로 쏟아졌고,
음식을 내준 코너의 사장이 그 장면을 목격했다. 주변의 도움을 받아 손의 화상열을 식히면서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그 아이는 사라지고 난 후 였다. 그래서
식사를 하려다 봉변만 당하고 집에 돌았다고 한다. 며칠 후 딸이 와서,
엄마가 가해자로 온갖 비난과 조롱을 받고 있다고 알려주었단다. 인터넷에 떠도는 이야기를
보니, 너무 기가 막혀서 경찰에 출두해서 전후 사정을 진술했다고 한다.
경찰은 사건 전후의 CCTV 영상을 공개했고, 이것이
영상을 본 사람들은 할 말을 잃었다.
참고자료 : 나무위키
푸드코드 화상 사고
(https://namu.wiki/w/%ED%91%B8%EB%93%9C%EC%BD%94%ED%8A%B8%20%ED%99%94%EC%83%81%20%EC%82%AC%EA%B3%A0
)
만약 이 사건에서 경찰이 초로의 아주머니의 진술을 왜곡해서 가해자로 몰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CCTV 영상을 공개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리고 이 사건을
기자가 보도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사람들은 타인의 사정에 무관심한 대신에, 자극적인 이야기에 주목하는 경향이 있다. 며칠동안 그 누구도 ‘국물녀’의 사정 따위는 염두에 두지 않았었다.
글자수 : 2285자(공백제외)
원고지 : 13.6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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