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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4일][09월24일] 차등(差等)


[024][0924][백일글쓰기2] 차등(差等)
*) 차등 : 고르거나 가지런하지 않고 차별이 있음. 또는 그렇게 대함. 반대말 균등

큰 물고기는 작은 물고기를 잡아먹는다. 작은 물고기는 새우를 잡아먹는다.” 혹독한 약육강식의 세계 같다. 혹자는 자연 상태라고 했을 것이다. 그러니 사회계약을 맺자고 했을 것이다. 그러나 절묘한 것은 그 다음이다. “큰 물고기는 새우를 먹지 않는다. 그래서 새우는 작은 물고기만 무서워한다. 큰 물고기는 자신을 보호해 주는 구세주인 까닭이다.” 이것이 진짜 자연 상태이다. 평등도 아니요 차별도 아닌, 차등으로 작동하는 생태계, 즉 복합계이다. - <반전의 시대> 26페이지, 이병한, 서해문집, 2016


책을 읽을 때, 위의 문장이 너무나도 강렬하게 느껴졌었다. 그래서 그 옆에 별표 하나를 그렸다. 막상 글을 옮겨 적고 나니, 고개를 갸우뚱하게 한다. 뭔가를 잘못 끄집어낸 느낌이 들어서이다. 이 문장은 현세에 통용되는 논리와 사뭇 다르다. 무엇보다 차등이라는 단어가 그렇다. 유학에서는 천하의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고 한다. 하지만 사람마다 타고난 재질이 다 다르다. 누구는 순수한 마음을 그대로 품고 태어난다. 또 누구는 기운이 비틀어진 채 태어나기 때문에 순수한 마음이 가려져 있다. 그래서 자기 수양을 통해 원래의 순수한 마음을 회복해야 한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아무리 교육을 시켜도 어리석음에서 헤어나오지 못한다. 그리하여 고대 중국에서는 사회구성원들이 각자의 재질에 따라 역할을 맡아 수행했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고대 중국의 이야기이다.

인구가 늘어남에 따라 국가가 형성되면서 계급이 확고해졌다. 누구도 오고 갈 수 없는 사람 간의 경계가 그어진 것이다. ‘차등에서 계급으로의 전환이 일어났다. 요즘 사람들은 공자(BC 551~BC479)가 무엇이 그리 대단하냐고 할 것이다. 신분제가 확실한 그 시대에 감히 누구나 공부하면 군자(君子)가 될 수 있다고 부르짖은 사람이 바로 공자이다. 군자란 무엇인가? 바로 왕이며 왕이 될 사람이다. 신분에 상관없이 공부를 하여 인격수양을 한 사람이 바로 군자라는 주장인데, 익숙하지 않은가? 이 말은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과 같은 의미를 품고 있다. 계급에 상관없이 공부를 해야하고, 공부를 통해 인격 수양이 된 사람이 왕이 되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런 공자도 차등을 용인한다. 세상 사람들을 살펴보니, 어떤 사람은 날 때부터 세상의 이치를 알고 행한다. 어떤 사람은 배움을 통해서 세상의 이치를 알게 되고 행한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아예 배우려고도 하지 않았다. 공자는 배움으로 차등을 두었다.

학교에서는 오직 덕()을 성취하는 일에만 종사하였다. 그러나 재능이 달라서 어떤 자는 예악에 뛰어나고 어떤 자는 정치와 교육에 뛰어나고 어떤 자는 토지와 농사에 뛰어나기 때문에 그 덕을 성취하는 데 따라서 학교에서 각자의 재능을 더욱 정련하도록 하였다. 덕이 있는 자를 천거하여 임용한 뒤에는 종신토록 그 직책에 머물러 다시 바꾸지 않게 하였다. 임용하는 자는 오직 한 마음, 한 덕으로 세상의 백성들을 모두 편안하게 해주는 일만을 생각하였고, 재능이 (그 직책에) 부합하는지의 여부를 볼 뿐이요, (그 직책의) 높고 낮음으로써 경중을 삼거나 수고로움과 편안함으로써 좋고 나쁨을 삼지 않았다. 임용된 자도 오직 한 마음 한 덕으로 세상의 백성들을 모두 편안하게 해주는 일만을 생각했으며, 만약 (직분이) 자기의 재능에 맞기만 한다면 종신토록 번잡한 데 처하더라도 수고롭게 여기지 않았고, 비천하고 자질구레한 직분도 편안히 여기고 천하다고 여기지 않았다. - <전습록 1> 423페이지, 왕양명, 청계, 2001

유학자의 본분은 학문으로 자기 자신을 수양하여 관직에 나아가 세상이 편안하게 유지되도록 하는 것이다. 명 나라는 상업이 발달하면서 부가 쌓여 전체적으로 분위기가 밝았다. 다만, 황실이 환관들의 횡포로 어지러워 관료들은 환관들의 눈 밖에 날까 봐 두려워했다. 왕양명 선생 또한 평생을 부패한 환관무리들에게 핍박을 받았다. 핍박 속에서 얻은 큰 깨달음(大悟)으로 학문의 경지에 오른 양명선생에게는 따르는 제자들이 많았다. 어떤 사람은 선생이 일하는 곳으로 찾아와 강학을 했고, 어떤 사람은 편지로 학문을 논했다. 위에 발췌한 글은 발본색원론(拔本塞源論)의 일부인데, 발본색원론은 벗이자 상사인 고동교와 주고받은 편지에 있는 내용이다. 관직에 나아가는 사람이 가져야 할 마음가짐에 대해 조목조목 짚어 나가는데, 글에 드러난 양명선생의 마음이 절절하기 그지없다.

요순임금 시절은 세상 사람들이 안락하게 살았던 시절로 중국의 이상향이라 할 수 있다. 이 고대 사회에 대한 향수는 현대에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요순시절에는 덕으로 나라를 다스렸고, 인재등용 또한 덕이 있는 사람을 위주로 이루어졌다. 사회구성원들은 개개인이 가진 재능에 따라 그 재능을 살릴 수 있는 곳에서 일을 했으며, 일에는 빈천을 두지 않았고 높낮이도 없었다. 모든 유학자들이 꿈에 그리는 세계가 요순시절이다. 왜 요순시절은 달랐을까? 요임금과 순임금의 현명함은 사욕(私欲)이 없는 밝은 마음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왕 자신의 개인 영달이 아닌 백성들을 위한 마음으로 다스렸기 때문이다. 이 시기에 주목해서 봐야 할 대목은 왕위선양이다. 왕의 자리를 세습하지 않고, 백성들이 우러러보는 뛰어난 인물에게 선양(禪讓)했다. 가장 적합한 인물을 왕의 자리에 앉힘으로써, 백성들 또한 자신에게 가장 적합한 자리에서 일하도록 모범을 보여준 것이다. 그러나 우임금 이후로 왕의 자리는 세습되었고, 하 나라는 많은 우여곡절을 겪어야만 했다.

태평성대였던 요순시절은 차등의 시대이다. 재능과 덕에 따라 차등을 둔 사회였다. 유학을 국가 재배 논리로 받아들인 동양의 나라들은 차등의 논리에 익숙하다. 조선 왕실은 명나라를, 명나라가 망한 뒤에는 청나라를 섬겼다. 약자가 강자를 섬긴다는 사대(事大)라는 단어만 두고 보면 수치를 느낄 수도 있겠다. 그러나 조선도 주변 국가나 민족으로부터의 섬김도 받았다. 이처럼 서로 조공을 주고 받으며 섬기거나 섬김을 받은 관계를 정하게 된다. 조공을 주고 받는 것에도 흥미로운 이야기가 있다. 조선이 청나라 황제에게 조공을 바치면, 청나라 황제는 조선에 답례품을 보냈다. 대국의 체면에 소국이 바친 것보다 더 많이 보내야만 했다. 조선에 더 많은 더 비싼 물건을 보냈다는 뜻이다. 이것은 제국이 주변국에게 주는 뇌물이기도 했다-이에 대한 재미있는 이야기는 <열하일기> <반선의 내력(班禪始末)>에 기술되어 있다. ‘차등의 논리는 동양의 외교의 핵심이기도 했다.

다시 이 글의 첫 머리에 인용한 글로 돌아가 보자. <반전의 시대>의 저자인 이병학 교수님은 중국의 변화를 언급하기 위해 이 글을 배치했다. 현대의 개별 국가들은 1:1의 대등한 관계를 지향하지만, 절대로 그렇게 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 였다. 국력의 강약에 따라 서로 먹고 먹히는 관계가 복잡하게 얽혀있는 것이 현대 국가들이다. 21세기 들어, 국가들 간의 분쟁 해결자였던 UN의 힘이 급격하게 약해졌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UN은 회원국 각각이 대등한 관계라는 전제하에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UN의 이상과는 달리, 현실에서는 힘있는 나라가 더 큰 힘을 휘두르고 있고, 그 힘에 밀려 다른 나라들은 침묵하게 된다. UN은 절대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을 드러내기 위해서이다. 이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에 더 하기로 한다.

(이제 막 읽기 시작한 <반전의 시대>에는 꽤나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앞으로 이 책의 내용을 두고 종종 단상을 올려볼 생각이다. )

글자수 : 2847(공백제외)
원고지 : 18.3

#연금술사 #백일글쓰기 #숭례문학당 #차등 #반전의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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