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3일][09월23일][백일글쓰기2] 나는
왜 공부하는 걸까
지난 7월, 숭례문학당의
30일 읽기 강좌 2개를 신청했다. 백일글쓰기를 하고 책 2권의 하루 분량을 읽고 단상을 썼다. 한달 내내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서 여름이 온 것도 알아채지 못할 정도였다.
어느 날 문득 보니, 여름이 되어 있었고, 밖에는
매미가 울고 있었다. 그래도 마냥 행복했다. 읽고 생각하고
쓰는 활동에 모든 에너지를 쏟았고 그만큼 얻는 것도 많았다. 8월은
7월보다 느슨하게 일정을 잡았다. 일상에 여유가 생긴 만큼 읽고 싶었던 책을 더 읽을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여유는 태만을 불러들였다. 읽으려고 옆에
두었던 책은 그 모양 그대로 먼지가 쌓여갔다. 늘어난 여유 때문에 딴 생각을 하는 시간이 늘었고, 그만큼 기분도 저조해졌다.
9월, 추석이라는 명절은
일상에 큰 상처를 남겼다. 명절이 끝나고 나면, 항상 가슴
한 가운데가 뻥 뚫려 있는 듯한 느낌에 시달리게 된다. 젊은 세대가 말하는 ‘현타’가 온 것이다. 나는
이제 더 이상 젊지 않다. 공부를 한다 한들, 취미에 그칠
뿐 생산적인 활동으로 이어지지 않는 나이가 되었다. 게다가 쉬지 않고 공부를 해왔지만, 학문적 성취 근처에도 못 갔다. 중국어를 공부하고 있지만, 배운 중국어로 중국서적을 읽거나 중국공영방송인 CCTV 시청할 뿐이다. 나의 전공분야를 떠난지 10년이 되어간다. 이제 다시 전공분야로 돌아갈 수도 없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자, 힘이 빠졌다.
그렇다고 하던 공부를 손을 놓을 수는 없다. 공부는 일상을 지탱해주는
지지대이기 때문이다. 현타가 올 때마다, 형암 이덕무 선생을
떠올린다. 천 권이 넘는 책을 읽었고, 아름다운 글을 쓸
줄 알았으며, 관찰력도 뛰어났던 형암이 할 수 있는 일은 말단 관직뿐이었다. 그 마저도 정조의 챙김을 받아 할 수 있었다. 그 전에는 굶기를
밥 먹듯이 했다. 그는 한 겨울에 너무 추워서 논어를 병풍삼아 바람을 막고 한서를 이불삼아 덮고 잤다고
했다. 그리고는 덕분에 살았다고 껄껄 웃었다. 중국에서 들어오는
서적은 반드시 형암의 손을 거쳐서 정오표(正誤表)와 함께
주인에게 돌아갔다. 그의 맑고 고운 인품에 반한 정조는 형암의 사후에 사비를 털어 그의 글을 출판해주었다. <청장관전서>가 바로 그 책이다. 청장관은 형암의 또 다른 호인데, 신천옹을 뜻한다. 이 커다란 새는 큰 날개를 펴서 하늘을 활공하는데 그 행동이 조급하지도 않고 가지런하다하여 호로 취했다고 한다. 형암은 한평생을 자기를 위한 학문(위기지학, 爲己之學)에 힘썼다. 형암만
그런 것이 아니다. 연암 박지원, 담헌 홍대용 또한 진실로 자기 자신을 수양하기 위해 학문을 했다. 이것이
후대 사람들은 당대의 대관고작보다 이들을 더 기억하는 이유이다.
나는 왜 공부하는가? 18세기를 살다간 형암, 연암, 담헌의 글을 읽다가 인생의 롤 모델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앎을 통해 삶을 풍요롭게 했던 조선 사대부의 품격에 반해서이다.
글자수 : 1089자(공백제외)
원고지 :
7.56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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