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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2일][09월22일] 4000자 외우기 성공, 7000자 실패했던 썰


[022][0922][백일글쓰기2] 4000자 외우기 성공, 7000자 실패했던 썰

어제 하루 종일 끙끙대며 글을 쓰고 나니, 오늘은 머리가 멍~하다. 더 나올 것이 없다며, 머리가 반항을 한다. 오늘은 무엇을 써 볼까하고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가 문득 암송이 떠올랐다. “나는 이제 나이가 너무 많아. 암송은 불가능해!”라고 생각하고 있던 그 순간이 문득 떠올랐다. 때는 20168월말 혹은 9월초였을 것이다. 33명의 수강생이 빙 둘러 앉아, 강의 계획을 듣고 있었다. 그 때가 강사님이 대단히 놀라운 발언을 한다.
매 수업마다 50~100자 정도의 암송 과제가 나갑니다. 수업 시작하기 전에 한 명씩 혹은 그룹을 지어 암송을 할 것입니다.”
? 암송요?”
꼭 해야합니까?”
저는 외우는 거 잘 못해요. 안 하면 안 되나요?”
순간 강의실 안이 어수선해졌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한자도 못 외우는데, 한 단락이나 되는 글을 어떻게 외워. 안돼. 불가능해.
이전 기수들도 처음에는 못한다고 하더니, 다 해냈어요. 더듬더듬 외우더라도 해보세요.”
결국 우리는 암송 숙제를 하게 되었다.  


첫 암송 과제는 성호 이익의 조카이자 백수 선비이며 전업 문장가인 이용휴(李用休, 1708~1782) 선생의 구도(求道)란 생각을 바꾸는 것이라는 짤막한 문장이었다.
오래된 살구나무 아래 작은 집 한 채가 있다. 횃대와 시렁과 작은 책상 등이 방의 삼 분의 일을 차지한다. 손님 몇 사람이 앉으면 무릎이 서로 부딪칠 정도로 방이 아주 작고 좁다. 그러나 주인은 편안히 거처하며 책을 읽고 도를 구할 뿐이다. 내가 말했다. "이 방안에서 몸을 돌려 앉으면, 방위(方位)가 바뀌고 명암(明暗)이 달라진다네. 구도(求道)란 생각을 바꾸는 데에 있다네. 생각이 바뀌면 따르지 않는 것이 없다네. 그대가 나를 믿는다면, 그대를 위해 창을 열어 주겠네. 한 번 웃는 사이에 어느새 환하고 툭 트인 경지에 오를 것이네." - <낭송 18세기 소품문>, 북드라망
200여자 되는 글은 겨우 겨우 외워서 수업에 참석했다. ~ 지난 주에 암송 못한다는 분들은 다들 어디로 가셨는가? 다들 좔좔좔 잘만 외운다. 그 사이에서 나는 창피해하며 더듬더듬 외웠다.

십여 차시의 수업이 진행되자, 암송에 재미가 들렸다. 수강생 사이에 암송 경쟁도 생겼다. 매주 누가 더 암송을 잘하는지 겨루는 동안에, 나는 여전히 떠듬떠듬 외웠다. 문제가 뭘까? 답은 암송을 준비하는 시간량의 절대적인 부족이었다. 수업 전날 밤이 되어서야 비로서 외우기 시작하니, 해봤자 한두시간 정도만 준비하게 된다. 아침에 일어나면 생각이 나지 않아서, 아침식사 준비하면서 몇 번 중얼중얼 외워보고는 끝이었다. 매번 이런 식이니, 좔좔좔 외울 수 없었던 것이다. 결단이 필요했다. 학기 마지막 날에는 15분가량의 암송을 하거나 기말 에세이를 써야 한다. 그래서 연암 박지원 선생의 <마장전> 전체를 암송하기로 독하게 마음먹었다. <마장전>을 필사하는 것으로 준비를 시작했다. 필사해놓고 보니, 전체가 약 3800자정도 되었다. 활자를 크게 해서 암기용 카드를 만들고, 전문(全文)을 반복해서 십여 차례 읽었다. 3일 동안 외워 보기로 마음을 먹고 집중해서 외우고 또 외웠다. 발표 당일에는 새벽같이 일어나서 전체 외우기를 여러 번 연습했다. 그리고 비장한 각오로 수업에 참석했다.

나의 발표 순서가 되자, 앞으로 나가 서서 외우기 시작했다. 온 몸이 떨리고 목소리까지 사정없이 흔들렸다. 그래도 수백번 되풀이했던 앞부분은 무사히 지나갔다. 너무 떨리다 보니, 좔좔좔이 아닌 속사포가 되어버렸다. <마장전>은 이야기이기 때문에, 이야기를 하듯이 천천히 두런두런 외웠어야 했다. 덜덜 떨면서 어떻게 천천히 혹은 두런두런 이야기를 하듯이 할 수 있었겠는가? 끝까지 다다다다다 쏟아내고 나니, 15분 정도 걸렸던 것도 같다.

<마장전> 암송으로 나는 깨달음을 얻었다. 첫째, 나는 아직 늙지 않았다. 뇌가 노화해서 암기를 못한다고 믿었었다. 뇌는 안 쓰다 보니 암기가 안되었을 뿐이었다. 둘째, 어렵다고 불가능하다고 지레 겁먹으면 될 것도 안된다. 처음 해보는 일에 거부감이 드는 것은 당연하다. 그 거부감을 넘어서면, 그 다음부터는 일사천리로 풀린다. 셋째, 암송은 입으로 외워야 한다. 머리로 외우면, 입으로 나오지 않는다. 외국어를 공부할 때 문장 암기는 필수이다. 수많은 교재와 강사들은 문장 암기할 때 반드시 큰 소리로 말하면서 외우라는 조언을 한다. 소리 내어 반복해서 읽다 보면, 입이 그 문장을 기억한다. 문장 1번을 뇌가 떠올리면, 입은 바로 문장 1번을 장착하고 입밖으로 내보낸다. 암송도 똑같은 원리로 해야 한다. 넷째, 어떤 공부이든 한번에 몰아서 해서는 안된다. <마장전> 3,800여자를 3일 동안 외우기는 했다. 그러나 3일 내내 외우기만 한 것은 아니다. 1시간 정도 외우기에 집중하고, 집안 일도 하고 운동도 했다. 그리고 다시 외웠다. 3일동안 집중해서 외우느라 하루에 약 4~5시간은 투자했던 것 같다. 다섯째가 가장 중요한 좌절감을 딛고 일어서기이다. 글을 외웠는데, 몇 시간 있다가 외우려 하면, 거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이때 좌절감이 훅~ 치고 들어올 것이다. 이때가 가장 큰 고비인데, 좌절감에 휩쓸리지 말고, 차분함을 유지한 채로 처음부터 다시 외워야 한다. 두 번째 외우는 시간은 처음 외는 시간보다 훨씬 짧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이 시간 차이를 성공 지표로 삼아야 한다. 이런 식을 세 번째, 네 번째를 반복하다 보면 어느 순간 입에서 좔좔 외워진다. 생각대로 안 풀린다면, 안 풀리는 것을 더 좋은 결과로 이끌어주는 신호로 바꿔서 생각해야 한다. 이것이 좌절을 딛고 일어서는 좋은 방법이다.

2017년 봄 학기가 되자, <마장전> 3,800자의 정확히 2배 분량의 글을 외워보기로 했다. <전습록>의 꽃인 <대학문>은 양명선생의 사상이 잘 드러나는 글이어서 암송할 가치도 있었다. 그러나, 결론은 실패였다. 4천자가 넘어서자 머리에서 쥐가 나는 듯했다. 무리한 외우기 덕분에 몸에 무리까지 와서, 절반 정도도 못하고 멈춰야만 했었다. 2018년 가을에 다시 한번 도전해 봤다. 6천자까지는 외웠는데, 그 이상을 하려니 다시 머리에서 쥐가 나듯이 아파왔다. 결국 17백자는 포기하고 말았다. 대신에 중용 20장 번역문을 외웠다. <마장전>과 비슷한 길이라서 며칠만에 다 외울 수 있었다. 아이에게 좔좔좔 외워주니, 아이가 질려했다. 나중에는 중용에 ㅈ만 나와도 도망가버렸다.

나는 아직도 <대학문> 7,700자 전체를 좔좔 암송할 생각을 버리지 않았다. 두 번째 시도에서 6천자까지 성공했으니, 세 번째 도전하면 끝까지 다 할 수 있지 않을까?

글자수 : 2484(공백제외)
원고지 : 16.52

#연금술사 #백일글쓰기 #숭례문학당 #글외우기 #암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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